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펌]맞선 보여주고 사제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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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일수 [paulk] 쪽지 캡슐

2004-03-26 ㅣ No.64087

가톨릭다이제스트 펌

난생 처음 나에게 “사제가 되고 싶어?”라는 물음을 해오신 분은 살레시오 협력자회 지도신부님이셨던 뉴욕 태생의 미국인 선교사, 도요한 신부님(현재 서울대교구 노동사목 지도신부)이셨다. 도 신부님은 또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게 맞선을 보게 하신 분이다.

 

상대방과 이미 약속이 되어 있는 터라 어쩔 수 없이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협박(?)속에, 함께 활동했던 살레시오 협력자회 선배형님의 봉고차에 실려 끌려가다시피 명동성당 아래 어느 카페로 갔다. 그렇게 해서 도 신부님과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어느 자매와 맞선을 보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심히 속상한 마음이 들어 “그런 일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정할 수가 있습니까?” 하고 신부님께 따지자, 그동안 그런 식으로 결혼중매를 해오셨던 그 분은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잖아… 그럼 그 나이에 장가 갈 맘이 없으면 사제가 되고 싶어?” 하셨다.

“예? 사제~요? 제 나이에 무슨 사제가?”

“내가 잘 아는 독일인 의사친구는 마흔이 넘어서 신학교에 갔는데 지금 사제로 잘 살고 있어. 나이는 상관이 없고 사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도와줄 수 있으니까.”

      그리스도(29x38 먹2001)

                 2003년 평화화랑 개인전에서

 

만 6살에 세례를 받은 이후 단 한번이라도 사제가 되겠다는 생각은커녕 제단 위에서 복사를 서고 싶다는 생각도 눈꼽만큼 해 본 적이 없는 터였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소원은 내가 어릴 적 다른 아이들처럼 복사를 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외면했었다.

그런데 무심코 발에 채여 날아간 돌멩이에 맞아 개구리가 졸도 했다던가? 도 신부님께서 무심코 내게 던진 말씀이 시간이 갈수록 뇌리 속에 젖어드는 것이었다.

그때 내 나이는 서른이 넘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나이에 육박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화장품 회사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님은 내가 첫 돌 지나고 화재로 돌아가시고 위로 누님 한 분이 계실 뿐이어서 나는 언제고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홀어머니 모시고 살겠다는 생각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누님이 먼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결혼이 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학원에 진학해서 전공인 미술공부를 더 할 생각이었다. 나이는 점점 들고 더 나이 먹기 전에 뭔가 하긴 해야겠는데 하고 있을 무렵, 도 신부님이 꾸며내신 맞선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다 녹슨 머리로 신학교엘? 학과공부는 어떻게 따라가고… 이 나이 먹어 그나마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신학교에 갔다가 만일 못 견뎌 쫓겨나면, 그 땐 정말 무슨 창피며 궁상인가?’ 싶었다.

아무튼 맞선사건 이후로 더 나이를 먹기 전에 빨리 뭔가 인생항로를 결정할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 자신의 앞날에 대해 좀 더 심각하게 곰곰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겨우 주일미사만 참례하는 신자였는데 고민을 하면서부터 평일에도 발길은 어느새 성당을 향하고 있었고 평일미사에 자주 참례하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미사드리는 신부님이 그렇게 거룩하고 그토록 행복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신부님의 제의자락만 스쳐도 그렇게 부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내가 만일 사제가 될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쿵쾅쿵쾅 고동치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용기를 내서 도 신부님을 찾아갔다. 어떻게 갑자기 찾아왔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시는 도 신부님께 “전에 저보고 사제가 되고 싶지 않느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죠?” “응? 내가 언제…? 그랬었나?” 도 신부님은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그럼 그렇지.)

“그런데, 사제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거야?” “저는 그때 신부님 말씀을 듣고 심각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저… 신학교에 갈 수 있다면 가고 싶어요.” “그래? 그럼 신학교에 가고 싶은 생각이 언제부터 들었지?” “지난번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고 난 후부터였죠.”

말씀을 들으신 도 신부님은 그렇게 즉흥적인 생각만 가지고는 안되니 앞으로 6개월 동안 다시 깊이 생각해 본 연후에 어느 날 몇 시에 만나자고 제의하셨다. 일시적인 열망만으로 평생 사제로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착한목자(32X41 아크릴칼라 2003)

                2003년 평화화랑 개인전에서

 

그때부터 깊은 방황이 시작되었다. 그 시간 동안 별의별 생각을 다 해 보았다. 이제까지 살면서 해오던 고민보다 몇 곱절 더 크고 많은 고민이 밀려왔다. 그동안 남들에게 뒤질세라 세상일에 매료당하여 정신없이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웬일인지 앞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사제가 아니면 세상 모든 일이 다 소용없는 일처럼 느껴지고 다 뜬구름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내 자신이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급격하고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돌아가신 할머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복사도 하기 싫어하던 나였는데….

 

어찌 이것이 내 뜻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늦게나마 도 신부님을 통해 사제로 불러주신 주님께 그저 감사드릴 뿐이다. 사제로 살면서 때론 헛디디고 깨지고 괴로워할지언정 그 분의 가실 줄 모르는 사랑으로 그분은 나의 모든 것이 되시고 나는 그분의 모든 것이 되는, 영원히 그분의 뒤를 따르는 사제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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