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상한 영혼을 위하여

스크랩 인쇄

박유진신부 [yjinp] 쪽지 캡슐

2001-11-08 ㅣ No.26169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일지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가랴

가기로 작정하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고 정희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 주십시오. 서로 한 마음이 되십시오."(로마 12,15.16)

 

  일에서 한 걸음 물러나  딴에는 관조하듯 잠시라도 자신과 주변을,  멀리서 그러나 조금 깊게 보면, 우리를 지배하는 우선되는 가치가 '그저 함께함' 보다는, '비판(비평)적인'(애정어린 비판을 포함해서) 이성적 가치가 단연 지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회상해볼 때 내 삶에 힘이 되고 희망이 되어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남은 것은 무엇일까? 더불어 내가 지금 목말라하는 것은?

 

  그건 다름아닌 '함께함'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저 함께함,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순수히 기뻐하고, 울고싶은 사람과 함께 눈물흘리는 함께함이 그리운 세상이다.

  기쁠 때 그 기쁨의 함정과 반성을 지적하는 애정과, 울고싶을 때 스승으로서 꾸짖거나 격려를 주는 사람이나 소리의 소중함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나, "그러나" 하고 말하면서 그리워지는 것은 '함께함'의 정서이다.

 

  '함께함'의 정서, 많은 현대인이 뒷전에 놓아버린 이 시대의 별볼일없는듯한 가치, 한편으로 그럴수록 더더욱 그리운 가치를 오늘(11,6) 독서와 환호송, 복음에서 만나게 된다.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 주십시오. 서로 한 마음이 되십시오."(로마 12,15.16)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 11,28)

  "어서 나가서 길거리나 울타리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도록 하여라."(루가 14,23)

 

  주님은 그저그냥 함께 하자는 것이다. 그게 격려이고 희망이고 사랑이라는 것이고, 바로 '그저 함께하는' 그분이 주님이라는 것이다.

 

  나를 조금 더 비우고, 나의 생각과 말을 줄이려 애쓰며 함께 하는 모습은 다름아닌 주님을 닮는 모습이 아닌가!

 

  주님은 놀라운 기적을 베풀기 위해서나, 뛰어난 언변의 가르침을 주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인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분이 함께하심이 희망이고 생명이요, 복음이다.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대부분 매일미사 못하시죠?

앞으로 아주 짧은 그날의 성서말씀을 올려보고자 합니다.

삶 안에 그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 오늘 독서에서(로마13,8)

 

 

첨부파일: 10-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ram(409K)

1,064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