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진실의 메아리(토론토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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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duepaul] 쪽지 캡슐

2002-01-08 ㅣ No.28346

찬미 예수님!

 

정 진석 대주교님....

 

지난 유월부터 성녀 이소사 공동체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보면서

한 사람의 신자이면서 두 어린 아이를 둔 엄마의 위치에서 참 많이 아팠읍니다.

계절이 두번 바뀌도록 깊어만 가는 아픔을 통해 우선 저 자신의 신앙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어느날 갑자기 불어닦친 모진 바람을 맞서며 뿌리째 흔들리는 신앙을

추스리고 있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등지게 되었고 쌓여진 불신의 벽은 아픈

상처에다 소금을 뿌린듯이 아프게 자리잡고 있는 공동체에 토론토 교구청이

하고있는 끔찍한 일들은 심장을 도려내듯 아프게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녀들에게 가장 거룩한 크리스마스 이브에 교구청은 교회를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경고장을 수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했읍니다.

도대체 이런일을 생각할수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은 무엇으로 가득차 있는지

의문입니다. 발 들여 놓을 틈 없이 가득했던 지난 성탄과는 대조적으로

썰렁하기만 한 성탄미사를 드리는 시간에도 쉴새 없이 카메라로 이 사람 저사람

사진을 찍는 수잔의 모습과 경호원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솟아 오르는 분노,

저의 형편없는 신앙 때문만은 아닙니다.

수잔의 얼굴을 보는 순간 분노가 치미는 것은 언제나 거짓말만 하는 뻔뻔함에

대한 역겨움일 겁니다.

새해를 앞둔 주일 미사시간에 오 세만 신부님의 강론이 끝나자 한 사람의 경호원이

오 신부님께 무어라 한참을 이야기 하더니 느닺없이 수잔과 미리 복도에 대기하고 있던 스무명이 넘는 경찰이 성당안으로 들어왔읍니다.

그리고 일어난 일들....

수잔의 손가락으로 지적한 사람들은 두명의 경찰이 죄인을 다루듯이 끄집어 냈지요.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고있는 성전에서 무슨 죄를 지었길래 경찰이 끄집어 내야만 했을까요? 그러는 동안 오 신부님은 제대의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있었지요.

그동안 오 신부님을 위해 기도드려온 정성이 부족했나 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오신부님의 짧은 영어 실력 때문에 잘못 알아 들으시고 대답하신걸로 믿고 싶습니다.

86년 크리스 마스 이브에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전 그 추운 겨울날 미리내 성지 순례를 갔었습니다. 산 등성이에서 찬 바람을 마주하며 드렸던 십자가의 길,

103인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거닐면서 신앙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저의 눈에

동산에서 두 무릎을 세우고 기도드리던 수사님들의 모습이 아른 거립니다.

초대교회의 어려움 가운데에서 순교하신 김대건 신부님의 혼을 떠 올려 봅니다.

무엇보다도 성녀 이소사 성당의 주보 성녀, 성녀 이소사 아가다의 혼을 떠 올려 봅니다. 오신부님은 끝내 미사를 다 마치지 못하고 다른데 가서 미사를 보라고 했지요.

그리고 일주일 ...

이곳 매스컴들은 앞다투어 기사를 내보냅니다.

카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이 충격적인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읍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바로 다음날 오신부님은 서울 교구청에서 이곳으로 유학온 신부님들과 성녀 이소사를 없앤 중심인물들(필립네리)과 멋지게 파티를 했지요.

무엇을 축하하기위한 파티였는지....

목구멍 까지 차오른 질문을 서울 교구청에 하고 쉽군요.

성녀 이소사가 왜 서울 교구청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지요?

전임 신부님을 사이비 교주로 몰아가면서 강론을 하는 신부님,

고해 시간에 전임 신부님을 욕하는 신부님,

미사는 전인교육이라 주일 미사를 걸러도 된다고 스스럼 없이 제대에서 이야기 하는

신부님, 12월 2일 예수 성심으로 탈 바꿈한 성전에서 보여주는 서울교구청 소속

신부님들의 현 주소 입니다.

12월 2일 수잔에게 질문을 했읍니다.

왜 성녀 이소사를 없애야 했는지...

오 신부님이 선택하고 결정한 일이라 하더군요.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한 사람의 사제가 없애버리다니....

물론 서울 교구청은 알고 있겠지요?

왜 성녀 이소사를 없애야 했는지...

과연 캐네디언 교회에서 똑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면 그곳에도 과연 경찰들과 함께 미사를 중단할수 있는지...

이건 분명 인종차별입니다.

도대체 서울 교구청에서는 무얼하고 있는지요?

저 역시 정진석 대 주교님께 지난 여름 수많은 진정서를 보냈지만 단 한마디의

회신도 없었지요.

성녀 이소사를 잃고서 다닌 이곳 캐네디언 성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였지요.

내민 손을 무시하고 노려보던 백인들의 우월감....

다섯살박이 철부지 아이가 청하는 강복을 번번이 거절하는 백인 신부.....

그후 다섯살난 아이의 꿈이 변해 버렸읍니다.

매일미사를 가기위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아이,

신부님의 강복이 너무나 좋아서 커서 신부님이 되겠다던 아이,

감실앞에서, 성모님 앞에서, 엄마의 품에서 기도하던 아이,

이 아이의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찌릅니다.

"엄마, 저 신부님은 나 미워하나봐...."

그리고 한참을 울고난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랬지요.

"나 이제 신부님 되고 싶지 않아...."

 

정 진석 대 주교님...

서울 교구청은 넘치는 사제로 인해 보직이 모자란다고요?

왜 사제는 교회에서만 봉사를 해야 하는지요?

분명 한국에는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무척 많은 걸로 알고 있읍니다.

아프고 소외받는 계층과 어둡고 그늘진 곳 사제들이 가야할곳,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곳이 왜 본당 사목에만 있는 걸까요?

주님의 사제로 불리움 받으면서 땅에 입맞춤으로 서원한 영원한 약속,

이 세상의 온갖 더러움도 받아드리겠다는 겸손이 아닌지요?

흙이 지닌 겸손 보다는 다른 사제를 욕하며 교만을 더 많이 보여주는

사제들의 모습에서 아픔을 느낍니다.

하느님을 교회 안에만 머무르는 작은 분으로 만들지 마십시요.

 

정 진석 대 주교님...

이 공동체의 아픔을 보면서 일제시대를 생각하게 합니다.

총 칼을 앞세워 무력으로 내리누르던 일제시대....

말 까지 빼앗긴 힘 없는 가운데서 피어났던 독립운동....

토론토 교구청의 총칼 앞에 앞잡이 처럼 놀아나는 서울 교구청....

왜 이렇게 까지 해야만 하는지요?

 

어떤 한 사람의 환자를 살리기 위해 장기 이식을 할때면

수 많은 절차를 밟게 되지요.

먼저 장기 기증자를 물색하고, 기증된 장기조직의 일치를 검사라고,

면밀한 검사를 마치고 수술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나서도 한동안 갖게되는 세포들의 반응때문에 고심을 하는걸로 알고 있읍니다.

 

성녀 이소사 공동체,

분명히 주님안에서 아파하는 영혼들 입니다.

얼마나 이 공동체의 아픔을 위해 고심을 하셨는지요?

이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어떤 배려를 하셨는지요?

지금 이식된 부위가 일치를 이루지 못해 죽기 직전입니다.

주님의 세포들이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잘못된 이식이기 때문입니다.

 

정진석 대 주교님...

어떠한 큰 인간적인 권위도 주님안에 머무르는 나약한 한 영혼의 믿음을

빼앗지 못할 겁니다.

다만 그 권위에서 나오는 독기에서 상처는 받겠지요.

 

중학교때 읽은 "천국의 열쇠"가 생각납니다.

중국 대륙으로 건너간 파란 눈의 선교사 치셤 신부님이 생각 납니다.

온갖 위험을 마다 안고 주님을 알리고자 했던 치셤 신부님.....

 

모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해 기도 하겠읍니다.

 

토론토에서 아가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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