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산울림과 나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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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01-10-26 ㅣ No.25770

 

 지금부터 22년 전에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그때는 석간이었던 동아일보를 배달하려고 보급소엘 갔습니다. 신문 150부를 들고 배달을 하고 나면 배도 고프고 그래서 신당동 떡볶이 집엘 자주 갔습니다.  요즘은 신문도 다들 오토바이로 배달하지만 그때만 해도 오토바이 배달은 없었습니다.

 

 신당동의 떡볶이 집에는 음악이 있었고, 맛있는 떡볶이가 있었고 우리들만의 세상이 있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음악은 레이프 가렛의 "다함께 춤을 춰여"라는 신나는 댄스 음악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진, 나훈아와는 전혀 다른 음악을 보여준 산울림의 음악이 있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산울림의 음악을 좋아했고, 저도 물론 좋아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신문을 배달하려는데 '호외'가 나왔습니다. 대통령이 유고라고 했다가, 서거라고 했다가 결국은 대통령이 죽었다는 내용의 신문기사였습니다. 대통령이 죽었다는 사실은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분은 새마을 운동을 주도하셨고, 민족의 근대화를 위해서 산업현장을 뛰어다니셨고, 수출 100억불, 국민소득 1000불을 위해서 불철주야 땀을 흘리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그분의 앞모습만 보았습니다. 신문과 방송도 그분의 앞모습만 저에게 보여주었으니까요.

 

 그 뒤 저는 그분의 뒷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무리하게 삼선개헌을 하였습니다. 긴급조치를 남용했습니다.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저항을 잔인하게 진압하도록 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무리하게 유지하려다가 가장 가까이 있는 측근에게 그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분이 죽은지 22년이 되는 날입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가 세운 업적이나 그의 앞모습만으로는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진정한 평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결국은 드러날 뒷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살아있는 사람은 결코 성인 품에 올리지 않습니다. 그가 많은 기적을 행했어도, 그가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어도 그렇습니다. 그가 아무리 높은 직책에 있었어도 그렇습니다. 죽은 다음에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성인 품에 올릴 수 있는지 조사를 합니다.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내가 하는 일과 내가 하는 말과 내가 하는 행동이 비록 정당하다고 할지라도 사실은 어느덧 나는 나의 욕심과 나의 이기심을 뒤에 감추고 있을 때가 많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도 바오로가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선을 행하려고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로마 7, 21.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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