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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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 레미지오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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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기 [hyonggikim] 쪽지 캡슐

2016-12-20 ㅣ No.89100

박정자 레미지오 수녀님

 

나의 진외가 육촌 누님인 박정자 레미지오 수녀님이 12 16(금요일)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페이스북으로 나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누님의 막내 여동생은 소식을 전하며 샬트르 바오로 수녀님들이 300 가까이 참석하여 토요일에 명동 성당에서 거행된 장례미사는 정말 아름답고 장엄하여 마치 하느님 나라에 다녀온 같다고 했다. 수도자를 보내며 부른 수녀님들의 노래는 분명히 천상 음악이었을 것이다.

 

진외가 육촌 간이라면 어떤 사이일까? 나의 아버지와 누님의 아버지가 고종사촌, 외사촌 간이다. 그러니까 나의 할머니와 누님의 할아버지가 남매간이니 우리 집과 누님댁은 그리 멀지 않은 사이인 셈이다. 우리 가족은 전쟁 전후하여 7년간 누님댁에서 함께 살았으니 유년 시절은 온통 누님댁에서 보낸 셈이다.

 

나이 너덧 무렵에 핏빛처럼 붉은 커다란 목단꽃이 주위에 우물가에서 양쪽 식구들이 모여서 세수를 하는데 누님과 둘째 누님에게 내가 까불거리던 장면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나이 여섯 살에 우리는 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하고, 누님은 대학교에 다니다 수도회에 입회하고 얼마 필리핀의 어느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누님은 그렇게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누님의 출생지인 우지리에 소풍 신자들이 보잘것 없는 촌에서 수녀님이 났다니…” 라고 감격스러워 했다는 얘기로 미루어 보아 누님의 출신 본당인 삼척 성내동 성당 신자들은 성당 최초의 수도자인 누님을 자랑스러워 했던 같다.

 

다시 누님과 연락이 닿은 내가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어머니가 누님에게서 우리 집을 방문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내가 누님이 영어 교사로 근무하던 명동의 K 여고를 찾은 안개가 자욱하게 늦가을 저녁이었다. 만나자마자 니가 영자 동생, 그러니까 영기 밑이니? 많이 컸구나.”라고 말했고, 교정을 함께 걸어 나오다가 하교하는 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우리 애들 예쁘지?”라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버스 안에서는 영어가 배우기가 그렇게 어려운 언어가 아니다. 우선 편한 마음으로 많이 듣고 읽으면 쉽게 익힐 있다.” 말을 들은 기억난다.

 

우리 집에서는 어머니에게 형기가 생겼네요. 거기다 지적으로 보이고…”

그리고는 나에게 애인 있니? 없다고? 그럼 색시는 내가 골라주마.” 라고 했는데, 누님을 생각할 때마다 K 여고에서 아름다운 여학생들이 생각난다. 만약 누님의 그때 약속이 이루어졌더라면 아마도 나는 K 여고 출신에게 장가들었을 테고 팔자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몰라도.

 

재작년에 전화로 누님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었다. K 여고 교정에서 만난 40 년이 흘러 나는 60 중반, 누님은 은퇴하고 80 되어서였다. 누님은 나를 거의 기억하지 하는 듯했다. “니가 영자 동생, 그러니까 영기 밑이니?”라는 예전에 받은 질문을 받았다. 나는 운전을 하고, 아내는 번화한 시내 운전에 자신이 없어서 뉴욕에서 열린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러 한국에서 길을 마다치 않고 방문한 누님을 만나지 못한 매우 아쉽다.

 

누님의 막내 여동생이 보내 누님의 사진은 기억 속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얼굴 윤곽이 둘째 누님, 뉴욕에 사는 셋째 누님과 비슷하다. 누님에 관한 영어 교육에 평생을 헌신한 박정자 수녀 가톨릭 신문의 기사를 찾아 읽어보니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리말 국어를 제대로 아는 것이 힘이 됩니다.”라는 내용이 오래전 버스 안에서 들은 얘기와 같아서 그게 누님이 평생 지켜 지론인 같았다

 

어저께 누님을 위한 연미사가 봉헌된 우리 성당의 주일미사 중에 내내 누님이 생각났다.

누님, 이제는 무거운 내려놓고 하늘나라에서 성인들과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는 기쁨을 누리소서.    

주님, 박정자 레미지오 수녀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그에게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

 

(2016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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