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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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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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mic2885] 쪽지 캡슐

2015-12-29 ㅣ No.86632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할머니의 수레

  

 "이놈의 할망구야, 천천히 가."

"그러니까 꽉 잡으라고 했잖아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혀? 집에 가면 혼날 줄 알아."

"때릴 수 있으면 때려 봐유. 차라리 날 때렸을 때가 낫지.

 이게 뭐여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구."

 

"이 망할 놈의 할망구···."

 

오늘도 할머니는 수레에 할아버지를 태우고 읍내 장터로 향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밖으로 나온다.

 

할아버지는 교통사고가 나기 전까지만 해도 늘 장터로 놀러 나왔었다.

 "집은 너무 갑갑혀. 사람은 자고로 두 발로 열심히 걸어야 해.

이 세상 구경헐 것이 얼마나 많은데 집에 처박혀 있어?"

이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칠 년 전, 할아버지는 읍내 대폿집에서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밤늦게 귀가하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사고차량은 뺑소니를 치고 말았다.

외지고 어두워서 그 누구도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고 때문에 불행히도 할아버지는 두다리를 잃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깊은 절망에 빠져 매일 술만 드셨다.

 

"할망구야! 어서 이리 줘. 주란 말이야!"

"그만 좀 드쇼. 그러다 죽으면 어찌하려고 그려요."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이 꼴로 어떻게 살아?"

"뭘 어떻게 살아요? 평소대로 똑같이 살면 되지유.

내 발 네 발이 어딨어요. 빌려 쓰면 다 내 것이지. 밖에 한번 나가 볼 거유?"

 

"이 망할 놈의 할망구야! 이 다리로 지금 어떻게 나가?"

"혼자 술 드시면 맛이 나남유? 함께 먹어야지. 읍내 막걸리 집에 한번 가 볼 거유?"

 

"······."

할머니는 잠시 후, 창고에서 손수레를 꺼내 왔다.

"민구 아버지, 여기 타요."

 

"미쳤구먼. 저 할망구가 완전히 돌았어. 동네 창피하게 지금 나보고 그걸 타라구?"

 

할아버지는 방문을 꽝 닫았다.

"싫으면 관둬유!"

할머니도 손수레를 발길질했다.

 

며칠 후,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들으라고 그런 건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날씨 참 좋네. 이런 날 바람이나 한번 쐬면 참 좋겠구먼···."

할머니는 잽싸게 일어나 마당에 있는 손수레를 문 앞으로 끌어왔다.

"자, 천천히 잘 타 봐요."

 

"할망구야, 면허증 있어?"

"걱정 붙들어 매슈."

 

등이 굽은 할머니는 올해로 육 년째 손수레에 할아버지를 태우고 읍내의 막걸리 집으로 향한다.

 할아버지를 막걸리 집에 내려놓고 할머니는 그 집 앞에 쪼그려 앉아

할아버지가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린다. 처음엔 막걸리 집에 함께 들어갔는데

웬지 할아버지가 불편해할까 봐 그냥 밖에서 기다린다.

 

"할망구야, 오늘은 그만 가자. 어서 들어와."

할아버지의 큰소리에 할머니는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손수레에 태웠다.

"오늘은 무슨 얘기를 했슈?"

 

"저 자식들이 나보다 어릴 때, 공부를 잘했다는 거야.

 쳇, 중학교도 못 나온 것들이!"

 

할머니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힘겨웠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점점 수레를 끄는 데 힘이 부치고, 무릎 관절과 허리도 쑤시고 아팠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놈의 할망구, 요즘 왜 이렇게 느려? 기름이 다 떨어진겨?"

"그런가 보네요. 기름 좀 줘유."

 

"집에 있잖여."

"집에 무슨 기름이 있어유?"

 

"참기름 말여. 그거 한 사발 따라서 마셔."

"하하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유? 나 아직은 괜찮으니까,

삼십 년은 괜찮으니까 그때까지 오래 살기나 해유. 알았슈?"

 

"그렇게나 오래?"

"예. 자, 그럼 갑니다. 민구 아버지, 꽉 잡아유."

 

"알았으니까 어서 가기나 혀."
할머니는 한 걸음 한 걸음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제발 건강하기를.

그래야 할아버지에게 친구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즐거움을 줄 수 있으니.

 

할머니의 수레는 할아버지의 발이었고 행복이었고 함께 나누는 사랑이었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길을 함께 갈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 사람이 내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건, 슬픔을 주는 사람이

건, 내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건, 피해를 주는 사람이건, 내게 힘을 주

는 사람이건, 핀잔을 주는 사람이건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늘 나무처

럼 그 자리에서 변치 않고, 나와 함께 인생을 만들어 간다는 것만으로

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출처 : 엄마, 정말 미안해(김현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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