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근래에 보기드믄 명비판문(펌)(요한금구에게 드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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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yearheang [cpark] 쪽지 캡슐

2002-06-08 ㅣ No.34813

금구요한 글의 허구와 망상적 생각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그의 글의 가치없음을 예리하게 분석, 비판한 근래에 보기드문 명문 (我獨異於人 님 작성)을 주교회의 게시판에서 퍼왔읍니다. 이 비판문이 돈독한 신앙 생할을 하시는 형제, 자매님들이 다시한번 금구요한과 그의 추종자들에대해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울러 스테파니아라는 사람이 불쏘시게 사이트에다 우리 천주교의 가르침을 전면 부정하는 글들을 퍼날르기 시작했음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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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獨異於人 님이 작성한글

 

요한금구에게 드리는 글입니다.

 

 

이 글은 我獨異於人 님이 2002-06-08 오후 5:07:23에 작성했으며, 10번 조회되었습니다.

 

 

   현재 0분이 추천하셨습니다 교회 해체선언이 정답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기대는 안하지만 한번 읽어보시고 님의 추종자들도 정신을 차렸으면

하는 소망에서 드립니다.

 

★★★한국카톨릭교회해체선언문(1/10)

 

나 금구요한은 2002년4월19일 42돌 4.19학생의거일을 맞으며  

너무나 병들고 썩어버려 이미 회생불능 지경에 이른 교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멍청한 벙어리가 된 교회,

미친 헛소리만을 해대는 교회,

정치권 흉내만 내다 초권력 집단이 되어버린 교회,

돈벌이에만 골몰하다 재벌중의 초재벌이 되어버린 교회,

그리하여 교회라는 말조차 처참하게 짓밟아 죽여버린 한국가톨릭교회를

통한의 눈물로 바라보면서,

이제라도 한국가톨릭교회가 최소한 가톨릭교회이게 하기 위하여서라도,

사목성직자수도자들이 최소한 사목성직수도자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수많은 교형자매 교우여러분들이 진정 최소한이라도 그리스도인으로라도 살아갈 수 있게라도 하기위해서라도,

우리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의연히 일어서서 진정 교회를 위하여,

진정 사목성직자를 위하여,

그리고 진정 우리들 자신을 위하여 온전히 주체적 의지와 성숙한 인식으로 단호하게....

이 불의의 제도교회에 맛서 이 썩고 병들대로 병든 교회에 대항하여 이 병든 교회를 해체시키는 것만이 이 통한의 현실 위에서 더 이상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이상 우롱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는 비장한 확신을 갖고, 400백만한국카톨릭신자들에게 감히 교회해체운동을 선언하면서 이 운동에 참된 신앙의 마음으로 여러 교우분들이 적극 동참하여 줄 것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본인의 이 선언은 본인 양심에 비추어, 본인 지성에 비추어 그리고 미천하나마 본인이 천착하여온 바, 애쓰며 공부하여온 바, 부당한 종교권력에 정면으로 항의하다 십자가형에 처하여진 2천년전 저 팔레스티나의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에 의하여 본인의 소신만으로 여러 교우여러분들에게 외치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를 바라봅니다.

이것이 과연 (진정한)교회입니까? 2천년간 우리들이 그토록 목말라해 온 "구원의 방주"라는 교회가 바로 이러한 모양이었습니까?

아무리 물어보아도 아무리 물어보아도 아닙니다.  

과연 그리스도 예수가 지금과 같은 거대한 재벌기업에 불과한 교회를, 지금과 같은 초권력정치집단에 불과한 교회를 상상이라도 하셨을까요? 아니 거꾸로 기가막히게도 예수가 그렇게 저항하고 대항하던 썩은 종교권력 그 모습 그대로 교회는 예수 이름을 빙자하여 이름만 바꾸고 우리들 앞에 버티고 서있습니다.

"강도도둑들의 소굴이 되어버렸다"고 "장사치모리배들의 시장통이 되어버렸다"고 채찍을 휘두르시며 격노하시던 우리의 주님 예수를 생각합니다. 그분의 분노를 생각합니다.

본인의 이 선언 이 중심 한복판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말씀만이 자리합니다.

그분 안에서 저는 감히 판단하고 단언하며 해체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스승 그분을 더 이상 조금이라도 욕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과연, 그리스도 예수가 전국민이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미쳐 살아가는 부정부패전시장 대한민국 한가운데서 "돈이란 좋은 것입니다. 돈이란 참 좋은 것입니다"(꽃동네회지에서)하고 말하는 대주교를 상상이나 하셨겠습니까? 교육이 작살나고 문화가 미쳐 날뛰고 전국토는 유흥환락가가 되고 전국민이 날라리시정잡배가 되어가고 아이들이 시한폭탄이 되어가고 사법정의가 보통의 사람들에게 우롱 당하고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이 땅. 천민자본주의 카지노판 돈놀이가 한탕주의가 전국토를 작살내는 한복판에서 교회신자배가운동만을 지상의 과제로, 가두선교가 지상과제라고 미친 소리나 떠들어대는 대주교를 상상이나 하셨겠습니까? 해외토픽 황당 뉴스거리입니다.  

 

<==교회하고 직접 관련이 있는 말을 해줘야 무슨 말을 해보겠는데.

    교회가 강도의 소굴이라고 하니까 어디서부터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 것인지

    암담합니다. 님의 넋두리를 듣는 자리는 아니니 구체적으로 무슨 일에 흥분하시는지

    가닥이 잡히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님의 말중에 맞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해석을 하는 부분도 많이 있으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교회가 책임지라는

    부분도 있고 세상이 눈부시게 돌아가는데 2000년 전으로 돌아가라는 주문을 하시는

    것인지요? 과연 돌아갈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교회는 부분적으로 잘못된 길을 걸어왔어도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갖고서 지켜왔습니다.

    지켜온 모습이 처음의 모습은 아니지요? 왜 그런지도 이미 알만하신 분에게 이런

    말하고 있는 것이 쑥스럽습니다. 어쩌니 저쩌니 보다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해 보시지요. 우리 교회가 그렇게 엉망이라면 그것을 개선해야 한다는 개신교회는

    만져보지도 못할 정도 아닙니까? 그나마 이런 교회제도가 이 만큼 지켜왔다는 생각은

    안해보셨나요? 정대주교에게 개인적으로 불만이 많으신가 보지만 싹둑자른 그말만으로

    그렇게 매도하면 안된다는 것은 님도 공감하시겠지요? 다른 말씀을 하시지요.===>

 

 

지금의 교회는 이렇게 미쳐버렸습니다. 너무나 배불러서 비만당뇨증으로 헐떡헐떡거리며 미쳐버렸습니다. 너무나 높은 곳에서 군림하다보니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너무나 거짓말만을 뻔뻔스럽게 하다보니 말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지 한가운데 거대한 공룡으로 쓰러져있습니다. 눈만 멀뚱멀뚱 뜨고서 숨만 겨우 헐떡거립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를 물어삼키고 자멸(自滅)을 향하여 치달려가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의 우리 교회입니다.

 

미쳐버린 교회의 증상이 여기저기서 터져 버립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파면시켜야 마땅할 주교사제들이 우후죽순 탄생하고 있습니다. 졸부중의 졸부같은 사목자들이 우후죽순 활개를 칩니다. 사제됨이 마치 중세봉건시대의 왕족이라도 된 양 착각하고 군림하는 가엾기 그지없는 사목자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민중의 원성으로 소리쳐 들립니다. 교구청에 불려가는 신부들은 "안기부에 끌려간다"고 말해지는 서글픈 교회현실. 예수로 살아가려는 깨어있는 사목자들일수록 거꾸로 짓밟아 누르는 교회. 목조르는 교회.  

이것이 과연 교회입니까? 이것이 과연 예수께서 원하셨던 사목자도자들의 모습입니까?

아니 예수께서 상상이라도 하셨겠습니까? 우리들은 멍하니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바보로 훈련되어 길들여져 왔습니다.

"거룩함이라는 이름의 폭력 아래" 우리들은 그저 충실한 병신도들일 뿐입니다.

꼭두깍시일 뿐입니다. 이 병든 교회를 떠받쳐주고 있는 정말 한심한 바보들일 뿐입니다.

주님에게 물어봅니다. 따지듯이 되물어봅니다. 이러한 교회를 위하여 당신은 그렇게 죽으셔야만 했느냐고 되물어봅니다. 그렇게 처참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야만 했느냐고 물어봅니다. 아닙니다. 아무리 물어보아도 아무리 되물어보아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고 무엇인가 거꾸로 서있어도 한참 거꾸로 서있는 것입니다.  

 

<== 선정성이 뛰어난 표현의 연속입니다.

    교회가 미쳤다니요?  사목자가 졸부중의 졸부라니요?  

    님은 사목자에게 일년에 얼마를 드려서 졸부를 만들었나요?

    예수로 살아가려는 깨어있는 사목자들일수록 거꾸로 짓밟아 누르는 교회.

    목조르는 교회?

    하하하!!!  우리 교회가 그랬군요. 잘살려는데 방해하나 봅니다.

    그런 것이 있는줄 몰랐습니다.==>  

   .

 

먼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본인의 한국가톨릭교회해체운동선언은 전세계 가톨릭교회 전체를 향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여기 이 땅 대한민국의 한국가톨릭교회만을 대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대한민국을 떠난 가톨릭교회까지 소상하게 본인은 잘 알지 못합니다. 여기가 본인이 주창하는 이 운동의 출발과 도달점의 분명한 한계입니다.    

한 사회와 그 사회의 문화, 교육, 정치, 경제 등등이 우리의 교회와 우리들의 신앙고백과 결코 유리 될 수 없고 밀접하게 상호영향 하는 관계의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여기 이 병들고 썩은 교회는 놀랍게도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만든 암적인 존재 그 장본인 가운데 장본인이라는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슬픈 사실의 확인입니다.

즉, 교회만 올바로 살아왔어도 교회만 정말 교회였어도 결코 이 땅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서글픈 사실의 확인입니다. 아니 거꾸로 바로 이 교회가 "아니요"하고 말해주어야 할 교회가 한번도 제대로 "아니오"하지 못하고 비열하게 눈치나 보고 더럽게 기생하면서 생명을 이어온 동안 모든 것은 썩을대로 썩고 병들대로 병들어버렸다는 견딜 수 없는 분노의 확인입니다. 오늘 한국가톨릭교회는 한국사회 그 치명적인 암적인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가운데 극치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M.Gandhi가 언급한 7가지사회악 (즉, 철학없는 정치, 노력 없는 부, 양심없는 쾌락, 개성없 지식, 도덕성없는 상거래, 인간성없는 학문, 자기희생없는 신앙)의 종합복사판으로 한국사회는 미쳐 질주하고 잇습니다. 교회는 결코 "아니다"하고 말하지 못합니다. 천민자본주의 부정부패에 이미 매몰되어 뭍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멍청하게 주일마다 그 쓰레기하수구의 꾸정물을 성수인양 되받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악순환에 다시 악순환 "악화는 양화를 구축합니다." 우리의 영성공간이 정확히 그러합니다.

 

<== 저 멀리 남의 나라에서 이미 죽은 간디까지 무덤에서 데려올 필요없이 천민자본주의가

     침투하지 못하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곳에는 모두 천민

     자본주의가 장악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책임도 한국천주교회에 있었군요.

     온 세상을 천주교가 장악하고 신앙의 힘으로 뭔가를 하면 제대로 될 것으로 착각한

     수많은 종교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힘을 자랑하기 위해서 전쟁도 불사하고

     무서운 권력도 가져봤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그 뿌리의 말단에 한국

     천주교회가 있습니다. 그것이 다 깨지지 않아서 아직까지 주교님 한 분이 75세까지

     공룡처럼 큰 교구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은 하시겠지요.

     그것이 전부이고 출발점은 거기에서부터 아닙니까? 무엇을 헤체하고 말것도 없이

     말입니다. 그럴듯한 말로 과장되게 엄살을 부릴 것도 아니고 교구를 규모를 축소하여

     레지오처럼 인원이 늘면 분단하듯이 그것도 튼튼한 단원을 떼어내주는 훌륭한 단장

     처럼 튼튼한 본당을 묶어서 본당이 20개 넘으면 옆의 교구와 상의해서 새로 교구를

     내주면 일단계는 되는 것이고 주교님 정년은 아무리 섭섭해도 65세되면 그만 은퇴

     하시라고 해야겠지요. 그래야 젊어지고 민주적인 교회로 쇄신되는 것이지요.

     이런 모범을 안동교구 두봉 주교님이 멋지게 선보였지 않습니까?  그리고 교구내의

     신부님 중에서 주교를 천거받아 교황이 임명하면 됩는 것 아닌가요? 뭐 어렵거나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안되는 이유는 쇄신의 이유가 될 뿐입니다.

     그 외의 일은 다음 단계의 문제이겠지요.==>

 

 

그래서 이제는 하느님을 말하는 것조차 자기공허의 되새김질일 뿐입니다. 그래서 "종교적이기 훨씬훨씬 이전에 먼저 도덕적일 것 윤리적일 것"이 절박하게 요청되는 대한민국 사회입니다. "아직도 교회에 다니십니까?(멍청하게 당신은 교회가 교회 같아서 무얼 믿고 살아가십니까)"하는 소리가 보통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말해지는 현실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습니까?

단언컨대 지금 이 대한민국의 한국가톨릭교회가 거룩한 교회를 철저히 배신하면서 불의에 교묘히 편승하고 뒷손잡고 기생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쇄신을 울부짓고 개혁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호소합니다. 본인은 그러한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말하고자합니다.

교회쇄신 교회개혁 교회변화.....그 길은 적어도 대한민국 가톨릭교회에서만은 교회해체운동뿐입니다.

 

당신들의 충언은 다시 한번 기가 막히게 교묘한 장치를 통하여 교회권력 지배자들에 의하여 이용당해질 뿐입니다. 거꾸로 당신들의 충언은 이 불의한 교회구조를 더 질기게 존속시키는데 기여할게될 뿐입니다. 그렇게 분노하면서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 교회 안에서 교회의 녹으로 먹고삽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합니까? 어설픈 교회비판은 종교적 기만의 지적 자위행위(自慰行爲)에 불과합니다.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하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나머지는 기만(欺滿)입니다. 스스로에게 또한 어리석은 교우들에게 행해지는.

 

교회해체만이 그 명확한 대안입니다.

이 땅 대한민국에 가톨릭교회란 분명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가톨릭교회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신성(神聖)을 빙자한 교회의 오만불손한 독선적 권위주의, 교회의 이념으로 사회복지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부의 축적, 징벌과 보상의 논리로 치밀하게 전개되는 영성의 착취, 사이비과학으로 치장한 반지성적 교리의 정교화, 어떤 파렴치도 정당화되는 선교의 절대화, 정통의 이름으로 묵살해버리는 새로운 상황의 처절한 절규들, 정의로 위장한 권력과 부의 섬김, 사랑이라는 이름의 저주와 경멸들뿐입니다.

더 이상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이름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사태를 직시하십시오. 정열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교회를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교회해체운동입니다. 이 길만이 분명한 대안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병든 사목지도자들을 깨워 살리고 우리가 진정 교회를 살아갈 수 있는 유일의 선택입니다.   

 

<=== 교회해체 주장하면서 급기야 학교에 몸담은 신학자들의 진보적인 목소리를 그렇게

      매도해 버리다니... 그 어느 신부가 지금의 제도교회를 예수님이 만들고 원하는 교회

      라고 하던가요? 이 모습이 그렇게 좋아서 그렇다고 하던가요? 그 어떤 모습이든

      전통과 관습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고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변화가 싫어서

      교회를 떠나버린 사제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 언저리에 어정쩡하게 교회가

      서있으면서 그 다음 단계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믿어야지요.

      교회가 님이 말하는 단계로 전부 일렬로 나와서 헤체하고 다시 정리하자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려면 일단은 정제된 논리와 목소리로 나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치 히틀러의 선동문도 아니고 4.19를 맞아서 비분강개도 좋지만 정리가 안되어

      있는 글에다가 정성스럽게 의견을 다는 행위가 이렇게 힘들 줄은 진정 몰랐습니다.

      차라리 그냥 비아냥거리거나 님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답하면 훨씬 쉬울 것입니다.

      괜히 열심히 사는 진보적인 신부님에게 그런 딱지를 선물하면 안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님의 비분강개가 더욱 교회를 떠나기 위한 명분을 찾는 것이고

      현재로서는 신앙적으로 마스터베이션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자식에게 따끔한 매를 들어야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본인은 이 글을 씁니다.

본인의 교회해체운동선언은 세상한가운데 참으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신 예수가 평신도로 사셨고 평신도로 싸우셨으며 평신도로 죽음에 이르심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열어 보여주셨듯이 평신도가 명실공히 교회의 주체라는 선언이며, 교회가 참으로 교회로 살 수 있도록 사목성직자들이 참으로 사목성직자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밑으로부터의(아래로부터의) 영성적 저항운동"이며 실천적 신앙의 고뇌가 도달한 모색임을 저는 감히 고백합니다. .

 

<== 평신도 강조한 것은 좋으니 그런 표현도 없었고 그렇게 구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주장도 의도가 짙게 깔린 수사 아닙니까?  우리나라 평신도는 교회의 주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아무리 가르쳐도 안나섭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희생이라서 그렇습니다. 님은 평소에 그렇게 사시는지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평신도는

     대강 신앙생활 할려고 합니다. 주일에 교회에 가서 미사드리고 조용히 집에와서

     하루 푹 쉬려는 신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성당의 분위기도 모르고 엉뚱한 이론적인

     이야기만 꺼낼려고 하지 마시고 본질을 보세요. 쇄신이고 뭐고 다 귀찮아하는 신자가

     대부분인데 거기에다 대고서 본당신부가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본당신부가 이렇게

     하라고 그대로 사는 신자가 얼마나 됩니까?  본당신부의 이야기는 미사가 끝나면

     곧바로 잊어버리고 세상에서는 자기 주관대로 굳건하게 사는 것이 우리 신자들의

     본질입니다. 무슨 성직자가 평신도를 가로막고 어쩐다고 너스레를 떠십니까?

     얼마나 잘난 평신도가 부지기수인데  본당신부의 말에 따라 움직인다고 영성적

     저항운동이라니요?

     "영성" 참 좋은말입니다. 영성이 뭔지 아는 신자가 얼마나 됩니까?

     제발 영성같은 소리 하지 마십시오.  영성이 뭔지도 모르는데...설령 안다고 해도

     그 영성대로 살아가는 이가 몇이나 된다고 영성적 저항운동이라뇨?

     그래서 님처럼 어설픈 신학을 논하는 이가 나오면 골치가 아프다니까요.

     본당에서나마 공동체정신으로 교우들과 부대끼며 살아는 보았는지 의심이 간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신자들과 어울려 각종 신심단체에서 충실하게 살아보면

     님처럼 그런 소리가 나오다가 들어갑니다. 성직자 수도자의 일면을 보고 실망을

     했다가도 그나마 교회에 남아서 이렇게 한심한 평신도들을 바라보고 사는 그들이

     저절로 존경스럽게 생각이 듭니다. 사람에게 지친다는 말 아십니까?

     성직자도 신학교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고 수도자도 수련받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의 의미는 세상에 나오면 님의 표현대로 제왕적으로 행세하는데 왜 불행할까요?

     영성이 뭔지 제대로 알고 영성을 입에 올리시기 바랍니다.

     옛날에 못난 수도자가 자기 수도회의 영성이 최고라고 떠들다가 망신 당했다는

     말처럼 "영성"이 고생하지 않도록 그냥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종교, 신앙은 고사하고 사람들의 일상 삶 자체가 산산히 부수어지고 작살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그 분열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탄에 빠진 민중의 처절한 울부짓음은 바로 하느님의 통곡이며 울부짖음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직도 헛소리만을 해대고 있습니다. 말로는 초등학생도 읊어대는 교과서식 부정부패가 어쩌구 저쩌구 떠들어대면서 말로는 생명이니 어쩌니 떠들어대면서 안으로는 신자배가운동이나 획책하고 통계수치만 자랑하고 야훼하느님을 부르면서 기가막히게도 구약의 우상 바알(Baal)신만을 찾아헤메고 있습니다.   

야훼 하느님 최대의 관심사, 사람은 사람들은 이 썩은 교회 고위성직자의 뇌속에서는 그저 통계상의 수치일 뿐입니다.

 

나는 감히 단언합니다.

지금의 한국가톨릭교회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우리사회를 부정부패와 윤리적 도덕적 퇴락, 파멸의 늪으로, 질곡으로 몰아가고 있는 구조악 가운데 치명적이고 암적인 기생충집단에 불과하다고. 교회가 교회이지 못한 죄악이 이렇게 엄청난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를 살지 못하는 죄악이 이렇게 가공한 것입니다. 21세기,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 부정부패의 나라 대한민국 사회에서 한국가톨릭교회는 분명 그러합니다.

진정 참회하지도 않으면서 참회하는 척하면서 참회를 남발하고, 진정 용서하지도 않으면서 용서하는 척하면서 용서를 남발하고, 내어주지도 않으면서 내어주는 척 사랑이라는 용어를 남발함으로써 언어마저 생명을 잃게 하였습니다. 언어마저 언어를 집어 삼켜버리게 하였습니다. 교회의 언어는 이제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보통사람들의 비아냥거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소리없는 절망은 이 죄악에 대한 통곡과 절규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교회는 부도덕한 재벌보다도 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오늘날 이 땅의 종교지도자들은 썩은 정치권력지도자들보다도 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오늘날 이 땅의 사목성직자들은 교육을 망쳐버린 멍청한 교육관계자들보다도 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나는 여기서 전세계 가톨릭교회를 싸잡아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땅 내가 확인할 수 있고 검증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한국 가톨릭교회만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톨릭교회를 흉내내다 일반인들의 비난의 표적이 되고있는 대형 개신교회도 저는 여기서 잠시 피해가겠습니다. 우리들보다 더 한심한 작태가 자행되고 있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 안에서 저와 같은 출발이 탄생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순진하고 착한 신자들이었습니까? 우리는 이 가운데서도 그래도 하느님을 신뢰하고 교회가 교회이기를 교회일수 있기를 정말 바라고 믿으면서 가르침에 순종하면서 꾸역꾸역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이제는 "아니다"라고 단호히 외쳐야할 때입니다. "너희들이 교회로 살지 못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우리라도 차라리 교회로 살아가겠노라"고 외쳐야할 때입니다. 이제는 분명하게 거부하고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깊은 잠에 푹 빠져있는 교회, 사목자라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을 깨워 주어야합니다.

 

얼마나 더 우리는 이 병든 교회의 구조제도조직으로부터 상처를 받아야합니까?

얼마나 더 더럽고 비열한 거짓말로 치장한 성령의 모독을 감수하며 살아야합니까?  

"홀로교회운동"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가정교회운동"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이웃과 함께교회운동"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리스도 예수의 메시지를 명확히 다시 한번 주목해야할 필요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기준, 우리의 중심,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너무나 선명하고 분명하며 명확합니다. 단호합니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병들어 있을 때 감옥에 갇혀 있을 때....너는 나를 찾아주었다"

 

또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성당미사참례를 꼭 해야만 하느님을 만난 것 같다는 분들

성체를 모셔야만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 같다는 분들

고백실에서 중얼중얼 고백을 해야만 용서를 받았다고 느껴진다는 분들

성당 마당에 서야만 주님의 집에 있다고 생각이 든다는 분들에게까지

신부님 주교님을 보아야만 비로소 주님을 만난 것 같다는 분들에게까지  

저는 저의 호소를 전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호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교회에 남으셔야합니다. 남으셔서 충실하게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단, 한가지만 꼭 명심하시고 말입니다.

당신 앞에 버티고 서있는 이 교회는 언젠가는 당신이 졸업해야할 학교 같은 곳입니다.

바로 이 속되고 죄악이 만연한 이 세상이, 사람들 한가운데가, 바로 당신이 교회로 살아가야 할 최후의 마지막 마당(場)이라는 사실만은 제발 잊지 말으시고 열심히 공부 하십시요. 열심히 공부하셔서 제발 영원한 교회재학생, 교회 유급생으로는 남지 마시고 훌륭한 교회졸업생이 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나 금구요한은

진리에 순명 하기 이전에.... 진실에 몸 바칠 수 있는 한사람이고 싶습니다.     

진실보다 더한 진리는 없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이 길이 얼마나 고단할 십자가의 길임도 잘 압니다.

기쁘게 이 형극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이 길이 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요구한다면 저는 기쁘게 제 목숨을 내 놓겠습니다.

 

 

                "그 일이 목숨을 걸만한 일인가."

                  위대한 스승은 내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또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성당미사참례를 꼭 해야만 하느님을 만난 것 같다는 분들

      성체를 모셔야만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 같다는 분들

    고백실에서 중얼중얼 고백을 해야만 용서를 받았다고 느껴진다는 분들

    성당 마당에 서야만 주님의 집에 있다고 생각이 든다는 분들에게까지

    신부님 주교님을 보아야만 비로소 주님을 만난 것 같다는 분들에게까지  

    저는 저의 호소를 전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호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교회에 남으셔야합니다.

    남으셔서 충실하게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 교회는 님이 비아냥거린 그런 분들의 의해서 유지됩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맹신도처럼 보이는 할머니들의 기도에 의해서 신부님들의

    독신이 지켜지고 성당에 가야만 주님은 만난 것 같다는 분들이 드리는

    매일미사를 통해서 교회가 살아갑니다. 매일 드리는 똑같은 기도를 기꺼히

    바치는 분들의 기도 덕분에 우리교회가 그나마 생명을 유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머지는 가짜입니다. 저는 다른 것은 몰라도 위에 님이 비아양거린 그들보다

    게으르게 성사에 참여하면서 또 기도하면서 입으로 아무리 훌륭한 신학사상을

    읊어도 그것은 가짜라는 것은 분명히 압니다. 그분들의 신앙을 허술하게

    생각하고 평가하는데에는 님이 아무리 좋은 사상을 가져다 놓아도 님과 저의

    사이는 좁힐 수 있는 공간은 없음을 마지막으로 선언합니다.

    고해성사의 은총만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훌륭한 신앙인이 아니던가요? 고해성사가 고해소에서 중얼거리는 정도의

    의미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는가보죠?

    요한 금구님!

    전 다른 것은 몰라도 이 한가지는 깊이 알고 마음에 새깁니다.

    겸손하지 못한 영혼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나머지의 글은 이미 중복이 많이 되기에 더 이상 덧글의 의미가 없어서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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