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스님이 고쳐주신 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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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철 [hl1ye] 쪽지 캡슐

2003-04-22 ㅣ No.51371

십자가를 안테나로!

 

  부활절이 지나자 어느 협력자회원이 25일 시복식 참가를 겸한 성지순례에 가져갈 약품을 주시겠다고 해서 지하철을 타고 그 약품을 받으러 가고 있었습니다. 전동차에 앉아있는 많은 승객들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할머니가 한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가톨릭신자인지 연신 묵주를 가지고 들었다 놓았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그 할머니와 좀 멀리 떨어져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동차에서 신자분들을 만나면 예외없이, "아이고 신부님, 여기 앉으십시오."하며 제게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헌데 어느 풍채가 좋고 코가 빨간 스님이 어느 지하철역에서 한분 들어오시더니 그 할머니 옆에 점잖게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 할머니와 경쟁이라도 하듯이 굵은 염주를 가지고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건너편에서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분들도 있었지만 젊은 아가씨들 신문지로 얼굴을 가리며 키득키득 웃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이 갑자기 염주를 놓고 할머니에게서 묵주를 건네받고 역시 묵주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사람들틈에 숨어 도대체 이 스님이 무엇을 하시나?하고 가까이 접근하여 살펴보니, 그 스님은 할머니의 끊어진 묵주를 고쳐주고 계셨습니다. 순간 저는 너무나 고맙고도 부끄러웠답니다. 그 할머니가 그 끊어진 묵주를 고치려고 애를 쓰고 계시는 것에 사제로서 너무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묵주를 고쳐주신 스님께 감사를 하며 레지오수첩까지 보이며 묵주기도를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마 이젠 그 스님은 큰 염주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나무 관세음 보살!"하고 기도하실 것 같아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제 주머니 속에 있는 상아빛 5단 묵주에 손이 갔습니다. 이 묵주는 몇달 전에 안산 선부동 성당의 주임신부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신 묵주입니다. 후원회 미사를 마치고 인사를 드리고 가려는데 신부님께서는 사제관에 와서 점심을 먹고 가라며 저를 붙잡으셨습니다. 저 혼자라면 당연히 응하겠지만 후원회 간부들과 저희 신학생 부모님까지 계셔서 저는 먹은 걸로 하고 가겠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께서는 묵주를 하나 만들어주시겠다며 잠깐 사제관에 들어오라고 하셔서 들어갔는데 익숙한 솜씨로 저를 위해 묵주를 엮어주셨습니다. 신부님은 그 본당 교육관 건립을 위해 직접 묵주를 만들어 파셨다고 하시며 제게는 그냥 선물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저를 기다리는 분들을 생각해서 1딘 묵주만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그 신부님은 고집?을 피워 기어코 제게 5단묵주를 만들어주셨습니다. 나중에 사제관을 나와보니 저희 신학생 아버님이 호출택시를 부르고 저를 기다리셨는데 벌써 요금이 10,000원이상이 나왔다고 하시며 "신부님, 정말 비싼 묵주를 선물받으셨습니다" 라고 하여 모두들 웃었던 기억이 나는 묵주에 말입니다...

 

  저도 전에 묵주를 만든 경험이 있는데 이미 올렸던 빈대떡(글)이지만 다시 데워올립니다.

 

 

                  아침이슬 따다 묵주만들어...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열심히 묵주기도를 하지 않은 죄에 대한 보속?을 지난 여름에 저는 단단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희 수도회에서 개최한 내친구들 여름캠프에 지도신부로 참가하여 그 캠프에 참가한 약 1,500여명의 어린이들에게 선물할 1단 매듭묵주를 만드느라고 혼쭐?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 묵주를 만들 봉사자들이 부족하여 저는 캠프에 따라온 신부님, 수녀님, 자모회원들에게까지 묵주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가면서 어린이들에게 선물할 묵주를 겨우 조달할 수 있었답니다. 그때 제가 그분들과 함께 묵주를 만들면서 부른 노래와 율동은 ’송알 송알 싸리잎에 은구술’이란 시를 쓰신 권오순 마리아님의 ’이슬처럼’이었습니다.

 

 "아침이슬 따다 묵주 만들어, 이슬같은 기도 바치고 싶네. 이슬처럼 살다 이슬처럼 져, 천국 잔디길에 이슬 이슬 이슬 이슬, 한 알 되고 싶네.

  

  그때 저는 그 묵주를 만드는 몇몇 봉사자의 눈에서 이슬이 맺히는 것을 놓치지 않았고 또 그분들이 만드는 묵주는 무지개 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에 로마에서 유학을 할때 가끔 주말을 이용하여 고백성사를 보러 로마시내에 나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꼭 들리는 아담한 성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다름아닌 판테온 옆에 있는 "지혜의 여신 위의 성모 마리아" 성당(Santa Maria sopra minerva)이었습니다. 현재 성도미니꼬 수도회에서 사목을 하고 있는 그 성당 제단 아래에는 시에나의 카타리나 성녀의 유해가 모셔져 있고 그 이외에도 많은 미술작품들이 작은 경당들을 장식하고 있어 조용히 성화를 감상하려 오시는 분들이 좀처럼 끊이지 않는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제가 그 성당을 들릴 때마다 꼭 가서 기도하는 곳은 카타리나 성녀 무덤보다는 이 제단 구석에 모셔져 있는 천사 화가라고 불리었던 복자 프라 안젤리코 수사님의 무덤입니다. 제가 그 수사님을 특별히 존경하는 이유는 10여년 전에 피렌체에 있는  성마르코 수도원이라는 그 수사님의 수도원을 방문하고 나서입니다. 지금은 미술 박물관이 된 그 수도원의 작은 수방에는 방마다 그 수사님의 성화가 가득하였습니다. 약 500여년 전에 성도니니꼬회 수사님들이 사셨다는 그 수방들의 성화를 바라보기만 해도 어떤 거룩함의 향기가 저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놀라왔던 것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만나게 되는 성모 영보(루가 1,26- 38 참조) 성화입니다. 그 성모영보 성화는 그야말로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성모영보 성화였지만 다른 어떤 화려한 성화보다도 큰 감동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막 수련을 마치고 첫서원을 준비할 때의 일입니다. 누가 "수도명을 잘 정해야 수도생활을 잘한다"고 하여 수련의 막바지에는 수도명을 정한다고 몇달 간 고심을 하기도 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가 복음의 성모영보를 묵상하다가 저는 수도명을 "천사 가브리엘처럼 주님 말씀을 전하고, 마리아처럼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자"는 생각에서 "마리아 가브리엘"이라고 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후 성모영보 성화를 보기만 하면 마치 저의 자화상?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성화처럼 살아갈려고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성모영보 성화자료만 가지고 성모영보회라는 저희 재속회원들과 피정을 하기도 했었답니다.

 

 그런데 제게 한가지 늘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복자 안젤리코 수사님이 그 소박한 성모영보 성화를 그리면서 가브리엘 천사의 날개만은 지극히 화려하게? 무지개 빛으로 했을까?" 라고... 그런데 저의 그 궁금증은 얼마 전에 "엄마의 화살기도"란 멋진 기도를 쓰신 김 옥례 율리아님(일찍 남편을 여의고 두 아드님을 가락동 성당의 신학생으로 봉헌하신 분)의 묵주기도 강의 도중에 그 의문점이 풀렸답니다. 즉 김 율리아님은 묵주기도를 할 때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이렇게 순서대로 하지 않고, "환희의 신비 안에 있는 고통의 신비, 또 그 반대로 고통의 신비 안의 환희의 신비등..."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묵주기도를 하신다는 내용을 듣고 나서입니다.

 

  혹시,"복자 안젤리코 수사님은 바로 성령의 빛이 성모님의 눈물?에 굴절되어 기쁜 소식을 전한 대천사 가브리엘의 날개(스크린?)에 무지개빛으로 투사된 것을 포착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묘사하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저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었습니다. 그후 저는 여러 성모영보 성화에서 십자가가 등장하는 것을 보았고 저의 이러한 생각이 엉터리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무리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지만 이미 약혼한 요셉도 있는데 성모님께서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처녀의 몸으로 성령으로 인한 아기를 가진다는 것은 틀림없이 눈물이 동반된 비장한 "예!"(이몸은 주님의 종입니다.지금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빕니다)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10월부터 금년 10월까지는 묵주기도의 해로 선포된 성년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아침이슬 따다 무지개 빛의 묵주(사랑의 고리, 사랑의 그물, 사랑의 핵폭탄, 휴대폰, 영혼의 무기...)를 많이 만드는 한달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가브리엘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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