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자유게시판

『천상의 책』과 기도회를 금지한 “주·신·교 결정”은 공정성을 잃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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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 [josemaria] 쪽지 캡슐

2023-12-12 ㅣ No.230053

 

평신도들의 기도회를 박탈한 주··교의 판정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지난 10월에 발표한 천상의 책과 하느님의 뜻 기도회를 금지한 주교회의 판정인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의(이하 주··) 결정은 공정한 조치가 아니었다. 공정하다는 인정을 받으려면, 유투브에 출연하여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루치펠이라고 신성을 모독한 전대미문의 김연준 신부도 동시에 성무집행을 중지시켜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천상의 책··교의 의견처럼 그렇게 나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천상의 책의 백미는 예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부자(父子)의 관게라는 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를 낳았다(Human beings are begotten by Him.)고 하신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인간을 낳으신 친아버지가 되신디다. 인간과 멀리 떨어진 분이 아니고 친족 관계라는 것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성경(콜로1,13-14), 하느님은 인간의 원죄와 본죄를 씻어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즉 하느님은 우리의 원죄와 본죄를 없애고 용서하시기 위해서 우리 인간의 영을 예수님의 몸 안으로 옮겨 주셨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살면서 우리의 죄(원죄 + 본죄)를 그분의 피로 씻음을 받았다. (1코린1,30; 로마8,3; 히브10,22).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낳으셨다는 말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분이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온 몸이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 우리를 낳았다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으로터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로마6,4-8 참조)

 

··교에서 금지한천상의 책은 가톨릭 출판사애서 이미 한국 교회의 인가를 받은 책이었고(1-20), 가톨릭 사제가 직접 강의하시고, 그 내용도 유익한 책인데, 더 이상 모임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쉬움이 크다

 

그런데 주··교에서 발표한 공지문은 신자들로부터 신뢰성을 잃고 있다. 그 이유로는,

··교는 먼저천상의 책의 우리말 번역의 잘못에 대해 지적했어야 한다. 즉 원문과 우리말 번역본의 괴리를 지적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디. 천상의 책번역 문 곳곳에 구속구원으로 번역하고 있다. 영어 원문을 보면 Redemption인데 그것이 구원이라고 잘못 번역되어 있다.

 

··교의견서는 관련 책의 메시지에 대한 신학적 비평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가경자인 루이사 피카레타의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하다다.

 

장님이 장님을 비난하는 것 같다. ··교 의견서에는 하느님의 구속(Redemption)과 구원(Salvation)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

 

➃ 『천상의 책에 대해 영지주의니, 정적주의, 시한부 종말론 등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루이사 피카레타 여사는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분이다다. 그분이 그런 말들을 인식하고 메시지를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상의 책구원이라 번역된 말은 구속의 오역이다. 가톨릭출판사에서는 천상의 책우리말 번역 본에 대한 교회인가를 받을 때 (1-20권까지는 교회인가를 받았음), 교회에서는 사전에 오역을 제대로 걸러냈어야 한다. 오역을 수정하지 않고 출판을 허가한 서울 대교구에 우선적인 잘못이 있다고 판단한다.

 

··교의 의견은천상의 책내용에 대해 면밀한 분석도 없었고, 원본(이태리어 아니면 영어라도)과 대조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교의 의견은 책의 내용을 오해하거나, 견강부회하여 마치 천상의 책이 절대적으로 나쁜 책으로 낙인을 찍고있다. ··교에 실린 주요 내용을 분석해 보면,.

 

 

I. ··교의 의견에 왜곡된 표현들

 

하느님의 사업은 창조/구속/성화로 이어지는데, 이를 창조/구원/피앗사업으로 신조어를 만들어 천상의 책을 비난하고 있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두 번째를 구속대신 오역인 구원이라고, 오역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고, “피앗사업이라는 말은 천상의 책』에는 없는 ··교에서 만든 신조어에 불과하다.

 

··교 의견은 루이사 피카레타를 신격화 한다.”는 내용이 핵심인데, 가장 큰 오해는 바로 하느님의 마지막 계획인 성화를 새로운 구원사업이라고 조작하여 규정한다음, 이 사업에 루이사 피카레타라는 사람을 특권적 도구로 선택하였다고, 사실과는 전혀 다르게 적고 있다. 하느님 구원계획의 단계에 대해 인식 부족에서 나온 표현이다.

 

새로운 구원사업이란 천상의 책에는 없는 말이며, ··교에서 자의적으로 만드어낸 신조어이다다. 하느님 구원계획의 마지막 단계인 성화에 루이사 피카레타를 도구로 쓰겠다고 하신 것인데, 마치 그 성화 사업을 루이사가 주관하는 것처럼 오도하는 표현은 매우 부적절하다. 루이사 피카레따가 정말 그런 분이라면, 바티칸 교황청에서 어떻게 그분을 가경자로 선포하였겠습니까?

 

하느님의 구원계획인 창조/구속/성화의 단계 중에서 창조는 사람의 개입이 없었고, 구속에는 마리아를, 성화에는 루이사 피카레타를  도구로 쓰신다는 예수님의 계획인데, 이것을 오해하여서, 하느님의 마치 성화사업을 루이사가 주관하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어서, 그 공지문을 읽는 신자들을 일시에 혼란에 빠뜨리는, 사실과는 내용이 다른 공지문이다. 그러면서 사적계시가 공적계시를 수정한다고 결론은 내리고 있다. 잘못된 결론을 정해놓고, 그 과정에 도달하기 위해서 과정을 미화하는 수법이다.

 

예수님은 창조/구속사업이 마지막 성화에 귀결된다고 하신다다. 왜냐하면 종말에 있을 성화의 단계가 하느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히느님의 구원 계획의 목표이기 때문이다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하느님의 창조/구속사업을 피카레타가 주관하는 새로운 구원사업(실제로는 하느님의 성화사업인데)에 종속시켰다고 말을 바꿈으로써, 천상의 책이 나쁜 책으로 변해 버렸다.

 

··교 의견서에서 성화사업을 루이사의 새로운 구원사업이라는 결론을 추정해 놓고,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맞지도 않는 이유들을 갖다 붙여서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진실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창조/구속/성화인데, 창조에는 사람을 쓰지 않으셨고, 구속에는 마리아를 도구로 쓰셨고, 성화사업에는 루이사 피카레타를 도구로 쓰신다는 내용이다. 즉 하느님의 구원게획 마지막 단계인 성화를 마치 루이사의 새로운 구원사업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른 오보이다.

 

··교 의견서가 오보인 해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Fiat를 모르면서 Fiat을 비난하고 있다.

하느님 사업인 구속/구원사업을 혼동 하고 있다.

루이사 여사가 미리 선택된 것을 두고 마치 하느님으로부터 특권을 받은 것처럼 오도한다.

 산제물로의 봉헌에 대해 잘 못 이해하고 있다.

평신도와 사제 간의 심각한 차별 대우

 

(1) Fiat를 모르면서 Fiat를 비난

Fiat는 마리아의 Fiat에서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라틴어 성경 주님의 기도문에 근거한다.

 

Pater noter, qui es in caelis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Fiat voluntas tua = (영어 : Thy will be done.)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 지소서.

sicut in caelo et in terra

=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Fiat은 권위있는 기관에서 일방적으로 발하는 명령이나 지시를 뜻하는데, 천상의 책에서는 하느님으로부터 발하여진 창조력있는 말씀으로써 창세기에 생겨라(창세1,3)” “...되어라(창세1,15)”라는 창조명령과 같은 의미이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인 창조/구속/성화를 실현하실 때마다 Fiat을 발하신다. 그래서 창조/구속사업으로 이미 두번에 걸쳐서 Fiat를 발하셨고, 나머지 Fiat는 종말에 성화의 단계에서는 세번째 Fiat룰 발하실 계획이다.

 ··교 의견서에서 표현한 루이사 피카레타의 Fiat 사업이라는 표현은 조작된 말로써, Fiat라는 말이 어디에 근거하는지 조차 모르고 한 표현이다. 이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지소서라는 라틴어인데, 하느님의 구원계획인 창조/구속/성화에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최종 단계인 성화(Sanctification)를 의미한다. 그리고 Fiat는 루이사가 발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발하시는 창조성을 지닌 말씀이다. (요한1,1-3)

 

또한 성경에서 천사가 일러준 예수님의 탄생예고에 대하여 제게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루카1,38)라고 , 인간(마리아)측의 긍적적인 대답인 를 뜻하기도 합지만은, 천상의 책에서는 마리아의 순종의 답변인 Fiat 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렇게 Fiat의 근거를 혼동하고 있고, 마치 루이사가 Fiat를 발하는 것처럼 꾸민 것은, 사실과는 다른 견강부회이며, 주교회의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실추시키는 표현이다.

 

(2) 구속과 구원을 혼동

 

구속(Redemption)은 우리의 영과 몸의 재 탄생이고, 구원(Salvation)은 우리의 혼의 성화를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죄와는 상관없이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히브9,28)

 

첫 구절은 죄의 면제인 구속이고, 둘째 구절은 혼의 구원에 관한 말씀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하다.” (로마5,10)

 

첫 구절은 구속이고 둘째 구절은 구원에 관한 말씀이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 인간은 영(spirit), (soul), (body)의 합일체라고 한다. (1테살5,23) 구속이란 죽었던 영과 몸이 되살아남을, 구원이란 우리의 혼이 성화됨을 의미한다다. 창세기에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하느님은 너는 죽으리라.” 하신 말씀은 아담의 영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아담은 그후 930년을 더 살았다. 왜냐하면 그때 죽은 것은 아담의 영만 죽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영은 아담 안에서 살면서 아담과 함께 죽었다. 죽었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인간의 원죄 및 본죄를 면제해 주실 구속계획을 마련하시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시어, 우리의 영을 예수의 몸 안으로 옮겨주시고(콜로1,13-14), 그분의 피로 우리의 죄를 면제해 주시고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 (요한3,3; 에페1,7; 1코린1,30; 로마8,3 참조)

 

즉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1코린12,27), 그분의 몸 안에서 살았고(1코린1,30) 예수님과 한 영이 되어(1코린6,17),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살게 된 것이 하느님의 구속사업 이. (로마3,24) 이 구속은 우리의 믿음과는 상관없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우리가 예수를 알기 전에 즉 예수를 믿기 전에 이미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로마3,24)

 

이 구속의 비밀은 천상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 즉 하느님이 우리의 영을 예수께로 옮겨 주셨을 때는 (콜로1,13; 1코린1,30), 예수님이 성모님의 자궁에 잉태된 아기였을 때이다. (개신교에서는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라고 거짓 증언한다.) 예수님이 성모님의 자궁에서 잉내되어 아기 상태인 예수님 몸 안으로 우리의 영을 옮겨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 그러니까 우리가 그분을 알기 전에, 하느님은 우리가 지은 원죄+본죄를 면제하시고(remission of sins)(레위17,11), 예수님의 몸 안에서 그분의 영원한 생명을 받게 하셨다. 이것이 구속이다. 그러니 많은 이들이 혼동하고 있는 혼의 구원과는 구별된다. 그리고 우리의 죽을 몸을 종말에 가서 다시 살리시는데(1코린15,51-54), 이것 또한 구속(속량)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구원은 구속과는 다르다. 예수님의 뜻 안에서 우리의 혼(soul)의 재탄생을 의미하는데, 이 혼의 구원을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필요하다. 즉 성경 말씀은 우리 믿음의 목적은 혼의 구원이라고 한다. (1베드1,9) 이 혼의 구원을 다른 말로 하느님의 마지막 계획인 성화(Sanctification)이다. 마지막 시대 에 이 성화가 이루어져야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신다. 이런 모든 메커니즘이 성경에는 없지만, 천상의 책예수님의 메시지에는 구체적으로 들어있다.

 

다음은 제2차바티칸 공의회에서 공포한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헌장13항에 기록된 구속과 구원에 관한 구분이다.

 

그들이 타락한 후에는 구속을 약속하시어, 구원에 대한 희망을 일으켜 주셨고(창세3,25), 선업에 항구하여 구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로마2,6-7 참조) 끊임없이 돌보셨다” (2차바티칸문헌,CBCK,2005, 162쪽 참조)

 

그러니까 구속과 구원을 구분해서 써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구원같은 조작된 신조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두 개념을 구분해서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유로 구속은 우주적이고 집단적인 반면, 구원은 비우주적이고 개인적이다. 그리고 구속과는 다르게 구원은 선택적이다. 구속의 기본 개념은 원죄로 죽은 우리의 영의 되살림(regeneration)이다. (에페2,1; 2,6; 로마3,24; 2코린5,17참조)

또한 구속은 인류를 원죄와 본죄로부터 해방시키신 일이며, 이는 인간의 믿음 때문이 아니며,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일도 아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우리가 값없이 의롭게 되는 것(redeemed)을 말한다.(로마3,24) 그러니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떠나서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구속과 구원을 구분하는 두 번째 이유는 구속이 전적으로 예수의 인성(人性)의 업적인 반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이 개입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책에서 예수께서 구속과 구원에 대해 가르쳐 주시는데, 먼저 구속에 대해서는, “내 안에서 그들은 새로운 삶에 태어났고, 모두가 내 인성의 모든 업적으로 각인되었다. 이는 내가 새로운 탄생을 준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사람에 내 업적도 전부 내주어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고 하였고,

 다음으로 구원에 대하여는, 반면 사람이 죽은 뒤에 내 뜻 안에 다시 태어나는 이에게는 내 뜻이 그로 하여금 이 뜻의 끝없는 바다들을 보게 하여 그 뜻 안에서 새로이 태어나게 한다. ”예수님의 뜻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구원이다. 즉 예수님의 몸 안에서 다시 태어남은 구속이고, 예수님의 뜻 안에서 다시 태어남은 구원이다.

 

구원은 인간이 죽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의 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뜻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과 종말에 있을 각 개인이 성화를 이룬 상태를 말한다다. 우리의 혼이 예수님의 뜻 안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예수께서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고 말한 이유이다.

 

구속은 전적으로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예수의 피로 인간의 죄를 처단함으로써(로마3,24; 로마8,3) 우리를 의롭게 만들어 주신 위업이고, 동시에 인간에게 예수의 생명을 나누어 주신 신비이다. 반면에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시어 인간에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준다.(시편82,6) 그래서 구원은 예수의 신성이 개입하시는 업적이라 말할 수 있다.

 

세 번째로 구속과 구원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공동 구속자임을 입증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조차도 마리아가 공동 구속자되심을 놓고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이들이 많다. 그들이 부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구속구원의 뜻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

 

엄격히 말해서 성모 마리아는 구원자도 아니고(사도4,12) 중재자도 아니다.(1티모2,5) 그래서 성모 마리아를 공동 구원자라고 부르는 것은 틀린 말이다. 우리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에수님의 구속사업에 도구로 쓰인 분이다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는 다만 우리 신앙인들의 기도를 예수께 중보 해주시는 가장 강력하신 전구자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우리의 조력자와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하느님의 신비로운 도성, 아베마리아출판사, 251)

 

그러면 성모 마리아가 공동 구속자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성모 마리아는 우리 인간 구속의 샘이신 예수의 몸을 만들어 주신 분이다. ‘속죄판이 된 예수의 몸을 통하여 인간의 죄(원죄+본죄)가 면제되었다. (루가1,26-38; 로마8,3)

 

동시에 속죄판은 하느님이 거기 정좌하시어 인간을 만나주시고 기도와 간청을 들어주셨다. ‘속죄판이 마리아 태중에 놓였으니, 마리아는 계약의 궤’이. 살아있는 신비로운 이 계약의 궤는 하느님 은총이 가득히 머무는 곳이면서 동시에 화해와 속죄가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하느님의 신비로운 도성, 285)

 

마리아의 태중에 잉테되신 예수님의 몸 안에서, 속죄가 이루어졌다. 마리아의 태중에 예수가 잉태되자, 하느님께서는 예수의 인성 안으로 인간의 영을 옮겨주시어 우리의 영이 예수 안에 잉태됨으로(콜로1,13) 이중의 잉태 기적이 일어났다. 즉 예수는 성모 마리아의 태중에, 그리고 인간의 영은 예수의 몸 안에 잉태된 것입니다. 이것이 이중의 잉태 기적이다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이 마리아의 태중에/예수의 인성 안에 살았으니 그분은 우리의 어머니이이다. 예수님의 증언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된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예수의 피로 인간의 죄를 처단할 때에, 예수 인성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신 어머니 마리아도 예수가 겪은 엄청난 고통을 함께 겪었다고 전해 준다.(천상의 책1294,8-9 참조)

 

셋째,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구속을 성취한 모든 인류의 어머니로서 구속 사업에 그분의 필연적인 참여 때문이다. (구속주의 어머니, 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1987. 3. 25., 1항 및 천상의 책1413,9 참조)

 

넷째,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공동 구속의 임무를 부여해 주셨다.(천상의 책1740,8 참조)

 

성경에 기록된 죄의 용서인 구속의 원리를 바오로는 에페소서와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

(에페1,7)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구속)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로마3,24)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재이다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콜로1,13)”라고 하는 바오로의 가르침을 상기하여야 한다. 바오로는 이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인간의 연대를 말하고 있다. (주석성경571, 신약, 주석 번호 14-다 참조)

 

우선 콜로세서,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콜로1,14)” 이 본문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느님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자 우리의 영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옮겨 주셨고(콜로1,13),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면서(1코린1,30) 그분의 지체가 되었고(1코린12,27), 그분의 몸 안에서 그분의 피로 우리가 속량되었다.“ (에페1,7; 로마3,24; 8,3)는 것이다. (히브10,22; 레위16,15 참조)

 

이렇게 구속과 구원은 다른 개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구속(redemption)과 구원(salvation)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구원이라 부르고 있다. 이는 하느님의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개신교에서는 나는 구원받았네하고 떠든다. 구속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하느님께서 우주적으로 행하신 구원 행위이기 때문에 구속을 확신하는 것은 옳지만, 최종 구원(성화)은 종말에 가서 예수께서 결정하시는 일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은 해주시지만(에페1,14), 종말의 심판에서 최종적으로 받을 구원은 우리 스스로 확신하는 일은 난센스다. 요지음 가롤릭 신자들도 개신교에서 모방하여 나는 구원받았네하고 떠든다 교회에서 구속과 구원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구원이라 가르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예수께서 가라지의 비유(마태13,30)’에서 수확 때에 알곡과 가라지가 가려진다고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예수의 공덕으로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는 되었지만, 구속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구속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받은 소명을 다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2베드1,10-11)

 

 

(3) 이사여사가 미리 선택되어서 마치 특권을 받은 것처럼 표현

(··교루이사의 신원과 사명 2.1.)

 

피카레타를 피앗시대에 예수님의 뜻을 이룰 새 시대의 하명자요, 영원하신 하느님의 뜻으로부터 미리 준비된 사람이며 새시대를 여는 특권족 존재이다. 심지어 아담과 하와 이전에 존재한 이로 묘사된다.“

 

··교의견서는 루이사 피카레다 여사가 유일하게 선택받은 특권을 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는데, 루이사 뿐 아니라 선택받은 인간은 모두는 창조 이전에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에페소서14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루이사 뿐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서 선택받은 인간은 모두 창조 이전에 선택받은 사람으로, 루이사만이 특권을 누린다는 표현은 어불성설이다.

 

(4) ‘산제물로의 봉헌에 대한 오해

 

루이사 피카레타는 예수님를 대신하여 산 제물로 봉헌된 존재이다.“

(루이사의 신원과 사명 2.2)

 

성경의 기록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로마12,1)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1코린6,19-20)

 

산제물이 라는 표현애 대해 마치 루이사가 툭권을 받고 산 제물로 봉헌되는 사람인 것으로 오해하게 만드는데, 바오로 사도는 우리 인간 전체를 두고 한 말이다. 주석성경의 주석은 이렇게 평한다.

 

여기어 몸은 혼과 구분되는 존재로써 인간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인간 전체를 가리킨다. 인간은 몸을 통하여도 몸 안에서행동하는데, 이 몸은 인간이 실존하고 행동하는 데에, 하느님과 사람들과 세상과의 관계를 맺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러함 몸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다(1코린6,15). 그래서 몸은 주님을 위하여 있다. 그리고 몸을 위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1코린6,13) 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몸을 희생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이다” (1코린6,19-20 참조)

 

 

(5) 평신도와 성직자 간의 심각한 차별

평신도와 사제간의 차별 대우는 유투브에서 천상의 책과 관련하여

유투브 방송에서 하느님이신 구원자 예수님을 루치펠로 몰면서, 독성을 퍼뜨리고 있는 김연준 신부(광주교구 빛가람성당)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가 없는 것은, 평신도와 사제 간의 형평성을 강조하고 있는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에 위배됩니다.

김연준 신부의 주장은 가톨릭 교리와 성경의 왜곡된 주장이고, 심지어 예수님을 마귀의 두목 루치펠로 몰아가는 언행은 소름끼치는 신성모독이다. 유투브는 전세계 사람들이 시청하는 방송이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대놓고 마귀의 두목이라고 독성을 퍼뜨리는 사제가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교의 의견을 보면,

 

천상의 책에는 신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긍정적인 부분이 있고, 성경이나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라고 평가하면서 부분적으로천상의 책에 대한 유익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주··교와는 대조적으로천상의 책은 마귀의 책이고, 그 메시지를 전하는 이는 루치펠이고, 루이사 피카레타는 마귀이기 때문에, 신앙에 유익성을 1도 인정하지 않는 독성을 뿜어내고 있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주··교의 의견과도 배치되는데, 유투브방송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그의 주장을 아무런 제재없이 그냥 덮어두는 것은 평신도의 기도 모임을 금지시킨 판결과는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뿐만아니라, 지금 교회에서 일고 있는 시노달리타스 운동의 정신과도 배치된다.

 

예수님을 마귀로 규정하는 행위는, 가톨릭의 정체성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으로, 김 신부는 모든 성무 집행에서 제외시켜야 마땅하다. 우리 신앙의 최종목표는 정의 실현인데, 그러한 신성모독 행위를 그냥 덮는다면, 주교회의의 권위는 땅에 떨어질 것이며, 주교회의는 정의가 아닌 부정과 타협하는 기관으로 전락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김연준 신부가 유투브에서 강의한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성경과 교리서를 왜곡한 김연준 신부의 허위 주장들:

 

(1) 첫째 주장:

성체의 성변화는 가톨릭 사제만의 힘인데, 천상의 책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교리에 어긋나며, 가톨릭 사제의 고유 권위를 무시하는 행위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루치펠이다.

잘못된 주장인 이유:

가톨릭 교리서 1375번에는, “봉헌물들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하는 것은 미사의 사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시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가 밀떡을 축성하지만, 그 말의 효력과 은총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 이는 내 몸이다.’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봉헌물들을 변화시킨다.”고 한다.

 

따라서 김신부는 가톨릭 교리서(1375)를 무시하고 부정하고 있다.

예수님이 천상의 책에서 성체의 성변화는 사제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힘으로 되는 것이라고 한 말씀은 지극히 타당하며, 교리서와 전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이 오류라고 주장하는 김신부의 주장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난하고, 교리서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2) 강사의 둘째 주장:

성체 = 하느님의 뜻인데, 천상의 책에서 예수님은 성체와 하느님의 뜻을 분리한다.”

 

잘못된 주장인 이유:

성체 = 하느님의 뜻이라는 강사의 논리는 성경의 왜곡이다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이 창조/구속/성화를 이루시는 인류 구원계획을 세우신 거룩하신 하느님의 의지(Divine Will)이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청원 기도에서, ‘아버지의 뜻이 곧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의 구원계획 중에서 창조와 구속을 이루셨으니, 이제 남은 하느님의 뜻은 종말에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성화(sanctification)를 이루시는 뜻이다.

 

하느님의 뜻과 성체는 비교 대상이 아니며, 하느님의 뜻은 최상위의 개념이기 때문에 당연히 성체보다 상위이고 성체와는 별개로써 분리된 개념이다. 김신부는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주장이며, 성경을 왜곡한 허위 주장으로 판단된다

 

(3) 강사의 셋째 주장:

미사에서 영한 성체는 입에서 녹아 그 형상이 없어져도, 예수님의 현존은 영원하다.

 

잘못된 주장인 이유:

우리가 미사에서 영한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현존의 존속 기간 관한 내용인데, 영어 교리서와 한글 번역을 보면 다음과 같습다.

 

1377 The Eucharistic presence of Christ begins at the moment of the consecration and endures as long as the Eucharistic species subsist. Christ is present whole and entire in each of the species and whole and entire in each of their parts, in such a way that the breaking of the bread does not divide Christ.

1377. 그리스도께서는 성체가 축성되는 순간부터 시작하여 성체의 형상이 존속하는 동안 계속해서 그 안에 현존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의 두 가지 형상 안에 각각 온전히 현존하며, 또 그 각 부분도 현존하시므로 빵을 나누어도 그리스도께서는 나뉘지 않으신다.

 

가톨릭 교리서는 성체를 영하고, 그 형상이 입속에 남아 있는 한, 예수님이 성체 안에 현존하신다는 의미이며, 입 안에서 다 녹아 없어지면, 예수님의 현존이 사라진다는 의미라고 판단된다. 빵과 포도주의 형상이 남아 있는 한 예수님이 실제적으로 계속 현존하신다는 말의 의미는 형상이 살아지면 예수님의 현존도 살아진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요한복음 6장을 예를 들어, 성체 안의 예수님의 현존이 영원하다고 주장하는데, 요한복음651-59절의 말씀은 우리가 미사에서 영하는 성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영을 예수님의 인성 안으로 옮겨주셔서(콜로1,13-14), 우리가 예수님과 영적으로 결합을 이루었고, 예수님의 몸 안에서 살면서(1코린1,30),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원죄와 본죄를 면제받은(로마3,24; 8,3) 속량 즉 구속의 효력이 영원하다는 의미라고 본다.

 

따라서, 성경의 말씀은 예수님의 살과 피는 우리가 예수님과 결합됨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지, 성체의 형상 그 자체 안에 예수님의 현존하시는 시간이 영원하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우리가 영한 성체의 형상 안에 예수님의 현존은, 형상이 있을 때만 예수님이 현존하신다는 것이지, 성체의 형상이 입에서 녹아 살아져도 예수님의 현존이 영원하다는 강사의 주장은 그래서 오류이다

 

성체 안에 예수님의 현존이 영원하다면, 우리가 세례의 때 한 번만 영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미사 때마다 영할 필요가 있겠는가?

 

(4) 강사의 네번째 주장:

루이사 파케타의 지위가 너무 신격화 되어있다.

 

잘못된 주장인 이유:

천상의 책에서 보면, 예수님은 어머니인 성모님과 가타리나 성녀의 축복 속에서 루이사 피카레타와 정식으로 혼인을 하신다다. 물론 영적 혼인이다 따라서 루이사님은 예수님의 정배이시다. 루이사가 성모님보다 높으냐? 또 누구보다 높으냐? 는 등은 유아기적인 질문이며, 우리 인간은 예수님의 결정을 그대로 믿고 따르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결정에 순종해야 하며, 우리 인간이 끼어들어서 시비할 사안이 아님으로, 강사의 주장은 의미없는 악의적인 시비에 불과하다다. 인간이 예수님이 하신 일을 간섭할 권한이 없다.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보다 높아지려는 교만이다.

 

(5) 강사의 다섯번째 주장:

강의의 결론으로 천상의 책에서 루이사 피카레따님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이는 예수님이 아니고, 마귀의 두목 루치펠이며, 메시지를 받은 루이사 피카레타는 마귀라고 주장.

 

잘못된 주장인 이유:

예수님이나 루치펠이 될 수 없고, 루이사가 마귀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그것은 루이사 여사님이 예수님의 오상(stigmata)을 받았다는 사실이. 루이사 피카레타 여사님이 예수님으로부터 오상을 받은 것은 18992, 그분의 나이 34세 때의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Extraordinary Mystical Gifts:

Shortly afterward a last bond was added with Jesus: “The Marriage of the Cross.” From that time on Jesus gave her the most painful stigmata of His Passion, yielding nevertheless to Luisa’s request that He allow them to remain invisible. The Crucifixion was renewed frequently.

 

따라서 루이사 피카레타 여사님이 예수님으로부터 오상(stigmata)을 받았으니, 예수님은 루치펠이 될 수 없으며, 루이사 여사 또한 마귀가 될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예수님을 루치펠이라고 모는 강사의 주장은 악의적인 거짓 주장이며, 루이사 여사님을 마귀로 모는 것 또한 사악한 언행이다

 

예수님과 정배이신 루이사님을 마귀로 모는 것은 가톨릭사제로서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며, 이는 독성이다. 이 거짓 증언들은 오상의 비오 성인께서 예수님의 오상을 받은 후, 거짓 고소들, 진실 왜곡과 부당한 사목 규제 때문에 몹시 고통을 당한 역사적인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덧붙이는 사실

김연준 신부의 강의에 반박하는 댓글로, “교리에 어긋나는 주장이라고 반대의견을 제기하면”, 강사는 뒤에 숨어서 일체 나타나지 않고, 강사에 의해 사전에 조직된 댓글 부대인 빛가람성당교인들 (강사의 소속성당교인들)은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자에게 벌떼같이 달려들어, “당신은 개신교의 사이비 교주 이만희.” 로 몰아 붙인다.

 

인터넷에서 집단 테러를 당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 영성에 참여하는 교인들이나, 강사의 주장에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자는 모두 이단이라고 쏘아 붙인다. 심지어 시탄아 물러가라고 구마경까지 외친다. 이런게 가톨릭 신자인가? 광신도를 능가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건전한 비판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정신병자니까 정신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는 등 상대의 명예훼손을 서슴치 않는다. 이러한 집단적인 행동은 거짓선동을 비판하고, 허위 주장을 반대하는 성실한 가톨릭신자의 명예를 짓밟는 행위어서, 명예회손죄로 검찰에 고발을 준비 중에 있다.

 

지금 김연준 강사로 인해 한국 천주교 교인들은 두 동강이 나 있는 사실을 아십니까? 코로나 펜데믹 운운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김연준신부를 추종하는 이들과 그 반대편으로 갈라져 서로 대립하고 있어 한국교회가 시들고 병들고 있습니다. 김연준 신부 추종자들은 그의 주장에 반대하거나 대항하는 자들은 모두 이단으로 몰고있습니다. 이런 일을 벌이면서 김신부는  예수님에 대한 독성으로 가득찬 유투브 활동을 1년 넘게 계속하고 있어, 그것을 중단하라고 요청하여도 못 들은 척 합니다. ··교의 형평성 있는 조치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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