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37791을 쓰신 박용진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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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경 [kreuz] 쪽지 캡슐

2002-08-27 ㅣ No.37794

1.

본인의 글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셨으면 부족하지 않도록 공부하고 다듬으시면 될 것을

부족한 글로 누구를 이끄시겠다고 그렇게 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는 ’부족합니다’라는 고백이 나오지 않도록 공부 좀 하고 쓰십시오.

 

2.

개신교에서도 이단으로 평가받으신 분들은 희안한 것이,

꼭 복음서보다는 구약을, 복음서보다는 서간문을 붙들고 늘어지시는 겁니다.

바오로 사도조차도 어린아이일 때의 신앙을 어른이 되어서는 버렸다고 하셨는데도

예수님이 오셔서 새롭게 주신 ’신약’ 즉 새로운 복음은 애써 외면하고

구약의 모세 이야기와 신약의 바오로 서간 중 ’칭의’ 부분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기본이 안 되어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님의 글에서도 시편, 서간문이 범벅이 되어 있더군요.

왜 성서는 인용하셨다고 하면서, 그 구절은 직접 올려주시지 않았는지 의아스럽습니다.

 

3.

님이 말씀하신 부분 몇 군데만 봤습니다. 그런데 님이 아주 이상하게 왜곡한 부분임을 당장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성서 전체를 인용하시지도 않고, 그 부분만 괄호로 따다 써놓으셨겠죠.

본인이 직접 그 구절을 찾아 앞뒤를 읽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1) 하나님이 사랑이듯이 그의 계명도 사랑입니다 라는 님의 글의 인용 성서를 보겠습니다.

 

(요일4: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마22:35) ◀ 35절이 아니라 37절부터입니다. 애초의 님의 인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잘못 베껴오셨지요.

이부분의 내용은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눅10:25-)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부분입니다.

 

즉,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계명이 사랑이라고 표현하시면 안 되고, 사랑이 그분의 계명이라고 말씀하셔야 맞습니다. 즉, 님은 지금 계명을 옹호하고 계시는 것이고, 저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요17:17, 19)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이 부분이 성화에 관한 말씀입니까?

 

(마5:48)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이렇게 한 구절만 똑 따다 이야기하면 님의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개신교 이단의 정통적인 수법이지요. 하지만 미안스럽게도 이 부분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라고 되어 있는 구약의 율법을 예수님께서 폐해버리시는 부분입니다.

즉, 님이 그토록 강조하는 구약의 계명이 예수님으로 인해 폐지되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롬7.12) 율법은 어디까지나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정당하고 좋은 것입니다.

 

이 뒷부분은 왜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뒤의 24절부터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줄 것입니까?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나는 과연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체로는 죄의 법을 따르는 인간입니다. ’

 

바로 이어서 8장 3절 뒷부분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율법이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룩하셨습니다.(중략) 이렇게 해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재밌군요. 한 구절만 보면 계명이 우리를 살리지만, 로마서 뒷부분까지 보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살게 되니 말입니다.

 

4.

긴 것을 다 살펴보지 않겠습니다.

님이 예를 들었던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생각해봅시다.

사마리아인은 당시의 이단이었습니다. 서로 상종도 안 하던 사이였지요.

그는 강도 당한 이를 아무 조건 없이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계명을 따라 그렇게 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뿐입니까?

님들이 기피하는 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꼬장꼬장하게 지키는 이들을 꾸짖으시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나 새로운 율법,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을 지키는 이들을

복되다 하신 말씀이 곳곳에 나옵니다.

왜 우리를 유대인의 율법에 다시 얽매이게 하려고 합니까?

왜 ’....라 하신 것을 너희가 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라고 하신 예수님을 버리고,

그분 이전의 율법으로 우리가 돌아가야 합니까?

 

날짜가 중요하다구요?

날짜만 중요합니까? 왜 율법에서 님들에게 편한 것만 골라 취했습니까?

돼지고기도 먹지 말아야 하고, 생리하는 여자와는 앞뒤로 14일간 같이 자면 안 되고,

이단 종교자들은 모두 생매장하거나 몰살시켜야 할 텐데 말입니다.

 

 

5.

님의 글 중 이런 부분이 있더군요.

’사단이 살아있는 이상 , 미혹과 유혹은 계속되고 예수님의 중보사업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답으로 이 부분을 인용해볼까 합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신 포도주를 맛보신 다음 ’이제 다 이루었다’ 하시고 고개를 떨어뜨리시며 숨을 거두셨다.

 

6.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부분을 인용하시면서 구원이 3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하셨더군요.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얻는다 하시면서 그것을 예수님께서 세토막으로 잘라주신다는 말씀인가요?

아니면 찔끔찔끔 맛뵈기로 던져주신다는 말씀인가요? ^^

 

우리가 구원을 말할 때 예로 드는 것이 노아의 방주입니다.

타면 구원, 밖에 있으면 빠져죽는 겁니다.

누가 방주 뒤에 로프 매고 수상스키를 타겠습니까?

아니면 노아가 중간에 승객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방주 밖으로 던져버리겠습니까?

 

7.

님은 한 가지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즉,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포분위기만 조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톨릭신자들이 믿는 하느님은 님과 같은 공포의 하느님이 아닙니다.

루가복음에 나오는 ’돌아온 둘째아들’ 이야기에 나오는 하느님이시지요.

아마도 님들의 교파에서는 이 부분을 그렇게 해석할 겁니다.

회개하고 뉘우쳐 돌아오면 하느님께서 다시 받아주신다고.....

하지만 이 부분이 바로 님들이 놓치고 있는, 그래서 이단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복음서를 잘 읽어보십시오.

둘째아들은 굶어죽기 싫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이 뉘우쳤는지 확인도 하기 전에 달려가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지요.

 

가톨릭의 하느님은 돌아온 둘째아들에게

계명을 잘 지키고 살았느냐고 물어보시지 않더이다.

안식일을 지켰느냐고 물어보시지도 않던데요?

집에 들어올 때 3단계로 나누어 들어오라고도 하시지 않더군요.

 

8.

저도 물어보겠습니다.....황당한 부분이 있어서...

 

노아가 ’예수를 믿으라’라고 외쳤다구요? 님들 성서에는 그렇게 나오던가요?

님이 인용했던 요한계시록 끝부분에 보면 성서에 더하거나 빼지 말라는 말이 나오지요.

그냥...예 할 것은 하시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십시오....더 만들지 말고.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보면.....악역으로 나오는 탕녀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 때문에 순교한 사람들의 피에 취해 있었다고 나옵니다.

이 사람들 대부분이 가톨릭신자라는 것은 아실 겁니다.

그러므로 가톨릭이 지키고 있는 교리에 대해 왈가왈부하게 되면 ...

논리상으로 어떻게 되는지는 아시겠지요?

 

즐팅하십시오.

저는 님과 같은 분들을 여럿 만나보는데,

(안상홍증인회, 말씀보존학회, 여호와의증인, 통일교......)

대부분 비슷합니다.

성서의 앞뒤 없이 중간 한 구절만 뚝 잘라다가 자신들에게 이롭도록 뜯어맞추고..

2천년간 예수님의 진리를 보존해온 가톨릭 교회를 욕하며 가르치려 들고....

그러면서도 웃기게는 가톨릭에서 공의회들을 통해 지켜온 진리는 움켜쥐고 있고....

 

이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 당시의 성서가 아닌, 유대인의 성서를 움켜쥐고 나간 누구의 탓이지요.

더 험악하게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게시판을 더럽히지 말라는 말씀만 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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