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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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침 이슬님!.... 속..... Re:죽고싶네요.삶이 힘들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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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 [74.115.139.*]

2007-01-10 ㅣ No.4768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아침 이슬!

 

어쩌다 '자유'를 다 잃으셨는지!   지금 몸을 감고 있는 실들, 굵은 오랏줄들...

어쩌다 세상 한 구석을 날다가 거미줄에 걸려 얽혀 있는지...  거미에 감기는 잠자리 같은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선,

생명은 나의 '동의'없이 받는 것이고 그 안에서 차츰 의식화하면서 알게 되는 것인데,

생명은 살아야 하는 의무, 운명으로 받아들이라고 억지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을 선물로 알고 받으면 그 안에서 기쁨, 고마움, 만족, 내 마음 대로 즐길 수 있는 자유, 이 선물로 무엇을 하고 싶다는 희망.. 이런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상자 안에는 '의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금 아침 이슬님은 이 선물을 집안 구석에 던져 두고 

빈 집에서 창문을 다 열어놓고 혼자 추위에 떨며 시름하는 외로운 모습입니다.

 

밖에서 지껄이는 소리, 소음들, 찬 바람이 마구 들어오고 있습니다.

 

왜 결혼을 '해야' 합니까?  맏 아들의 '의무'입니까?  그런 소리가 마구 들려옵니까?

창문을 닫으십시오. 소음을 피하십시오. . 그런 소리에는 아무 '의미'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찬 바람을 막으십시오.  그래야 조용한 음악을 켤 수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습니다. 하느님도 사랑하는 세 위격 아닙니까? 

그래서 '사랑'은 아주 자연스런 기쁨입니다. 아침 이슬님이 남자이니까 한 여자를 만나는 기쁨... 가슴이

설레이지 않습니까?  젊은 육체에 힘이 솟지 않습니까?  성애의 로맨스가 피어오르지 않습니까?

결혼은 그것을 싸는 포장지일 뿐입니다.  포장지 부터 준비하고 그 안에 무엇을 싸매어 넣겠다?  

순서가 거꾸로 바뀌었습니다.  순서가 바뀌는 것은 넌센스..  무의미 입니다.

 

자살은 자유가 아닙니다.  방황과 자유는 다릅니다.  남의 떠드는 소리가 잘 들리는 집이 있습니다. 이런 집

일 수록 창문을 잘 닫고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남의 소리를 너무 들으면 '자기 연민'에 빠집니다.

아침 이슬님은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닙니다.  남의 말, 세상 떠돌이 말 속에 들어있는 '암시'들입니다.  이런 암시들에는

대개 방랑자들의 유혹이나 갈구리가 들어있습니다. 일단 가출을 하고 '방랑'하게 되면 자신이 아닌 '생각'

으로 떠돌게 됩니다. 생각은 아무데나 다 갈 수 있으니까요.

 

'자신' 안에는 두려움과 함께 기쁨의 '충동'이 들어있습니다. 꽃을 보면 춤이 저절로 나오는  나비의 '충동'을

보지 않습니까?  자신 안에 들어있는 이러한 느낌, 감 感이 바로 자신감입니다. 자신감과 자유는 한 쌍의

아름다운 부부입니다.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남편을 싫어 하듯이 자유도 방황하는 자신을 참기 어려워

합니다.  눈돌림이 지나치면 제 짝 자유를 잃게 되고 그 후엔 대개 '방황'이라는 창녀와 만나게 마련입니다.  창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술을 권하고 진을 뺀 다음, 귀찮으면 술에 독약을 넣습니다.

 

그러나 자신감과 자유가 잘 어울려 '혼연 일치'가 되면 큰 잔치상이 마련되고 손님들, 자손들, 큰 집안...  이렇게 기쁨과 축복이 따르게 됩니다.

 

동생의 자살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요? 충격에다가 남의 이목, 구설수,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인과'를 넘어

조상탓, 집터 탓, 전생의 죄... 별의 별 '토속' 내지 '무속' 신앙의 뿌리와 얽혀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가슴에

만들어 내었을까요?  생각이 '자신'을 꼭꼭 씹어 삼켜버렸겠지요.  얼마나 큰, 가슴에 박힌 '장작'이었을까요?

 

그런 부담, 짐을 덜어 놓을 데가 있습니다.  로마 격언에 '불가능에 의무 없다' ('No one is held for the impossible') 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지금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불안해 하거나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는 분, 하느님께

종종 기도해 드리는 그 사랑, 진심은 하느님께서 가엾고 어여쁘게 보아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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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쓰던 글 위에 덧 붙이는 글입니다.

 

위기가 오면 큰 것, 근본적인 것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위기가 지나가면 좋은 기회가 옵니다.

 

세례성사와 더불어 신앙의 은혜를 받았고  이렇게 신앙 안에서 형제애로 고초를 나눌 수 있고

위로와 사랑을 전할 수 있음이 얼마나 좋은 일 입니까? 굿 뉴스의  한 면입니다.

 

지금 다시 들어와 보니, 좋으신 형제님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새로운 희망, 힘을 얻으시는 것 같습니다. 

보기에 너무 좋습니다.

 

좋으신 하느님 안에서 기쁨과 평화 속에 좋은 일 많이 계속 이루어지도록 아침 이슬님 기도 중에

기억하겠습니다.

 

어려울 때,  혼잡스러울 때 심정을 나누시고 또 좋은 경험을 살려 또 다른 분들에게

좋은 도움도 되는  아침 이슬 처럼 맑고 아름다운 님이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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