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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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15.복음말씀 중,"(전교) 파견 (마르코6,7)" (소공동체 )복음묵상나누기 예시-양남하 시몬-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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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남하 [simonyang] 쪽지 캡슐

2018-07-09 ㅣ No.215691

2018.7.15.복음말씀 중,"(전교) 파견(마르코6,7)"묵상나누기 예시-양남하 시몬-25


 

◆복음말씀전문;<"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마르코6,7-13)">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복음말씀 전문 중 마음에 와 닿는 성구 >
  

(전교) 파견 (마르코6,7)

■< 묵상과 다짐 >

 <묵상 >


종교나 교회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에서처럼 교세확장(敎勢擴張)이나 신자 수  배가(倍加)운동 등은 부적합한 면은 있겠지만, “통계청 발표 ‘2015 년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종교통계분석" 자료에 의하면, 10년 사이 개신교는 120 만이 증가 했고 붉은 세력이 주도하는  종교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천주교와 불교는 각각 112 만과 300만 명의 신자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바와 같음에도 근본적인 혁신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註1).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복음말씀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는 대목에 잠시 머물면서, 성직자들( 특히 정의구현사제단)과 쉬는 교우 중심으로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 때 비신자들의 선망의 대상이던 한국가톨릭교회가 이 지경으로 크게 추락한 것은, 정의구현사제단(이하 "정구사'로 칭힘) 사제들의 하극상에 이어 천주교회를 좌파정치활동에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며, 신부·수사(修士)님들과 더불어 관련 수녀님들에 대한 평신도들의 신뢰와 존경심도 덩달아 증발하고 있는 필귀정(事必歸正)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註2)  

조금 더 부언한다면, 예수님은 사랑은 하면서도 정의(正義)를 빙자한 분노를 부추기신적이 없으셨지만, 우리 가톨릭교회 정구사 신부들의  "사람들 안에 분노를 불어넣는 행위"는 인류공동체에서 우리를 분리시키고, 우리 스스로를 높여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사심(私心)의 발로이므로, 그것은 벗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요한 15,13) 예수님 사랑과는 거리가 먼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디에나 쉬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한때는 열심했건만 무슨 연유인지 식은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원인은 많습니다. 신앙의 의미를 느끼지 못해 성당에 가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삶이 힘겹고 바빠 잠시 쉰다는 분도 있습니다.  교우들과의 상처 때문에 성당에 발길을 끊기도 하고 성직자들의 차가움에 발길을 돌렸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냉담은 현실'이므로, 이 들에 대한 선교방법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토마스를 인정해 주셨듯이, 쉬는 교우들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해 주면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것과 '믿지 못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들은 믿지 못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다짐 >

 

전교는 ‘마음먹기’가 아닙니다. 주님의 ‘이끄심에 맡기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는 ‘더러운 영들에 대한 힘’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너무 쉽게 ‘제도’를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을 갖추고 많은 이가 동참하면 ‘힘’이 생긴 것으로 판단합니다. 세속 관점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길은 다릅니다.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누가 어떤 마음으로’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숫자가 많아도 ‘하느님의 힘’이 함께하지 않으면 결국은 시들고 맙니다. 거창하게 출발했지만 소리 없이 문을 닫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교는 주님의 ‘이끄심에 맡기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하느님에게 매인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주님께서 힘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래도 가장 훌륭한 전교방법은 삶의 전교라고 생각됩니다신앙인으로써 모범적인 생활이야말로 믿지 않는 이들에게 하느님을 보여주고 그들을 신앙에로 이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을 탓하거나 타인을 구설수에 올리기에 앞서 먼저 나를 돌아다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우리 공동체에 말이 많다면 누구를 떠올리기 이전에 내 말을 줄일 일이며, 미운 이가 많다면 먼저 내 행동을 돌아다보는 등 내 행위에 대한 반성이 비난에 앞서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 행위는 나만이 아니라 내가 믿는 하느님을 드러내기 때문이며(註3),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이기 때문입니다.

 

  

註1)가장 거만한 사람은 스스로 잘났다고 도취된 사람이다.                     
http://bbs.catholic.or.kr/bbsm/bbs_view.asp?num=1&id=1924647&menu=4779
 

註2)강 우일 주교님, 평신도날에 즈음하여 "평신도 돈으로 월급을 받으니, 평신도영성에 도움 되는 강론을" 주문했다면 이것도 적페인가요? 

http://bbs.catholic.or.kr/bbsm/bbs_view.asp?num=168&id=1916938&PAGE=9&menu=4779       

註3)한국가톨릭교회의 병리현상과 새해에 띄우는 기도-종합정리편
http://bbs.catholic.or.kr/bbsm/bbs_view.asp?num=1&id=1922029&menu=477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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