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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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속의 정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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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진신부 [yjinp] 쪽지 캡슐

2001-11-15 ㅣ No.26373

(연중 제32주 목요일 11.15)

 

 

"지혜 속의 정신은 ...  

민첩하고 맑고,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며,

자비롭고 날카로우며,

강인하고 은혜로우며

인간에게 빛이 된다.

...

지혜는 비록 홀로 있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만물을 새롭게 한다."

 

         - 오늘 독서(지혜서 7,22.23.27)에서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 오늘 복음(루가 17,21)에서

 

 

 

 

  가을이면 누구나 조금쯤은 죽음이라든가 종교 같은 문제를 느끼게 된다. '생각한다'기 보다는 아마도 '느낀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리라. 서리가 내린 하얀 지붕들이 아침 태양에 축축히 반짝이면서 말라가는 것을 바라볼 때, 아무도 찾지 않는 빈 들판의 모퉁이에서 쓸쓸한 코스모스들이 애잔한 몸을 가누며 눈물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바라볼 때, 커다란 녹음을 이루며 푸르게 장성했던 가로수의 잎사귀들이 다 떨어지고 한두 개의 잎새들만 대롱대롱 유언의 말처럼 남아 있을 때 아, 우리는 누구나 "나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을 폐부 깊숙이 부르짖음처럼 느끼게 된다.

 

  가을 햇살 아래로 초등학교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왁자하게 떠들며 가고 있을 때 무슨 미소의 행렬처럼 우리는 마음이 따스하게 더워진다.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내가 온 곳은 바로 저런 따스한 생명의 원천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중풍이 든 할아버지들이 불편한 몸을 일그러뜨리며 절룩절룩 끌어가는 쓸쓸한 황혼길을 바라볼 때도 아, 내가 지금 향하여 가고 있는 곳은 저런 종점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그런 비참한 고독이 치솟기도 한다. 왁지지껄 떠드는 어린 아이들과 중풍으로 쓰러질 듯 걸어가는 노인들의 애달픈 시간 사이에 가을이 흘러간다. 시간의 존재를 느끼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가을에 만나는 하느님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현대인들은 무엇보다도 현세적 이익과 현실적 성취 같은 것에 너무 넋을 빼앗긴 나머지 현세 너머의 존재, 하느님 같은 존재에는 너무도 무관심한 것 같다. 그것이 철학의 빈곤, 정신의 빈곤을 낳고 서로의 비인간화, 물질화를 더욱 촉진시킨다. 우리는 점점 더 자동세탁기나 전기다리미나 승용차처럼 자신이 변해가는 것을 도처에서 목격해야 하고 그러는 동안 점점 더 자신의 얼굴을 잊어버린다.

 

  신앙인들조차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일 때가 있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이나 신을 자신에게 복을 내려주는 존재로만 만들어서 자신의 목적을 성취시켜 주는 데 도움이 되는 기복의 도구로 전락시켜 버린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복을 내려 주기 위해서 섬김의 대상이 되는 신이나 하느님이라면 그 목적이 완성되거나 좌절되는 순간 폐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하느님을 만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나는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현세에 이렇게 집착하는 속인들의 요구에 하느님도 무척 피로할 것이라는 우스개스러운 생각도 든다.

 

  가을날 강물가에 하얗게 피어 있는 갈대의 모습에서 나는 소슬한 하느님을 만난다. 자신의 죽음과 마주하여 고결하고 순수한 미소를 잃지 않은 모습. 욕심 같은 것은 바람에 날리는 풀씨처럼 비워버리고 빈 하늘과 빈 벌판을 하얀 마음으로 응시하고 있는 그의 백발의 머리에서 신성스러운 영혼의 눈물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이 그토록 극성스럽게 구하고 있는 행복이나 가치나 물질적 욕망 같은 것은 무엇이냐. 가을날 서리가 내리면 단숨에 시들고야 마는 그런 덧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그토록 아귀처럼 매달리고 있는 목적이나 영화라는 것도 가을날 다시 보면 너무도 티끌 같은 한 줌의 미망이 아니냐. 그런 진실에의 무심증 같은 각성이 가을날 빈 벌판의 도처에서 푸른 달빛처럼 수군대며 일어나 우리의 뼈를 시리게 한다. 그러므로 가을날 우리가 낙엽지는 벌판에서 만나는 하느님은 세상의 왕국을 벗어난 하느님, 나의 죽음과 영원의 의미를 생각나게 하는 하느님, 허무와 인간의 비참을 알게 하여 생명의 겸손을 가르쳐주는 하느님이다.

 

                    - ?  1991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지혜는 비록 홀로 있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만물을 새롭게 한다."

 

지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만물을 새롭게 한다.

 

내가 지혜를 갖는다면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세상과 삶을 새롭게 할 수 있으리라.

 

내가 지혜이신 그분과 함께 한다면...

 

 

 

 

 

삽입곡 노래가사

 

작은 소리  (글.가락 김 종성 신부)

 

 

복잡했던 하루를 떠나 조용히 눈을 감을 때

비로소 들려오는 시계소리 들어봐

캄캄한 어둠에도 살아 숨쉬는 소리

서성대는 내 마음을 재촉하는 그 소리

하루 종일 시끄러운 거리 그 거리 한 복판에서

나를 부르는 낙엽의 소리 귀 기울여 들어봐

거기엔 나의 메마른 껍질이 있고 거기엔

우리들의 부끄러운 사랑이 있지

천지를 움직이는 기적소리는 귀를 막게 하지만

내 맘을 움직이는 소리는 아주 조심스런 외침인 것을

아주 메마른 광야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는

잃었던 내 모습 다시 만나게 하지

/ 머나먼 내 모습 다시 되찾게 하지

광야보다 메마른 내 마음을 벗기지

첨부파일: 작은 소리.asx(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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