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신앙상담 신앙상담 게시판은 비공개 게시판으로 닉네임을 사용실 수 있습니다. 댓글의 경우는 실명이 표기됩니다.

q Re:

인쇄

비공개 [112.164.96.*]

2013-05-26 ㅣ No.10185

어떤 고해 신부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그 신부님의 성장을 바랍니다.

이전에 가끔 동성애자연대 사이트 게시판에 가보면 개신교 신자들이 들어와서 별 희한한 이야기를 다 늘어놓지요.
그런 이야기는 예수없는 그리스도교에서나 하는 이야기입니다.
귀담아 듣지 마세요.

동성애를 남창이나 동성연애와 동일시하는 잘못된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선천적이라고 인정하는 최근의 경향을 일부 개신교에서는 부정하지요.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는 죄인입니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양성애자든 죄인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으로부터 100m 뒤에 있는 사람이나 100Km 뒤에 있는 사람이나 다 오십보 백보입니다.
그런데 누구는 100m뒤에서 시작해서 더 뒤로 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100km뒤에서 시작해서 차근차근 구원을 향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상관없습니다.

과거에는 동성애는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집계된 동성애자의 수는 적었지요.
하지만 최근들어서 커밍아웃을 하는 동성애자들이 늘면서 수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단지 트랜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이 시대에 오셨다면 동성애자들을 어떻게 대하셨을까요?
아마도 예수님 당시의 죄인으로 여겨오던 세리들에게 하시듯이 하셨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안식일을 지키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하듯이 하셨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세리나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던 사람들은 그들의 선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동성애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내가 나 자신을 놓아버리면 하느님도 어쩌실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누가 그들더러 죄인이라고 손가질해도 그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나무 위로 올라간 자캐오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다른 유다인들이 생각하듯이 스스로에 대해서 포기하고 있었다면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 위로 올라갈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나무에 올라갔기 때문에 예수님꼐서 자캐오를 보셨고, 그의 집에 들르시게 된 것이었지요. 그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그를 볼 이유도 없었고, 그의 집에 들를 이유도 없었겠지요.

누가 뭐라고 하든 님이 구원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그것은 지금의 모습일 뿐, 앞으로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가두지 마시고, 하느님의 구원 앞에 열어놓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일본에 있을 때에, 조당에 걸려 있는 많은 자매님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일본에 와서 일본 남자와 결혼해서 겉으로는 별 문제없이 살고는 있으나, 일본 남자들은 종교에 무지해서 잘 이해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안에서 정식으로 이전 결혼을 무효화시키고 조당을 풀 방법이 없었습니다. 일본 사람인 남편으로부터 전적으로 신임을 얻고 사랑을 얻기 전까지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조당에 걸려 있는 상태이지만, 그 분들은 단지 영성체를 못한다는 것 뿐, 성당활동은 정말 열심히 하셨습니다. 주임신부님도 수녀님도 다들 그런 사정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누구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 남편의 신임을 얻어서 일본 사람인 남편도 세례를 받고 가족 모두가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가정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종교의 테두리 안에 있는 어떤 법 때문에, 혹은 신자라는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하느님의 의지요 결정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때로는 시련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힘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한 시련을 이해하지 못하면 늘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상황을 탓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에게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나는 내 길을 잘 가면 됩니다. 내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너무나도 절망적이어서 희망이라는게 대체 뭔지 감이 잡히지 않더라도, 분명히 길은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법을 넘어서서,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하지만 그 희망은 내가 내 의지로 내 손을 뻗지 않고서는 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느님도 님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도 님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334 3댓글보기

신고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