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아픈 충고를 주시는 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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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수 [johnwhrbtn] 쪽지 캡슐

2000-06-30 ㅣ No.12015

찬미 예수님

 

하하하..... 웃어 넘기자고 몇 번을 다짐하고서라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몇 분의 글을 읽고 다친 마음의 상처가 쉬 아물지 않습니다.

 

자유게시판에 대해 말씀하신 분이 많습니다만 저도 한마디 덧붙이고자 합니다.

’자유란 단순히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 상태’라는 소극적 의미로 볼 수도 있고

’나 자신의 욕구에 따라 삶의 여러 조건들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보다 적극적

의미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자유게시판에서는 자신의 욕구나 필요성에 따라 누구라도 글을 쓸 수가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삼단 논법을 얘기하고, 토미즘을 말합니다.

삼단 논법에 따라 글을 쓰라?

토미즘에 따라 신앙을 이성적으로 증명해라?

여기는 그런 제한도 없을 뿐더러 토미즘을 이해하는 분이 몇 분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는 분은 아는 대로 좀 모르시는 분은 모르시는 대로 글을 쓸 수 있는겁니다.

제발 그런 전제는 이곳에서는 말아주었으면 합니다. 기가 꺽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자유 게시판은 말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반성하고 성찰해 보기도 하면서, 하느님에게로 보다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를 연습하고 훌륭히 실천해서

민주 시민으로서 우리가 확고히 서는 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과 내가 아는 바와 다른 주장을 한다고 정색을 하고

’가소롭다’라거나 ’나부랭이’라든지 ’성당 조금 다닌다고’ ’조금 안다고’ 설쳐댄다는 식이라든지 ’패거리’라고 몰아부친다든지 하는 것은 신앙을 공유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죠.

도대체 나부랭이나 패거리가 뭡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할말 따로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지요.

나부랭이는 같잖은 인간, 하찮은 인간이란 뜻이며, 패거리란 몇 사람이 어울린 동아리를 낮추어 부르는 말로서 통상 깡패나 이에 준하는 집단에게 사용하는 말입니다.

 

어떤 자매님의  남편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까지도 꼬리표를 부칩니다.

’세치 혀로 뱉은 말이 삼십년 독이 된다’고 합니다.

 좋은 뜻을 전달하고자 하는데 왜 몇마디 자제할 수도 있는 용어를 굳이 사용하셔서

상처를 주고 할퀴고 그러싶니까!!!

 

저는 얼마 전에 어떤 신부님을 진심으로 위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젊으시고, 그 완고한 뜻도 많은 분들과의 대화나 토론을 통해서 저희 교회를 위해

참으로 유용하게 쓰일수도 있겠다 싶었기에 그 분의 다소 의욕이 앞서는 내용들을 이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진심으로 그 분의 장래와 교회를 위해서 위로 대신 충고를 선택하셨습니다. 저도 그런 충고의 글을 통해서 그 분들의 진정을 마음으로 이해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충고가 지나쳐 독단이 되고, 결례를 하고, 마음을 다치게 해서야

충고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겠습니까!!

 

그리고 남의 신앙을 함부로 폄하하지 마십시오.

도대체 한 주일에 미사를 몇 번이나 참례하고, 영성체를 몇 번이나 하고, 성체 조배는,

식구들과 아침, 저녁기도는 하시는지, 얼마나 성서를 읽고 주님의 신비를 체험하시는지,

그리고 얼마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시는지는 몰라도...

교리 공부를 더 하라는 등의 말씀은 삼가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저를 아는 많은 분들은 그런 진흙 구덩이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진심으로 충고합니다.

이곳 자유게시판이 언제부터 진흙 구덩이가 되었단 말입니까?

군자거지 하루지유(君子居之何陋之有)?란 말이 있습니다.

참된 사람이 있는 곳이면, 그 어딘들 누추하리오? 란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그리스도 인이 있는 곳이면 그 어디가 누추하고 진흙탕이겠습니까!

전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가는 많은 분들의 삶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제가 읽어 ’따뜻한 글’, ’감동적인 글’을 복사하여 읽어주고, 숙연해 하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진흙탕 속에서도 참된 그리스도인을 발견하기에 그 기쁨으로 다친 마음을

싸매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경험적 존재이기도 하기에  자신의 경험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향을 싼 종이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는 비린내가 난다고 합니다.

내 마음 속에 부정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다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너무 사랑을 탓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주, 저의 하느님’ 아멘

 

 

 

                                             포항 장성동 천주교회 조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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