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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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e:Re:루이사 피카레타의 하느님 뜻 영성 오류에 대한 주교회의 신앙교리 위원회 공지문 음성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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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 [josemaria] 쪽지 캡슐

2023-12-05 ㅣ No.229939

형제님의 질문을 요약하면. 하느님의 뜻 영성 기도회는 전통적으로 교회가 사용하지 않는 기도문을 암송/미사 전례 중에 특정 기도문과 주술적 동작/전통을 바꾸려는 새로운 전례의 개발/저의 글에서 그 사람들과 일맥상통 느껴짐/성체 부분/결론으로 하느님의 뜻 영성 기도 모임은 루이사의 사적계시에 편승하여, 가톨릭 전통을 바꾸려는 것 같다. 등으로 이해합니다. 형제님의 질문은 매우 예리하고 깊이가 있어서 어제 바로 대답을 못드리고, 생각을 정리하여서 오늘 드립니다. 성경공부를 많이 하신 분으로 짐작이 갑니다. 

 

수십년간 가톨릭교인으로서 살아온 저의 양심을 걸고 말씀드리지만, 저는 하느님의 뜻 영성 기도회에 단 한번도 참석한 적이 없습니다. 참석해 달라는 초대는 있었지만, 아직 간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새로운 전례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제가 답변을 드릴 수 없으니 양해하여 주시가 바랍니다

 

다만 유투브에 출연하여 하느님의 뜻 영성 오류에 대해특강을 하는 김연준 강사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주교회의에 공지문에서도 언급되고 있고, 형제님의 말씀도 그런 느낌을 받은 바, “사적계시가 공적계시를 바꾸려고한다.”, “루이사 피카레타를 왜 신격화하느냐?” 는 등의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의 의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저는 루이사의 지위나 자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메시지입니다. 루이사의 지위문제는 그분이 예수님의 정배이시니 그것은 우리 인간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고 전적으로 예수님이 결절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 결정에 따르면 그만입니다.

 

저는 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고, 다만 성경은 서울의 한 수도회 소속 아카데미에서 성경을 10여년간 연구하고 공부한 바는 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영성은 어디서 배운게 아니고 독학하였습니다. 벌써 몇십년 전 세례 후 가톨릭 영성에 관심이 있어서 국·내외의 여러책들을 두루 읽었는데, 천상의 책이 깊이나 폭에 있어 다른 책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압권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신약성경에 예수 안에서라는 말이 160회 정도 나옵니다. 예수 안이 어디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구속이 무엇이며 구원이 무엇이냐? 성경만으로는 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천상의 책은 예수님이 성경을 쉽게 풀이한 책이고, 특히 주님의 기도 중에 하느님의 뜻과 우리 인간의 청원에 대한 메시지에 대해 잘 풀이해 주고 계십니다. 따라서 루이사의 기록물이 공적계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공적계시의 연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적계시가 공적계시를 바꾼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적계시가 공적계시를 바꾼다는 것은 공적계시와는 다른 어떤 새로운 해석을 주장하는 것인데, 천상의 책에서 예수님의 메시지에서 성경과 다른 말씀은 단 하나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점을 중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루카복음(11,2-4), 마태복음(6,9-13)에 기록되어 있는데, 루카복음에서는 5가지의 청원, 마태복음에서는 7가지의 청원을 담고 있는데, 교회는 전통적으로 마태복음의 7가지 청원을 전례 및 예식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주님의 기도 중에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의 문구에서 첫째로, 예수님의 강생으로 이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고, 둘째로, 이 세상에서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기를 청원하며 노력할 것을 다집합니다. 이 하느님의 나라는 현세 문화와 사회의 진보와는 구별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의 완성은 현세와 무관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투신하도록 자극하고 재촉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라는 기도 문에서는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고(1디모2,4)”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 것을 원하십니다. 아버지의 그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 지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청원에 부합하는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세상 구원계획은 창조/구속/성화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창조와 구속은 이미 이루셨고 이제 남은 하느님의 계획은 성화입니다. 창조는 성부께서, 구속은 예수님께서, 그리고 성화는 성령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즉 창조는 하느님이, 구속은 예수님이, 성화는 성령이 주인공이십니다. 창조에서는 사람을 쓰지 않았지만 구속에서는 성모님을 도구로 쓰셨고, 그리고 성화에서는 루이사 피카레타를 도구로 쓰신다는 것이 예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구속 또는 속량(Redemption)은 구원(Salvation)과 구분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을 바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바오로는 우리 인간은 영(spirit), (soul), (body)의 합일체라고 합니다. (1테살5,23) 구속이란 죽었던 영과 몸이 되살아남을, 구원이란 우리의 혼이 성화됨을 의미합니다. 창세기에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하느님은 너는 죽으리라.” 하신 말씀은 아담의 영을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그후 930년을 더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죽은 것은 아담의 영만 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은 아담 안에서 아담과 함께 죽었습니다. 죽음이란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인간의 원죄 및 본죄를 사해주시려는 구속계획을 마련하시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강생으로 이땅에 보내시어, 우리의 죽은 영을 예수의 몸 안으로 옮겨주시고 그분의 피로 우리를 죄를 면제해 주시고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요한3,3-7; 콜로1,13-14; 에페1,7; 1코린1,30; 로마8,3 참조) 즉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1코린12,27) 그분의 몸 안에서 살았고(1코린1,30) 예수님과 한 영이 되어(1코린6,17),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살게 된 것이 인간의 구속입니다. (로마3,24) 이 구속은 우리의 믿음과는 상관없습니다왜냐하면 하느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우리가 예수를 알기 전에 즉 예수를 믿기 전에 이미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3,24)

 

그 이유는 하느님이 우리의 영을 예수께로 옮겨 주셨을 때는 (콜로1,13; 1코린1,30), 예수님이 성모님의 자궁에 잉태된 아기였을 때입니다. 즉 예수님이 성인이 되어서가 아니고, 그분이 성모님의 자궁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 상태의 예수님 몸 안으로 우리의 영을 옮겨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 하느님은 우리의 영을 예수님의 몸 안으로 옮겨서 예수님의 피로 우리가 지은 원죄+본죄를 면제하시고(remission of sins)(레위17,11),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속입니다. 그러니 많은 이들이 혼동하고 있는 구원과는 구별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죽을 몸은 종말에 가서 다시 살게 되는데(1코린15,51-54), 이것 또한 구속(속량)이라고 부릅니다그러나 구원은 구속과는 다릅니다. 구원은 우리의 혼의 재탄생을 의미하는데, 우선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1베드1,9) 이 혼의 구원을 다른 말로 하느님의 마지막 계획인 성화(Sanctification)라고 합니다. 이 성화가 이루어져야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런 모든 메커니즘이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천상의 책』에 기록된 예수님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성경에서 숨겨진 기록들이 이해가 절로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과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하느님의 질서 안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그러나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하느님의 뜻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하느님의 뜻 영성모임의 목표하고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천국)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곳이 아니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서 소유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구속에는 마리아를 도구로 쓰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으셨으니, 그리고 성모님 자궁에 잉태한 아기 예수님의 몸 안에서 우리가 구속되었으니 이를 공동구속이라 부릅니다. 공동구원이라고 하면 틀립니다. 구원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1디모2,5; 사도4,12) 그러나 혼의 구원 즉 성화의 과정에서 예수님은 루이사 피카레타를 도구로 쓰신 것입니다. 천상의 책에서 성모님의 역할이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이때문입니다.

 

김연준강사는 성모님이 계시는데 왜 루이사가 부각되느냐고 비난합니다. 그가 예수님의 메시지가 종말의 성화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상의 책은 현세의 교회가 아니라, 종말의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가 하는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김연준 강사와 같은 사람이 계속 나옵니다. 이미 나왔잖습니까? 주교회의가 그렇잖습니까? 김연준강사의 의견을 100% 수용하여서 하느님의 뜻 영성 기도 모임을 금지시켰습니다. 주교회의에서 기도 모임을 금지시키기 전에 예수님 메시지가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지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기도 모임을 장려, 촉구한 것과 비교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모임을 금지시키려면 혹 메시지에 오류를 찾아야 하는데, 그런 오류는 없으니까, 루이사 피카레타를 왜 성녀로 만드느냐? 그것은 루이사가 계시를 잘못받았기 때문으로 결론짓습니다.  

 

그들은 루이사를 나주 윤율리아로 몰고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어불성설이지요. 나주의 케이스는 우선 교구장의 승인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교구장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루이사여사는 코라니 교구의 주교의 승인도 있었고, 교구의 모든 요청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루이사여사는 교황청에서 가경자로 선포되었습니다. 그래서 루이사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교황청에 반기를 드는 것입니다. 

 

주교회의 공고문이 나오니까, 인터넷에서는 김연준 강사의 승리를 자축하는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누가 누구에세 승리하였습니까? 김연준강사가 하느님의 뜻 연구하는 쪽에 승리하였다는 뜻이겠지요? 그동안 그가 열심히 주교들에게 쫓아다닌 결과, 주교회의의 공지문을 받아냈으니 승리의 축가를 부르는 것이지요. 내가 인터넷에서 강사가 제기는 다섯 가지의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성경과 교리서의 예를 들어 틀렸다고 지적했는데, 그는 뒤에 숨어서 나의 지적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강사가 소속한 성당의 교인들로 구성된 댓글 부대를 동원하여, 파리 떼 같이 달려들어서 나를 개신교의 신천지 교주 이만희로 모는 것입니다. 심지어 나를 마귀로 몰아 구마경을 외우는 참으로 저질스런  행태를 보였습니다. 시장잡배들이나 하는 행태를 보인것입니다. 졸지에 나는 그들에게서 집단 테러를 당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 버릇 없는 잡배들을 명예회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 준비중에 있습니다. 

 

강사가 유투브에 나와서 주장하는 다섯 가지는 모두 성경과 교리서를 왜곡한 악의적인 주장들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루치펠이라고 두 눈을 부라리고 달려듭니다. 이런 불충이 이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 이스카리옷과 꼭 닮아았습니다. 유다는 자신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도저히 이해가 안되니 예수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은전 30냥에 예수를 적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제가 계산해 보니 120KG 짜리 돼지 한마리 값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그의 망령이 되살아나서, 예수님을 마귀의 두목이라고 나발불고 있습니다

 

형제님의 질문에 대답이 되었는지요? 저의 글에 관심을 보여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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