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우리 희망의 원천 -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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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송 [hsson] 쪽지 캡슐

2002-03-29 ㅣ No.31519

 성 금요일 전례의 두 번째 부분은 십자가 경배입니다. 사제는 자줏빛 보자기에 가리워진 십자가를 모시고 제대 앞에 모시고 나와서, 그 보자기를 벗기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신자들에게 보여줍니다. 사제는 "보라 십자 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하고 노래하면, 신자들은 "모두 와서 경배하세"하고 응답합니다. 어째서 십자가에 비참하게 돌아가신 그리스도가 우리 구원이 될까요? 성서를 하나 하나 짚어봅시다.

  

  예수께서는 제세마니 동산에서 체포되시는 절박한 순간에도 자신보다는 제자들은 더 염려해주는 분이셨습니다. 자신을 붙잡으로 온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찾고 있다면 이 사람들은 가게 버려 두시오"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 18,8). 그분은 제자들의 나약함과 배반을 보시면서도 그들에 대한 염려를 멈추지 않으신 것입니다.

 

 체포되신 예수께서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 중에서 실력자인 대제관 안나스 앞에서 심문을 받으십니다다. 대제관이 예수께 그 동안의 가르침에 대해서 묻자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에게 드러나게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은밀하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왜 나에게 물어봅니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오"(요한 18,20-21). 그 때 옆에 있던 하인중의 하나가 대제관에게 그따위 말버릇이 어디 있느냐고 예수께 손찌검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대꾸하십니다. "만일 내가 잘못 말했다면 그 잘못의 증거를 대시오. 그러나 만일 내가 올바로 말했다면 왜 나를 때립니까?"(요한 18,23).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면 주눅이 들고 겁이 나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아무 소리 못하는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빌라도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으십니다. 자신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는 빌라도 앞에서 결코 비굴하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당당히 밝히십니다(요한 18,34-37). 자신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도 진리를 증언하기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으셨습니다. 스승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의 모습, 두려움에서 스승을 세 번이나 배반한 베드로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지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는 자신을 못박는 자들을 위해서도 아버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십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 이 기도를 통해서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3)는 당신의 가르침을 스스로 실천하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은 작은 용서에도 인색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가차없이 내치는 우리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내 의견과 행동 방식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며 멀리하는 우리들과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고통 중에서도 다른 이들에 대한 염려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어머니를 염려하셔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맡기십니다.(요한 19,26) 또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죄인에게 구원을 약속하십니다(루가 23,43). 이렇게 예수께서는 고통 중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조금만 몸이 아파도 짜증을 내면서 가족을 힘들게 하고, 일이 잘 안 풀리면 어둡고 우울한 표정으로 주위 사람에게 무거운 분위기를 전해주는 우리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지요.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성서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예수께서는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즉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부르짖으셨다(마태 27,46).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물음은 예수께서 당하셨던 고통이 말할 수 없이 컸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당하는 고통뿐만 아니라 평소에는 그렇게 가까이 느낄 수 있었던 아버지 하느님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영혼의 고통에 시달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어두운 밤의 체험 속에서도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굳건한 신뢰를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루가 23,46)하시면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죽음의 극한 상황에서도 성부께 대한 굳건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조그만 어려움에도 휘청거리고 약해지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지 않나요?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런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시키셨습니다. 하느님은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 행동 모든 것이 옳다고 인정하신 것이지요. 부활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어두움을 비추어 주시는 빛 자체가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나약함 그리고 죄와 잘못 속에서도 의지하고 희망을 둘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다른 이들에 대한 염려를 버리지 않으시고, 당신을 못박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 분이야 말로 온갖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우리가 의지하고 희망을 둘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스스로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극도의 고통과 괴로움을 체험하셨기에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부르짖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나약함, 죄와 잘못, 고통과 괴로움의 무게에 눌려서 주저앉아 일어설 기운이 없을 때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을 바라보며 힘을 주시기를 간청합시다. 분명 그분은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시면서 다시 걸어갈 힘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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