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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현상 너머의 의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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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식 [goodactor] 쪽지 캡슐

2024-05-26 ㅣ No.231574

형제자매와 카스트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유전자의 결과물들이라는 것은 이 시대의 과학이 밝혀낸 사실이다
유전자 지도,게놈, DNA 등의 단어들은 이미 익숙하게 나도는 말들이다
우리 모두는 그게 뭔지 자세히는 몰라도 우리 모두가 그런 울타리 속의 생명체라는 사실, 그런 사물들이라는 것 쯤은 알고 지낸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을 알만한 지성, 다른 생명체들이 우리 인간 종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지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것은 유별나기도 하고, 특별하기도 한 것이지만, 그런 것을 가지고 산다고 한들 우리를 구현하는 유전자 지도는 우리 삶의 끝에 노화와 죽음이 필연적으로 그려져 있음을 또한 알게 한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지성을 다해 그 유전자 지도를 바꿀 수는 없는 걸까
물론 지성을 가지고 있다면 해 볼 만한 일의 범주, 우리 모두의 버킷 리스토로 한 번 도전은 해 볼 만한 일이고 이미 그런 시도들이 생명 연장이나 인체 재생 등의 방향으로 궁극에 이르서는 영원한 생명 유지나 죽지 않는 개체까지로까지 그 목표가 확대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지성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욕망과도 거의 불가분의 관계로 우리 모두의 지성이 그런 방향과 일들의 선상에서 끊임없이 살게 만드는 동인과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카톨릭과 같은 창조주와 구세주를 신으로 믿는 종교는 신의 지성이 바로 그런 우리 지성의 이데아격이 된다고 가르치기도 하고 또한 우리와는 다른 전능의 차원에서 그 지성이 신성이라는 본질과 성격에 있다고도 한다
어쨌든 우리 지성의 방향과 발자취는 다분히 우리 모두의 역사, 인류사에 고스란히 그 흔적들이 남겨져 있다
우리(우리에게 그려진(주어진) 지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 모두)는 우리 앞에 놓여진 수많은 사물들과 생명체들, 그렇게 그 모든 것이 아우러지고 그 모든 것을 모아 둔 세계, 우주와 지구상에서 우리가 지성을 중심으로 장착된 감각들을 통해 그 모든 것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차원에서 그것들을 알고 살아야 할 운명이 필연적으로 우리 삶에 깔려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우리의 앎을 통해 분별하고 식별하며 우리를 중심으로 그것들이 실제로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파악해 가며 그 어떤 우리 삶의 질서라든가, 우리 삶의 양식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우리가 잘 살 수도, 좋게 살 수도 없다는 것을 오랜 시간의 경험과 역사를 통해, 또한 지금도 그 과정 선상에서 우리의 삶을 계속 지속가능하게 유지시키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것은 비단 우리 앞에 놓여진 사물들과 생명체들에게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 우리 서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우리는 현재의 삶과 현실 속에서도 그렇게 알고 살고 있다
지금 시대에도 우리 서로에게서 문제시되는 말들, 차이라든가, 차별이라든가, 격차라든가, 다름이라든가 하는 등의 우리 서로를 뭔가 다르게도, 차이가 있게도 보는 관점과 시각, 그리고 입장과 태도는 또한 선입관이든가 확증편향이라든가 하는 등의 말로도 실제로 우리가 어떻게 하고 사는지를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다
모두와 또한 각자로서
우리가 함께 살려면 우리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정립되어야 하고 실현되어야 함을 우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살면서 알게 된다
우리의 역사란 그 틀에서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틀은 보다 좋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하며 보다 선의가 더 깔린 것으로 보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그에 비해 덜하거나 나쁘거나 악한 것으로 보기도 하는 것은 단지 어떤 확고한 기준에 대 놓고 비교하기만 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지성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의 감각들도 행복이라든가, 만족이라든가 하는 우리가 삶 속에서 충분히 좋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실현되어야 하는데 보다 이런 중심에 있는 판단과 이해들이 그런 선호도와 판가름에 직접적이지 않나 싶고 여러 바램들이나 기대, 여러 방향들과 변화의 측면들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도 한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한류라는 문화현상이 전세계적이다
그리고 그 실제모습은 영화나 드라마, 팝과 같은 문화쟝르가 폭발적으로 파급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상을 주도하는 전면에서 보여지는 종사자들, 배우라든가 가수라든가 하는 부류의 인간들이 눈에 띄고, 눈에 드는 만큼 그 각광과 열광과 갈채와 박수를 받으며 스타라는 헐리우드 식의 계층으로 자리 잡고,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이 세계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도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산업적인 측면에서(모든 이는 먹고 살아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들의 배고픔과 굶주림을, 헐벗음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 지구상에 사는 어떤 인종이든, 이떤 국민이든, 어떤 시민이든, 어떤 사람이든 예외 없이 그 이해관계에서 그런 현실 속에 살게 되는 것처럼 그런 현실의 장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 그런 것들의 무대에는 팬들이라는 무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바로 그런 팬들 없이는 그들의 굶주림과 헐벗음은 이 지구상 어디에서도 해결할 길도, 방법도 없다
그런 그런 것들이 그런 팬들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으며, 그런 무대가 만들어진 사회와 세계에 무엇을 기여하고 무엇을 성취하는지는 다소 이해와 연구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군림하거나 숭앙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유전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마찬가지이다
유전적으로 나 자신이라는 개체가 그런 모습이나 그런 유형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런 형태는 일종의 의식적인 프레임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인간지성이 꾸미는 일종의 사기나 거짓, 속임수에 불과한 짓거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자기자신의 생존력이나 영향력, 유리한 삶의 지점을 만들어 두고 안주하거나 편리하거나 유세를 부리거나 세도를 부리거나 해서 그 위력적인 현상과 위화적인 분위기가 그 밑에 있다고 여겨지도록 만든 인간들에게 통하고 달성되어 그런 삶의 지속가능함 속에 자기가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의 구현에 지나지 않는, 그런 욕망이란 중심에 지성이 붙어 있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란 종의 발전 가능성, 실현 가능성 면에서도 그런 부류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제도와 체제라는 프레임
인류 역사 속에서는 오랫동안 노예제가 있어 왔다
같은 인간을 자기 발 밑에 두고, 개처럼 소처럼 말처럼 밥만 주고 그 어떤 인간적 댓가나 배려 없이 부리는 그런 제도가 말이다
그런 것들이 그런 역사 속에서는 국가나 사회의 지배적인 룰이 되어 그것을 누구도 거스르거나 거부할 수 없었고, 그것에 대한 판단이나 이의 제기, 불편부당함을 거론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라면 그냥 다들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마땅한 합리적 이치인 것인양 말이다
일종의 힘의 논리에 따라 파생된 제도적 장치나 수단 말고는 그것이 유력해야 할 이유는 달리 없지만 그 발생이 어떻다 하더라도 그것을 제도적이고 체제적인 차원으로 유지하려면 그것을 발생시킨 힘만큼 보다 더한 강력한 위력이나 위화적 장치나 수단으로 그 제도에, 체제에 종속시켜야 할 힘을 또한 유지해야 하는데, 그것은

의식화라는 프레임, 의무라는 실천적 강령들로 묶어 둘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그런 노예제와는 사뭇 다른 국가, 사회적 제도가 바로 카스트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크게 세 가지 원형성을 근간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진리의 결과(심판), 행업의 결과(응보), 수용의 결과(현실)
인도의 지도층과 지배자들은 인생과 현실세계를 다소 종교적으로 마땅한 지배율이 되게끔 그 제도와 체제를 만들었는데, 인간들에게 종교적 차원이란 자신에게 있는 최대의 약점과 무력함에 대한 일종의 안전장치 겸 가능성 겸 보상을 담보하는 차원이고 그런 기대와 바램 또한 담겨진 것이기에 그 제도와 체제를 마땅히 받아들이고 살도록 그런 이해의 선수용은 그 모든 후조치의 사안들(카스트 제도 자체에서 만들어지고 벌어지는 모든 인간적 실상과 행태)이 실효적이게 하는 그 근본바탕에 입각한 그 저변의 실제적인 무형의 통치력이 되게도 하는 것이다
카스트 제도는 그 발상의 기원이 어떻든, 인간의 참다운 자기 실현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없애야 할 제도와 체제이다
그러나 인도땅에서는 그 제도가 겉으로는 폐지되었다 공표되었다 해도 아직도 여전히 인도 사회 속에서는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사회적 악습이다
영국 같이 산업혁명이 일어난 나라에도 쓸모도, 필요도 없는 왕정을 무늬라도 계속 남기고 싶어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를 파악해 본다면 인간 사회가 구현하고자 하는 인간 삶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지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많은 인간들이 자기 삶의(사회적 삶과 동반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저변과 다소 동떨어진 성격(높은 신분, 자리, 계급, 위치라고 여겨지도록 계속 인류사에 만들어져 왔던 사회구성원들의 성격과 모습, 그런 사회가 변별하도록 요구하는)의 그 차별화된 삶의 양식과 현실을 용인하고 지지하고 순응하는 데에는 단지 그 반강제적인 사회성의 요구에만 있다고 보기에는 다소 어려운 감이 있다
인간들은 그런 실제들을 보며 때론 뭐가 자기자신에게 나은 건지, 좋은 건지를 사회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기도 하고, 그런 생각에는 자기 자신에게 맞는 현실적 지점에 대한 연결선상에서의 의미와 가치를 또한 염두해 두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것들이 왜 자신과 같은 인간들에게 삶의 양식으로나 현실로 있는 것인지, 그것은 그 모든 것을 일단 묻어 두고 그런 속에서의 이야기거리나 이야기할 의미와 가치를 찾는 문학가들의 관점과 이해로만은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어쟀든 그런 것들과도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태어나면 보게 되는 세상, 그 세상 속에서)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삶의  핵심은 누구에게나 다를 수 없을 것이다
그 현실적 지점에서의 삶을 잘 살려면 보다 현실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 많은 것들이 나타나 보이는 세상 속에서 자기 삶을 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든,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런 자기 삶을 살아가는 일이다
살다가 진리와 같은 삶의 진실을 마주친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진리와 함께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냥 지나쳐 갈 수도 있는 일이다
누구나 자기 삶의 현실은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기 삶에 있어서만큼은 자기자신만큼 그 현실을 경험한 사람도 없으니 그렇게 자기 삶의 소중함에 견주어 바람직하고 참된 삶의 진실을 살고픈 희망과 바램을 가지고 살아야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지성에 맞갖은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스트 제도가 사회적인 측면에서 그 구성원들 각자에게 너는 이렇게, 너는 저렇게 하는 식의 명령을 내리고 그에 따르기를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굳이 인간이란 이름이 필요없다
카스트의 구성원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 더한 답 또한 이해도 또한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따라서만 될 일이라면 더한 생각도, 더한 계획도, 더한 추구도 필요없을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굳게 믿고 산다면 그렇게 따라 다른 이들이나 다른 사회에 문제가 될 일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인간은 자기자신의 지성을 가지고 그 진실에 맞게 살아야 할 일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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