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무서운 일들과 굉장한 징조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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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진신부 [yjinp] 쪽지 캡슐

2001-11-27 ㅣ No.26835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11.27)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 혹은 '때가 왔다' 하고 떠들더라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들을 따라가지 마라.

또 전쟁과 반란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끝날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민족이 일어나 딴 민족을 치고

한 나라가 일어나 딴 나라를 칠 것이며

곳곳에 무서운 지진이 일어나고

또 기근과 전염병도 휩쓸 것이며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굉장한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다."

 

                - 오늘 복음(루가 21, 8-11)에서

 

 

 

 

"선생님 얼굴에는 얼핏 스치는 그늘 같은 게 있어요."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나도 내 얼굴에 그늘이 스며 있는 걸 안다.

내 시가 그랬고 지나온 내 삶이 그랬다.

그게 얼굴에 스며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삶의 그 그늘 때문에 시를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을 때도 그늘진 모습이 그대로 배어 나오고,

작품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그늘진 시어들이 섞이곤 한다.

 

몇 해 전부터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책표지에도 웃는 모습의 사진을 싣고,

남과 어울려 생활할 때에도 전혀 내색을 하지 않는다.

나 혼자 이런 세상 시련과 고뇌를 다 짊어진 사람인 양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과장된 모습이라 생각해서

표정을 많이 바꾸었다.

그런데도 살면서 얼핏얼핏 내 얼굴에 스치는

그늘진 그림자를 사람들은 발견하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그늘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전혀 새롭게 해석하는 글을 읽었다.

판소리 명인들이 아무리 잘해도 귀명창들이

"저 사람 소리에는 그늘이 없어"하면

그날로 끝난다는 것이다.

신산고초가 없는 사람한테는

그늘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늘이란

고난 많은 삶에서 생성되는 한을 말한다.

그 한을 풀어버리지 않고 삭이는 태도,

욕됨을 안으로 누르고 참고 견디면서

정진하는 사람의 마음에 생기는 것이

그늘이라는 것이다.

 

그늘은 그 자체가 어둠이 아니고,

빛이면서 어둠이고, 웃음이면서 눈물이고,

천상적이면서 지상적이라는 것이다.

...

가장 그늘이 많은 소리를 '수리성'이라고 하는 데

폭포수 앞에서 피를 토하는 수련을 한 끝에 얻는

그런 소리를 일컫는다.

 

나야 그런 득음의 경지에 들어간 사람의

미학적 깊이를 담은 모습에서 오는 그늘과는

거리가 멀지만 우리 인간의 삶도

승리보다는 실패, 영광보다는 좌절, 기쁨보다는 슬픔,

평안함보다는 쓰라림, 무난함보다는 연속되는 시련이

더 큰 사람을 만든다.

양지쪽에서만 살지 않고

그늘지고 어두운 곳에서도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인생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된다.

 

                             - 도 종환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

                 - 정 호승

 

 

다시 오늘 복음으로 되돌아가 본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전쟁과 반란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한 민족이 일어나 딴 민족을 치고

한 나라가 일어나 딴 나라를 칠 것이며

...

무서운 일들과 굉장한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다."

 

 

 

전쟁과 테러와 반란의 소문은

더 이상 근거없는 루머가 아닌

우리 삶의 실재이다.

무서운 일들과 굉장한 징조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건

하늘의 표징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세상과,

오늘 내 삶의 주변과 또 내 안에는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런

그늘이 많은가!

때로 감당할 수 없다고 몸서리치는

그늘 안에 표징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기를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으로 우리에게 건네 주신다.

 

그 그늘들, 표징에 흔들리지 않고

아니 흔들리되 끝내 어둠으로 남지 않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이 오늘 나의 복음이 아닌가.

두려움과 절망, 아픔과 실패라는

그늘을 지닌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주님께서는 그늘을 안고 살며

불안하고 두려움에 머무는 이들을

사랑하시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그늘을 안고 살되

그래서 불안함과 두려움에 떨고 있으나

그 하늘의 표징을 믿음의 눈으로 읽고

희망을 준비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

 

그 사랑의 자격을 갖춘

그늘진 모든 이를 사랑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삽입곡 '바위처럼'

 

        글곡 유 인혁,  노래 꽃다지(가톨릭 환경 평화 생명 음악축제 중)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 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리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 가며

마침내 올 해방 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첨부파일: 바위처럼.asx(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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