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남상덕 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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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5-03-10 ㅣ No.80268

남상덕 님께.


또 한번 제게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노고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는군요.

우선 제가 충분히 예의를 갖추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는 사과를 드립니다.

또한 이 게시판에서 제 글들을 유심히 읽어주신 점, 그리고 제 홈까지 방문하여 저의 '일부'를 느끼고 탐색도 해주신 점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
아울러 제 글들을 통해 저의 인간성을 느끼시는 가운데서도 "한편으로는 신이 인간을 창조할때 왜 좀 더 온전함을 주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보았다"는 말씀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수긍합니다.

인간이 온전하거나 완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지요.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온전할 수도 완전할 수도 없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늘 느끼고 인식하는 겸허함 속에 조금이라도 개선과 향상을 이루려는 극복의 의지도 존재할 수 있고 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람의 그런 마음에는 기본적인 자세, 밑바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얼마만큼 선을 지향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양심에서 우러나는 것이냐에 따라 그것의 형태와 색깔은 달라지겠지요. 더욱이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늘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생각하면서 극복의 의지도 실천을 해야 하겠지요.

나는 늘 부족함과 한계를 의식하며 삽니다. 때로는 나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내 안에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며 삽니다. 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극복의 명제를 내 생활 안에 걸어놓되, 늘 선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고 양심에서 출발하는 것이기를 소망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도우심 안에서 성취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저는 남의 부족함을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남의 부족함을 내 관점에서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자칫 교만이나 자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쉽고, 오류에 빠져들기 쉬운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
"그간 서로의 인사도 없이 수차에 걸쳐 어처구니 없는(?) 꼬리 글을 다시는 형제님에게 한번은 자극을 주어 봐야겠다는 다소 계산된 마음도 작용해서" 형제님이 제게 "아쉬운 것은 연륜에 걸맞지 않은 어리석음이 주님이 주신 축복을 더럽히고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극단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꼬리글'이라는 것은 사실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게시판에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성격의 꼬리글이든 꼬리글을 각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꼬리글을 다는 일에 무슨 인사가 필요하겠습니까? 글을 올리는 것 자체와 꼬리글을 다는 일 자체가 인사이고 신호이며 의사 교환이 아니겠는지요?

"그간 서로의 인사도 없이 수차에 거쳐 어처구니없는(?) 꼬리글" 운운하셨는데, 우스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님의 기준으로 볼 때 내 꼬리글들이 어처구니없었다면, 내 관점에서는 님의 글들이 어처구니없는 글들이 아니었겠는지요?

이 게시판에서 먼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나서 꼬리글을 다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제가 인사도 없이 님의 글에 꼬리글을 단 소치에 대해서는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원래 글이란 것이 사람의 마음을 표현해 주는 창이고 인품과 능력을 대변하는 이력서이고 인생의 성적표이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 역시 바로 그것 때문에 글을 쓴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글은 저의 삶이고 저의 삶은 곧 글입니다. 제가 이 세상 삶을 마치고 하느님 앞에 갈 때 가지고 갈 것은 이 세상에서 쓴 글들과 그 글들 안에 담겨지고 일치하는 제 삶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느님 앞에 내놓을 것은 글밖에 없으니, 그 글들은 저의 삶 바로 그것이지요. 그런 자세로 저는 오늘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작가가 평가 받기 위해 드러내놓은 자신의 인식 세계를 남이 평가해 주는 것이 불편하다면 그 작가는 지금이라도 생각을 달리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라는 말도 하셨군요. 저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남의 평가를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남의 평가를 거부한 적도 없습니다. 이미 글로 나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 놓고 사는 이상 독자들이나 평자들의 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늘 겸허히 경청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평가가 정당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신경을 씁니다. 판단 기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판단이나 평가가 정당한 것이 되지 못하고 무례하고 편협 되고 그릇된 것이라면, 다시 말해 상식과 합리와 정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혐의를 갖게 되면 거기에 맞게 대응을 합니다. 그것은 나의 정당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
님의 말씀대로 "사람은 서로의 인식 세계가 다르기에 서로의 대화를 통해 인식의 접근을 해 나가는 것"이지만, "대화시 상대방의 인식 세계를 전면 부정하면서 인식의 접근을 거부하고 상대방에 극단적인 감성 자극을 시도하는 행위는 서로 바람직스럽지 않지요."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그것이 나에 대한 말씀이라면 독단적이고 과잉적인 말씀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먼저 글에서 쓴 첫마디가 "아예 상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가"였지만, 그것이 이미 결어가 아님은 확실해졌습니다. 그 말과 상관없이 나는 이미 님을 상대해 드렸습니다.

결어도 아닌 한마디를 가지고, 제가 마치 상대방의 인식 세계를 전면 부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씀하신 것은 일종의 난센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저의 그 첫마디가 님께 예의를 결한 것임은 제가 솔직히 자인하고 사과를 드립니다.  

★★
님의 '역사의식'에 대한 부분도 잘 읽었습니다. 님께서 "역사의식이란 표현을 몹시 아끼는" 분이라는 사실도 인정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역사의식이라는 말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고 사는 것에는 님과 저 사이에 많은 편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역사의식이라는 말이 그렇게 어려운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00년도 살지 못한 제가 최고의 초등교육으로부터 최고 학부를 성실하게 면학해 왔다 가정하더라도, 46 억 년의 지구 역사와 인류 역사 속에 불후의 작품들을 남기신 철학자, 과학자, 경제학자, 자연과학자, 사회과학자(역사 학자 포함), 인문과학자, 그리고 실용 전문인들의 사상과 기술을 이해하고, 과거 현재의 우리 세계를 파악하고 미래를 재단∼"하는 것이 역사의식의 실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역사의식의 기초도 전부도 아닙니다.

역사의식은 많은 지식이나 학문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지식과 학문으로도 충분합니다. 역사의식이란 역사에 대한 사랑입니다. 역사에 대한 지혜로운 안목과 창조 의지입니다. 우리의 지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 올바르지 못한 역사를 성찰하고, 진실하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려는 것이 역사의식의 본령입니다. 그런 역사 의식에 46억 년의 지구 역사를 관통하고 통괄하는, 도저히 불가능한 지식이 무예 필요하겠습니까?

설령 46억 년의 지구 역사를 관통할 정도로 수많은 불후의 학문·예술 작품들을 두루 꿰는 일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진정한 역사의식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의식은 사람의 마음과 눈에 달린 것이지 학문과 지식이 결정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님은 마치 자신의 신분이나 학자로서의 위치를 과시하는 듯이 "몇 년 전에 구 소련의 최고 아카데미의 한 분인 73세 된 코발로프스키란 교수와 4년간 공동 프로젝트를"를 하신 사실을 강조하면서 러시아의 오늘의 실상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님이 러시아에 출장을 가셔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실상들을 말씀하시니 정확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님은 아마도 북한을 염두에 두고 공산주의의 폐해와 실패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인정합니다. 공산주의는 실패한 사상입니다. 그리고 북한은 진짜 공산주의도 아니고 오도된 껍데기 공산주의일 뿐입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친북 세력도 아닙니다. 북한 동포들을 민족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생활을 도와주는 쪽으로는 적극 행동을 합니다만, 김정일 집단은 배격합니다. 김정일을 증오하고 경멸합니다.

그러니 이 부분에 관해서는 긴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통일문제와 관련하는 이야기이니 실은 가장 길게 얘기해야 할 부분입니다만….  

★★
님은 현 정권에 대한 중오 문제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짧게 처리된 부분이지만), 매우 방만한 문제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증오' 라는 단어 옆에 (?)를 붙임으로써 중오가 아닌 것처럼 기호로 수식을 하셨습니다만, 나는 이미 님에게서 현 정권에 대한 한없는 증오를 읽었습니다.

"특정 정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고 무지하고, 무능하고, 부도덕한 권력자의 교만과 해악에 대해 분노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에서는 가증스러움과 가소로움도 느낍니다. 이게 극도의 증오심의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증오가 가득한 마음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증오가 꽉 찬 마음으로 어떻게 주님 소리를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정의롭고 무능한 권력자의 해악은 정의롭고 유능한 독재자의 해악에 비해 훨씬 크다는 것이 역사를 통해 입증되어 왔습니다."라는 말에서는 님의 정신 상태가 매우 혼돈 상태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저 단지 말을 위한 말에만 골몰하시는 것이 훤히 느껴집니다.

"그런데 정의롭지도 못하고 무능한 권력자의 행정은 천문학적 피해를 가져오고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살인을 저지르지요."
"집안에 가산을 탕진하면 가족이 살아 남기 힘들지요. 국가가 재정 탕진을 가져오면 떼죽음이 옵니다."
"북한은 수백만 인민이 굶어 죽었습니다(친지 포함)."

이런 말들이 과연 정상적인 말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너무도 엉뚱하게 현 정권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면서 거기다가 북한은 왜 끌어들입니까?

"최근의 대형 국가 사업치고 제대로 되는 일이 있습니까? 최소 수조원(수십억불)에서 수십조 사업(수백억불) 사업이 번번히 실패하면 그 기회 손실과 국민 부담은 누가 보상할 것인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새만금 간척사업 등에 반대를 하는 제 처지로서는 이해가 가능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님께서 먼저 "설명을 하면 장황하기 때문에 생략"한다고 하셨으니, 저도 장황해질 수밖에 없는 반론을 생략하겠습니다.

★★
그 다음의 말씀들에도 방만하고도 지리멸렬한 내용 속에 참으로 많은 문제점들이 보여지지만, 한가지만 묻겠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너무나도 많은 비판(?)하지 않았습니까(본인 역시). 당시 상황은 국방, 경제, 사회 모든 어려웠던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비판이다 못해 선동 폭동 얼마나 많았습니까."라고 님은 마치 기염을 토하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박정희 전두환 시대가 비판이 허용되는 시대였습니까? 그 시대에 언론이 살아 있었습니까? 님도 박정희와 전두환을 비판하신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언제 어떤 문제를 가지고 어떻게 비판하셨습니까? 그 증거를 보여주시겠습니까?

"비판이다 못해 선동 폭동 얼마나 많았습니까?"라는 말에서는 어안이 벙벙해 집니다. 혹시 '부마사태'와 '광주민주화운동'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한번 그 선동과 폭동의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들어 보시지요?  

"왜 지금 김대중 노무현의 실정을 비판하면 안 될까요?"라고 님은 물으셨습니다. 안 된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왜 안 되겠습니까? 지금은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시대가 아닙니다. 지금도 님을 포함하여 님과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격을 해대고 있습니까?

문제는 정당하고도 합리적인 비판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님은 학자이고 지식인이면서도 아직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없는 증오심에 바탕한 맹목적이고 무차별적인 비난과 야유와 조롱과 헐뜯음을 무시로 감행하면서도 그것을 비판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유치한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님의 글이나 님이 퍼오는 글들이 모두 "올바른 경제 인식과 올바른 민주 의식을 위해 제시하는 정보와 지식 제공"일까요? 과연 그렇습니까?

또 님의 그런 일에 "악다구니하며 몰려 다니는 모습이 바람직한 모습들일까요?"라고 하셨지요?

반론적인 댓글이나 꼬리글들이 '악다구니'로 보였습니까? 또 '몰려다니는 모습'으로 보였습니까?

한마디로 어안이 벙벙합니다. 그러면, 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인 사람들의 글에 무차별적으로 달아 대는 꼬리글들의 행렬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어느 쪽이 더 심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여기에서도 저는 적반하장이라는 말의 실체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  
“나이 40을 넘으면 자신의 얼굴 모습과 자신의 권위를 생각해야지요. 진실된 삶, 진실된 마음, 정의롭고 성실된 행동만이 이룰 수 있는 금자탑이라고, 그밖의 것은 위선이지요. 또한 남의 권위를 생각하지 않고 나의 권위를 지키려 함은 어리석음이요 이기심이고 교만이지요.”

님은 글을 마무리하시면서 위의 말을 적었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다만 한글 표기법에서 ‘진실된’, ‘성실된’은 옳지 않습니다. ‘진실한’, ‘성실한’이 맞는 표기지요.)  

그러나 아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대로 살지 못하면 아예 말을 하지 말아야 하겠지요.

제게 주신 그 말씀을 님께서도 잘 되새기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인식의 공감대를 위한 표현과 도발적인 표현은 목적이 다르지요. 가려서 읽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라는 말씀도 옳게 여깁니다.

“서로 귀기울이고 사랑하고 존중하고 나누려 하면, 이것이 곧 주님의 세계라 생각합니다.”라는 말씀에도 동의하며 우리 함께 그것을 가슴에 되새기기를 축원하며 이만 맺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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