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어머니의 신부님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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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하 [andrea727] 쪽지 캡슐

2009-09-01 ㅣ No.139593

오늘은 신부님께서 우리 본당을 떠나시는 날이다.
어머니는 가족들 가운데 누구보다 일찍 아침식사를 하시고는 성당에 가신다고 나서신다.
"아직 7시40분 밖에 안됐습니다." 내가 말했다.
어머니가 대답하신다. "가서 성체조배하고 나서 신부님께 인사드리려 일찍 가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는 밖으로 나가신다.
 
나는 8시 30분에 성당엘 갔다. 성당안엔 어머니 밖에 아무도 없다.
나도 성당에 오면서 신부님을 위해 바치던 묵주기도를 성당 안에서 마저 끝내고
잠시 묵상을 하는데, 교우들이 성당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9시 10분, 교우들의 박수를 받으시며 신부님께서 성당안에 입장하신다.
신부님께서 잠시 무릎꿇고 기도드리신 다음,
신자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하신다.
 
김대건 신부님의 교우들을 위한 옥중 서한이 생각난다.
성직자는 다 그런신가 보다. 자신의 앞날 보다 신자들의 신앙심을 더 걱정하시는 것,
그래서 성직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해 본다.
 
신부님께서는 신자들을 위해 강복을 주신다. 강복이 끝나자 박수소리 요란한데 남보다 먼저 성당밖으로 나오려 하는데 더 요란한 박수소리가 났다. 
왠일일까! 하며 뒤를 돌아보니, 나의 어머니께서 신부님 앞으로 나가시더니
신부님과 악수를 하시는 것이었다.
 
94세 최고령 노인이 신부님께 인사드리자 교우들은 박수를 친 것이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어머니께서는 대리석 돌바닥에 넙쭉 엎드려 큰절을 하시는 것이다.
젊으신 신부님께서 어찌 그냥 보고만 계실까!
신부님께서도 넙쭉 엎드려 어머니께 맞절을 하신다. 박수소리 더욱 요란하다.
어머니는 신부님이 밖에 나오신 뒤에도 무려 여섯번을 신부님과 악수를 더 하셨다.
 
신 스테파노 형제님이 나에게 말한다.
 "형제님 자당님께서 신부님께 큰절을 올리실 때,
나는 몹시 감격하였습니다. 이런것이 옛날 신자들의 신심이 아닙니까?
이즈음 젊은 세대들의 신부님 대하는 것은 영 마음에 안듭니다."
그도 감곡 성당 출신 구교우다.
그의 아버지께서도 공소회장을 수십년간 보셨다.
 
어머니는 1932년 장호원 감곡성당에서 불란서 신부님 임가밀로 신부님께 세례를 받고
1936년부터 회장님댁으로 판공을 치르며 신부님을 아버지처럼 모신 분이시다.
나는 나의 어머님을 신앙인으로서 몹시 존경한다.
초저녁 잠을 조금 주무시면, 두세시에 일어나시어 묵주신공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기도를 많이 바치신다. 그리고는 다섯시쯤 조금 더 주무신다.
 
아버지께 입전으로 그 옛날 긴 요리문답을 다 배우시고 조과 만과 다 외우시고
외우신 교리문답에 입전으로 배운 말마디를 대조하여 가며 한글을 터득하시고
이제는 성경이며 주보며 마음대로 읽으신다.
나는 아무래도 어머님의 신심을 따라잡을 수가 없을것 같다.
 
지난 겨울 신부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즈음 할머니께서 나에게 악수를 청하지 않으시니까 내가 좀 섭섭해지던데요."
"아, 그건 이유가 있으셔서 그러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이즈음 감기가 걸리셨거든요.
이즈음 마스크를 하고 다니시는데, 혹시라도 신부님께 감기옮길까봐 일부러 신부님을 피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요? 그런줄도 모르고 나는 내게 무엇이 좀 섭섭한것이 있어서 그러신줄 알고 오해를 했네요." 이렇듯 신부님을 배려하실줄도 아시는 나의 어머니가 나는 자랑스럽다.
 
어머니는 역대 모든 신부님을 이렇듯 깎듯이 모실 줄 아는 분이셨다.
"신부님을 어버이처럼,"
 이말씀은 늘 들어 오던 말씀이다.
젊은 신부님이라고 어버이처럼 섬길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신부님을 낳으신 생부생모께서도 우리신부님이라고 항상 존칭을 하신다.
역사가 바뀌어도 신부님은 항상 변함없는 우리의 어버이시다.
 
나의 어머니께서 그러셨든 것처럼
우리도 우리들의 신부님께 존경을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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