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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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주의단상(10)신부님과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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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화 [ppssm] 쪽지 캡슐

2001-10-17 ㅣ No.25382

聖職主義斷想(10)신부님과 골프

 

내 조카가 첫미사 드리는 날이다.

사제 서품을 받고 본당에서 첫미사를 드리는데 아버지 신부님이 강론을 하신단다.

아버지신부님이란 바로 신학교에 추천해주셨던 신부님을 아버지 신부님이라 하는데 공교롭게도 그 아버지 신부님이 그 본당 일로 바쁘셔서 첫미사에 참석을 못하시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핀치히터로 다른 신부님을 내세웠는데 바로 새신부님의 당숙어른께서 강론을 해 주시기로 했다.  

그 신부님은 부산교구 소속인데 수사 신부님이시다.

서품 때도 오셔서 축하해주셨는데 삼일 후 첫미사 때도 천 리 길을 달려 오셨다.

 

신부님이 강론중에 하신 말씀을 대략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청빈한 생활을 하라.

서품 때 땅에 엎드려 맹세했듯 가장 미천한 자로서의 위치를 잊지 말라.

너는 항상 빈털털이다.

하느님께 불리움을 받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는 큰 축복을 받은 것이다.

네가 청빈의 정신을 잊어버리면 하느님의 축복은 서서히 사라져 간다.

그렇게 되면 너는 성직주의에 물든 사제로 타락할 것이고 네가 돌보아줘야 할 양떼들은 하나 둘 사라질 것이다.

골프를 치지 말라. 골프는 가장 미천한 자가 할 짓이 아니다."

옆에서는 다른 신부님들이 빙그레 웃으시며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미사가 끝나고 나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한 달에 두어 번 바람쐬시는 것은 괜찮을 텐데,

역시 청빈이 몸에 밴 수사 신부님이기 때문에 다르긴 다르구나"

 

조카의 첫미사가 끝나고 나는 바로 늦깎이로 같이 신부님이 되신 제자 신부님을 만나러 갔다. 지하철 타고 30분, 부랴부랴 들어갔더니 이미 미사가 끝나고 국수 잔치가 한창이었다. 신부님을 찾아 간단히 축하 인사를 드리고 국수 잔치하는 자리에 끼어 성전 뜰에서 담소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어느 친구가

"저건 얼마짜리나 될까?"하면서 한 쪽을 가리켰다.

그 쪽을 보니 코란도 지프차 옆에 보기에도 웅장하고 으리으리한 오토바이가 한 대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그 쪽으로 가 봤더니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웅장해 보였다.

 

모여 있는 사람들이 서로들 야! 이거 얼마나 갈까? 하고 웅성거리는데 그 성당에 다니는 친구가 쫓아와서 "이거 본당 신부님 오토바이인데 아마 돈 천이나 갈껍니다. 주로 신부님 산책하실 때 타고 다니시죠."

 

나는 이때 별안간 지난 봄 성지순례(해미) 갔을 때 다 찌그러진 오토바이를 타고 안내하시던 어느 수녀님이 "이 오토바이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라고 자랑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오토바이라면 50대이상은 사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잠시후 "저 코란도는요?" 하고 또 물어보니 "그건 장거리용입니다. 주로 골프치러 다니실 때 타고 다니십니다."

 

나는 다시 호기심이 생겨 코란도안을 들여다보았다.

좌석 뒷켠에는 골프가방이 여보라는듯 덩그랗게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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