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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미국사람들과 들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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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yoondds] 쪽지 캡슐

2004-01-04 ㅣ No.60373

나는 올해 1월로 미국에 온지 만 3년반째다.

이민이나 취업을 온 것이 아니고 관광을 온 것은 더욱 아니고,

공부를 하러 왔다. 그래서 내 미국에서의 경험은 주로 학교와 그에 부속된 기관에 근거한다.

 

학교에 있다보니, 또 내가 그냥 학부생은 아니고 graduate program에 있으면서 part time으로 나마 teaching을 하다보니, 비록 영어가 서툰 동양인일 뿐이지만 그렇게 막 대하는 그런 대접을 받은 기억은 별로 없다. 학생들은 나를 대할 때 항상 last name을 부르며 존칭을 앞에 붙여주었고, 내가 클리닉에서 환자를 볼때는 환자들도 - 적어도 겉으로는 - 나를 존경해주고 나의 권고나 지시를 성의 껏 따라주었으며, 교수들이나 스탭들도 항상 나를 존중해주었다. 한마디로 학교라는 공간은 적어도 겉으로는 인종적인 편견이나 기타 부당한 대우때문에 나로 하여금 미국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한국사람들이 미국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부분을 오해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중에는 한국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긍정적인 것들도 있고 그 반대로 더 부정적인 것들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여기서 다 적으려면 너무나 장황하게 될 것이고, 경험을 공유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뜬구름 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므로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 다만, 한가지만 이야기 하려 한다.  

 

내가 속한 프로그램에서는 일주일에 두 세션 학부생 티칭을 해야 한다. 티칭이라고 하면 상당히 거창하게 들릴 지 모르겠는데 강의나 그런 것을 하는게 아니고 undergraduate 클리닉에 들어가 인스트럭터를 하는 것이다. undergraduate 학생들이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챠트를 보고 이것저것 주의 사항과 함께 시작하라고 해주고, 치료중에 뭐 물어보면 대답해주고, 끝나면 검사하고 사인해주고, grade 주고 뭐 그런, 한마디로 실습조교 비슷한 일이다. 실습조교를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따분한 일이다.

 

나는 2000년 가을학기에 처음 그 ’티칭’을 시작하였는데 금요일 오전, 그리고 금요일 오후에 배당되었다. 우리 department에는 나와 같은 graduate student가 열 대여섯명 되었고, 우리 클래스에는 모두 여섯명이 있었다. 매학기가 끝날때쯤 되면 각 클래스의 반장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모여 undergraduate director와 같이 당번을 짠다. 누가 언제 티칭을 들어가는가 하는 걸 결정하는 거다. 근데 미국애들이 금요일 오후에는 티칭을 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안것은 거의 1년이 다 되어서 였다. 금요일 오후에는 수업도 없고, 우리 클리닉은 문을 닫기 때문에 티칭만 없으면 일찍 집에가서 토요일, 일요일로 이어지는 주말을 즐길 수있다. (학교에서는 금요일에는 오후 서너시만 되면 완전히 파장 분위기 였다. 어떤 곳은 전화도 안받고 사무실에 사람도 없다.) 사실 우리는 일주일 내내 바쁜 일정을 보내기 때문에 금요일 오후가 되면 상당히 피곤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금요일에도 어차피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였으므로 일찍 집에 가는 것에 연연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어쩌다가 집안일 등등으로 누군가와 티칭스케줄을 바꾸려고 할때 였다. 금요일 오후스케줄을 바꾸려고 하면 잘 안 바꾸어 주기 때문에 항상 애를 먹었다.         

 

그래서 나는 금요일 오후 티칭세션은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상식적이지 않나? 근데 우리 클래스의 반장인 Ryan Jackson이라는 미국녀석이 나를 4학기나 금요일 오후에 넣은 것이다. 일년에 가을학기, 봄학기, 여름학기 세번의 학기가 있으니 거의 일년반을 그렇게 한 것이다. 나뿐만 아니고 우리 클래스의 또 한사람의 한국인H, 그리고 중국인 C 세명이 모두 똑같이 매주 금요일 오후에 언더 클리닉에서 만나고 있었다. 일년 반동안. 반면 또한 사람의 미국인 Michael Joseph와 함께 Ryan은 한번도 금요일 오후에 학교에 남아 있은 적이 없고.

 

하지만 나는 기다렸다. 왜? 한국사람의 정서상 싫은 소리를 잘 못하니까. 라이언이라는 애도 배울 만큼 배운녀석이고, 미국의 배운 사람들 답게 평소에 모든 게 gentle하고 nice 하니까 알아서 해주겠거니 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또한가지 이유는 우리는 약자니까. 미국생활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처음에 미국에 오면 언어뿐 아니라 모든 것이 생소하고 거의 모든 것에서 미국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이게 make sense 하는 건지, 뭘 사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면 좋은지, 무슨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나를 욕하는 건지 아닌지, 편지나 메모를 쓰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런 표현이 적당한 것인지 등등...한마디로 도움을 받는 처지에 그런 껄끄러운 얘기를 하기가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한국말도 아니고 영어로 상대를 감정적으로 기분나쁘지 않게 하면서 요지를 전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5번째 학기 티칭스케줄이 나왔을때 나는 분노하고 말았다. 내 이름과 C, H가 또 금요일 오후에 찍혀 있었던 것이다. 이건 나를 무시하는 것이고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관계가 서먹해지고 도움을 못받게 되더라도 가서 따져야 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화요일 오후였던가 했는데 나는 클리닉 A에서 티칭하고 있었고, Ryan이라는 놈은 클리닉 D에 있었다. 나는 금방나온 따끈한 스케줄을 손에 들고 가서 얘기했다.

’금요일 오후는 누구나 일찍 집에가서 가족과 함께 편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때다. 근데 나는 벌써 1년반째 그러지 못하고 있다. 반면 너는...’

 내가 여기까지 말을 하니까 라이언이라는 녀석의 얼굴이 벌개지더니 말을 더듬기 시작하였다. 횡설수설 하면서, 말도 안되는 핑게를 대면서 둘러대더니, 지금이라도 너가 원하면 나랑 이번학기 스케줄을 바꿔 주겠다고 하는 거였다. 나는 됬다고 말하고 다음학기부터 이점을 고려해 달라고 하고 돌아 왔다. 그 다음부터 나는 한번도 금요일 오후에 티칭을 하지 않았다. 반면, 라이언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불만이 그득하면서도 돌아서서 욕할 지언정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한 H와 C는 3년의 프로그램이 끝날때까지 금요일 오후에 언더 클리닉에서 청춘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라이언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일은 칼로 물벤듯 지나가고 나와 라이언은 그 전처럼 classmate로서 잘 지냈다. 오히려 라이언이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전보다 더 배려를 해주었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미국사람들은 이유없이 잘해주면 호구로 본다는 것이다. 뭔가 잘못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정정을 요구해야지 기다리고 있으면 절대로 알아서, 저절로 해결되는 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의할때 한국에서처럼 목소리를 높이거나 기세싸움으로 해결을 보려고 해서는 안된다.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해야한다. 만약 내말이 맞으면 목소리가 작아도 말이 먹히는 것이고, 아무리 내가 옳아도, 억울해서 분통이 터져도 내가 제대로 논리와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절대로 말이 먹히지 않는다. 그럴때는 목소리가 높으면 오히려 상대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만 주고 말 것이다.

또 한가지 깨달은 것은 미국사람들은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당하였을 때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 같으면, 만약 내가 라이언이라는 녀석의 위치에 있었으면, 저 멀리 방글라데시아나 필리핀에서 온 놈이 평소에 도움을 받는 주제에 그런 걸 따지러 왔다고 괘씸하다고 생각했을 법하고, 잘못을 시인하고 고쳐주겠다고 하기보다는 "그래서? 니가 그래서 어쩔건데?"하는 식으로 나오든지, 아니면 그자리에서는 그냥 얼버무리고 속으로 괘씸한 놈 하며 벼르게 되었을 법한데 라이언이라는 미국애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나의 깨달음들은 그 이후의 미국생활에서도 곳곳에서 확인되었다.

 

79년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80년에 광주학살을 하고 정권을 잡을 당시에 내기억에는 당시 주한 미군사령관이었던 위컴인가가 본국에 한국상황을 보고하면서 한국인들은 근성이 들쥐떼와 같아서 아무라도 지도자를 세우면 그리고 몰려간다고 했던 것 같다. 그건 한국인들을 무지하게 모욕하는 발언이면서 또 한편 미국인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 당시 일부 한국인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것이었다. 전두환이가 광주를 피로 물들이면서 입가에 피도 안마른 입술로 가당찮게도 정의사회구현을 운위할때 불세출의 지도자니, 난세의 영웅이니 칭송해대고 여론을 몰아가며 앞다퉈 줄을 서던 그 들쥐들이 주한미국인들에게 인상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앞선 들쥐들의 선동에 천지분간 못하고 따라간 수많은 들쥐들도 있었다.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분별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여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독재정권과 민정당의 지지자가 되어 수많은 영혼을 아프게 했던 그들이 바로 뒤쫓아간 들쥐들이며 그들 중 일부는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들쥐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5공때가 좋았느니, 6공때는 분열은 없었느니, 하며 전두환과 민정당의 후손들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 슬프게도 그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과 미국은 이미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정치 외교적인 것 뿐아니라 경제와 문화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영향력을 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관계가 잘 되어 나가길 바란다. 하지만 그것을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 풀어나가서는 곤란하다. 육이오때 도와줬으니까 우리가 찍소리 말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들은 우리는 찍소리 없이 하는 easy men으로 간주한다. 한국인들이 미군범죄에 희생되었을때 그냥 참는 것은 절대로 한미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일본의 예에서 처럼 정당하게 항의하는 것은 결코 한미관계를 헤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정당한 항의가 없을때 미국인들은 더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의견을 제시해야하는 때는 정확하게 자기 의견을 얘기하여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밝혀두는 것이 미국식 사고방식이고, 그렇게 했을때 미국인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기는 커녕 이사람이 스마트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앞으로의 행동을 조심하게 될 것이다.

 

기억해두어야 한다. 미국인들은 상식을 넘어선 호의나 적의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누가 내돈을 까닭없이 집어가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누가 아무런 이유없이 내게 돈을 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까닭없이 내돈을 집어가는 놈은 도둑놈으로 생각할 것이고, 까닭없이 내게 돈을 주는 놈은 바보아니면 호구로 이해할 것이다. 결코 은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렇다고 은혜를 갚는 법도 없다. 한국이 그렇게 미국의 주구노릇을 하였다고 하여 무역거래에서 미국이 한국에 예외적인 특혜를 주는 법이 없는 것을 보면 알 것이다. 미국이 혈맹이라는 한국의 대통령은 막대하면서 사상적인 적대국인 중국에 대하여는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깨달음을 가져야 한다. 미국인들은 호구에게는 호구로 대해주고 까다로운 놈은 까다롭게 대해준다. 그런 측면에서 볼때 이 게시판의 어떤 얼빠진 이처럼 한국이 미국에 굴복하여 이라크에 파병을 하게 되었다고 뛸뜻이 기뻐하며 기왕에 줄려면 미국에 홀딱벗고 줬어야 한다느니 하며 미국이라면 사죽을 못쓰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얼간이들은 한미관계의 걸림돌이다.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물론이고 당사자인 미국인들조차 정당성과 당위성을 의심하고 있는 그런 더러운 전쟁에 목에 핏대를 세우며 파병하자고 주장하는 한국인들이 미국인들의 눈에는 은인이 아니라 호구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들쥐들이 목소리를 높일수록 미국은 한국을 이해하는데 헷갈리게 되고 결국 한국인을 전부 들쥐로 파악하게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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