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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시 사건(Drefus Aff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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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량 [narcciso] 쪽지 캡슐

2022-03-04 ㅣ No.5814

                                                                                      드레퓌시 사건(Drefus Affair)




드레퓌시 사건(Drefus Affair)19세기 후반 프랑스를 휩쓸었던 군국주의, 반유대주의, 강박적인 애국주의 때문에 억울하게 유대인 장교인 알프레드 드레퓌시가 간첩협의로 수형 생활을 하자 이를 뒤집으려는 진보 세력과 고수하려는 보수 세력 간에 있었던 대규모로 충돌했던 정치적인 스캔들로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대표적인 인권유린, 간첩 조작사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프랑스 시민들이 군부의 인권 탄압에 맞선 드레퓌시 사건(Drefus Affair)은 자유, 평등, 연대를 모토로 삼아온 프랑스 사람들의 자존심에 흠집을 낸 사건이면서 오랫동안 인권 탄압의 사례로 인용되었다.

북독일 연방에게 패배한 프랑스는 전쟁 실패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유대 혈통의 장교 드레퓌시를 스파이로 지목했다. 프랑스 육군 정보국은 프랑스 주재 독일 대사관의 우편함에서 한 장의 명세표를 발견하는데 이 명세표는 프랑스 육군의 기밀문서였다. 익명의 이 편지에는 총 13개의 단어가 적혀 있었다. 재판관들은 그 중 4개의 단어가 드레퓌시의 필체와 비슷하다는 것을 증거를 그에게 반역죄를 덧씌웠다. 그 후 범인이 체포되지만 몰래 영국으로 탈출시키면서 내전을 방불케 하는 극렬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에 보다 못한 작가 에밀 졸라가 1898년 로로르(L’Aurore)지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실었다. 군부는 에밀 졸라에게 군법회의를 중상 모략했다는 죄목으로 유죄 선고를 내리고 졸라는 법정에서 내 편은 오직 하나의 관념, 즉 진실과 정의뿐이다.”라는 진술을 했다. 날조가 밝허지면서 군부는 재심 군법회의를 열지만 판결을 완전히 뒤집지는 못하고 드레퓌시를 특사로 석방하는 조치만 취했다. 그가 무죄판결을 받고 명예를 회복한 것은 1906년에 이르러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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