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당신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

스크랩 인쇄

정종상 [ch8124] 쪽지 캡슐

2003-10-17 ㅣ No.9375

당신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

   김창호 (M/63) 2003. 1. 26임종

 

2002년 12월 28일, 달력 위 숫자에 동그라미 두 개를 그렸습니다. 하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또 하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동그라미 치며 사는 날까지 살자"

그날, 싸움을 멈추고 제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가슴 한편이 에이 듯 쓰려 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깨를 내리 누르던 짐을 내린 듯 다소 홀가분하더군요. 암 진단 받은 지 근 7주만의 일입니다. 지난 7주는 제 인생에서 가장 길고 고통스러웠던 기간이었습니다. 또, 불치병을 ’안다’는 것과 ’승복한다’는 것 사이의 깊은 골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과 죽음의 저를 홀로 마주해야 했던 참으로 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통증 때문에 곡기를 한달 여 동안 끊고 있으니 몸 안의 모든 감각들이 극한으로 예민해지더군요. 의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너무 명료해서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맑음의 극치 속에서 모든 성인들은 깨달음에 닿았을 겁니다. 그리고 매 순간 순간 물 한 모금 숨 한 자락의 소중함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시원한 물 한 모금 고통 없이 삼켜 봤으면 ....

가슴을 확 열어주는 맑은 숨 한번 쉬어봤으면 ...

다른 바람이 끼어 들 자리가 없습니다.

세상 걱정도 끼어 들 자리가 없습니다.

"어쩌다 인간은 그렇듯 많은 허접 쓰레기에 묻혀 악취를 풍기며 살게 되었을까?"하는 회한도 가끔 스쳐가더군요.

 

2002년 12월 30일,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 쎈터로 옮겼습니다. 그곳은 극심한 통증으로 줄곧 시달려 오던 제게는 쉼터 같은 곳입니다. 모든 스텝들이 통증 조절에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줘서 잠깐씩 이런저런 생각도 할만큼 여유가 생기더군요. 당신께 드리는 이 편지도 그 틈틈이 적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병을 얻고 나서 가톨릭에 귀의했습니다. 세례명은 바오로입니다.

그 동안 정말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셨습니다, 특히 누님께서 쉴새 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밤새워 기도하실 땐 제가 누님에게 못할 짓 한다 싶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동시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바오로’의 이름에 걸맞게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안구 기증을 결심한 것입니다. 누군가 제 눈을 받아 세상의 그 다양한 모습들을 경험하게 되다면 참 행복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지금 되돌아보니, 제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물며 맺은 많은 인연들이 참 값지고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이만하면 잘 살았다 싶어집니다.

제게는 아내와 아직 어린 두 딸이 있습니다. 하지만 큰 걱정은 안 합니다.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테니까요. 이 우주 공간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모양만 바뀔 뿐입니다.

제 아이들이 이 모든 섭리를 잘 이해하고 있어 기쁩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제가 지위 높은 수호 천사가 되어 늘 강력 보호막을 쳐주기를 바라는 듯해, 은근히 부담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하는데 까진 해보려합니다. 심지어는 여러 번 병실로 저를 찾아와 친절히 여러 예법을 챙겨주시는 해맑은 젊은 신부님도 제 손을 잡고 "형제님! 하느님을 뵈면 제 말씀 잘 해주세요"하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 이거 청탁문화를 근절해야 되는데…’싶어 아무 대답 안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웃는 모습이 맑으신 그 신부님을 가슴에 새겨놓았습니다.

한 분 한 분 다 소중합니다.

이마 맞대고 소주잔 기울이며 긴 얘기 나눈 뒤 헤어지고 싶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이 편지를 생각해 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제대로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서둘러 휑하니 떠나고 나면 많이 들 섭섭해하실 듯 해서입니다. 모든 이별이 이렇듯, 제가 떠나면 남겨진 사람들이 더욱 아파하리라는 걸 잘 압니다. 왜 생각날 때 전화 한 번 더 걸고 목소리라도 듣는 걸 게을리 했을까?

’나중에’라고 왜 번번이 미루었던가?

당신은 저와 같은 실수를 되도록 적게 하시길 바랍니다. 어릴 적 유난히 나무 타기를 좋아했던 저는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지던 그 아득한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 짧은 순간,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

졸리듯 아늑한 느낌.

이제 당신과 그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 시 한편을 골랐습니다.

 

세상의 고요

 

맑고 쌀쌀한 초 봄 흙 담벼락에 붙어 햇볕 쬐는데

멀리 동구 밖 수송기 지나가는 소리 들렸을 때

 

한 여름 뒤한 감나무 밑 평상에서

낮잠 자고 깨어나 눈부신 햇살 아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게 집은 비어있고

어디선가 다듬이질 소리 건너올 때

 

아무도 없는 방, 라디오에서 일기예보 들릴 때

야산 겨울 숲이 저만치 눈보라 속에서 사라질 때

흰 영구차 따뜻한 봄 산으로 들어갈 때

 

그때,

이 세상은 문득

고요하고 무한하다.

                       글/황지우

 

시인이 노래한 그 ’고요’가 당신께 찾아오는 순간순간 당신과 저는 같은 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나눔터 2003/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나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얘기인 것 같지만, 바오로 형제님의 얘기가 바로 나의 얘기이고, 우리 가족의 얘기 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사는게 하느님께서 기뻐 하시는 삶인지 이밤 깊이 묵상을 해봅니다.

 

*****주님! 바오로 형제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578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