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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거짓말로는 '역한 냄새'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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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2-08-27 ㅣ No.37780

                       

                    거짓말로는 ’역한 냄새’ 감출 수 없다

 

 

 

 

 나는 한 시절을 풍미하거나 주름잡는 ’인물’이 아닌 고로 솔직히 말해 ’역사’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 큰 벼슬을 한 사람도 아니고, 역사에 길이 이름이 남을 만한 사람도 아니니, 후세의 평가에 구애받을 까닭도 필요도 없다.

 

 내게 주어진 시대를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고뇌도 많이 하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는 하지만, 치열한 역사의식과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로는 역사에 대한 아무런 부담감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책무’까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가 두렵지 않더라도, 비록 필부일 망정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는 역사에 대한 책무를 면제받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늘 역사에 대한 책무를 의식하려고 애를 쓴다.

 

 더불어 나는 하늘을 많이 우러르며 산다. 누구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고 감히 큰소리는 치지 못하지만, 늘 하늘을 제대로 우러르며 살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서야 할 ’하늘의 법정’을 생각하면서 두려움이 가득해지는 가슴을, 옷깃을 여미곤 한다.

 

 이승의 삶을 마치고 떠나는 날 곧바로 내가 서야 할 하늘의 법정에는 내 이승 삶의 온갖 증거물들이 큰 보따리로 놓여 있을 것이다. 그 보따리 속에는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 까맣게 잊었던 ’죄목’들도 잔뜩 들어 있을 것이다.

 

 내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두고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내가 이승에서 했던 일, 해야만 했으되 하지 못했던 일, 내가 세 치 혀를 놀려 입 밖으로 내뱉은 말, 심지어는 내 머리 속에 들어 있었던 온갖 옳은 생각과 그른 생각들까지도 그 보따리 속에 다 담아두고 계실 것이다.

 

 그 보따리 속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시겠지만, 그 버리고 남기는 과정에서 나는 내 이승 삶의 모든 것을 알게 되고, 더불어 내 이승 삶의 증거들과 관련되는 모든 사람들도 함께 내 보따리 속을 속속들이 알게 될 것이다.

 

 천주교 신자로서 ’고해성사’와 ’대사(大赦)’의 은총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살지만, 그리고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을 굳게 믿으면서도 나는 하늘 법정에서의 그런 상황을 늘 두려워한다. 이승에서 한 내 거짓말이 비록 이승에서는 허공 중에 사라져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 허공이 하느님의 ’그물’이리라는 생각도 하곤 한다. 이승에서는 비밀이 있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하늘의 법정에서는 모조리 탄로 나고 한갓 버선목이 되리라는 생각은 나를 더욱 두려움에 젖게 한다.

 

 나도 평범한 세속의 한 인간이므로 가끔은 거짓말을 한다. 남을 음해 하거나 속여서 내 이득을 취하려는 차원의 거짓말은 아니다. 듣는 사람에게 향상 의욕을 갖게 하거나 좌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하는, 말하자면 선의적인 거짓말이다.

 

 하지만 선의적인 예쁜 거짓말도 남을 속이는 행위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것 역시 하늘의 법정에서는 결코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선의적인 거짓말도 극력 자제하지 않을 수 없다.

 

 거짓말의 영역은 참으로 광범위하다. 남을 속이는 것만이 거짓말인 것은 아니다. 가식과 과장은 물론이고, 온갖 억지와 그릇된 말들이 다 거짓말이다. 사리에 맞지 않거나 상식에 반하는 궤변 또한 거짓말의 범주에 드는 것은 물론이다.

 

 이 세상엔 온갖 거짓말이 너무도 많다. 인간이 언어를 갖게 되고 언어가 발달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거짓말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문화와 문명이 세상을 백명하게 만든 이 시대에도 여전히 거짓말은 홍수를 이룬다.        

 

 이 백명한 시대에도 거짓말이 난무하고 홍수를 이루는 것은, 무릇 거짓말들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분별로부터 거짓말이 무제한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그것이 통하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들은 그 구석을 믿으며, 그 구석들을 잘도 휘어잡는다. 구석구석 파고드는 거짓말들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거짓말이 통하는 구석을 들여다보면, 별의별 괴물들이 다 들어 있다. 우리 한국의 경우, 국민의 무지와 단순함도 있고, 특징적 국민성인 ’냄비근성’과 망각증도 있고, 비판 정신이 아예 없는 우민 대중도 있고, 흑색선전과 색깔론이라는 이름의 요물도 있고, 지역감정 또는 지역패권주의라는 이름의 흉령도 있다. 그리하여 그 음습하고도 음충한 구석들은 거대한 공간을 형성한다.   

 

 거짓말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과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당대의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짓말이 역사를 두려워할 리 없다. 더 나아가 그런 거짓말들은 곧잘 하늘을 모욕하고 능멸한다.

 

 거짓말에는 반드시 동반하는 것이 있다. 바로 ’후안무치’다.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거짓말은 또한 뻔뻔스러움과 치사함을 거느린다. 뻔뻔함과 치사함의 성채 안에서 거짓말은 한껏 기치를 드높인다.

 

 ’뻔뻔함과 치사함의 무한한 공간’에 대해서는 다음 번 글에서 그 허무맹랑한 실체를 구체적으로 밝혀볼 예정이지만, 뻔뻔함과 치사함은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의 전매 특허와도 같다.

 

 그리고 거짓말과 뻔뻔함과 치사함의 교합은 언뜻 그럴 듯해 보이는 면도 있지만, 수많은 억지 궤변을 생산해 내고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하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으니 거짓말의 수렁은 깊어지고, 해프닝은 곧잘 코미디로 발전하기도 한다.

 

 요즘 우리 국민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거짓말의 수렁과 홍수는 무엇일까? 나는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 아들들의 병역 비리 시비를 통해 거의 무제한적으로 발생하는 거짓말의 수렁과 홍수를 본다.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 비리와 은폐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비난하고 방해하는 한나라당 사람들의 행태로부터 많은 해프닝이 발생하는 것을 본다. 야당 탄압이라는 주장과 함께 검찰 수사 중단을 요구하며 항의 시위까지 벌이는 행태들을 보노라면, 국민을 무시해도 저렇게 무시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보다 더 웃기는 코미디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요즘 언제 어떤 식으로 끝날지 알 수 없는 한 편의 코미디 시리즈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한때는 대개가 우리 나라의 법조계를 주름잡았고 지금은 정치판을 주름잡고 있는 국회의원 나리들의 행투들은 너무 한심하고도 재미있는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 비리 은폐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난하고 항의하는 것이 코미디가 아니라면 무엇이 코미디란 말인가.

 

 이쯤에서 내가 여러분께 진짜 코미디 한 편을 소개해 보겠다.

 

 어떤 사람이 절대로 똥을 누어서는 안 되는 곳에다가 몰래 똥을 누었다. 그러고는 무엇으로 그 똥을 덮어두었다. 똥을 덮은 것은 무슨 감투 같기도 하고, 돈 다발 같기도 하고, 단단한 철가면 같은 것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것으로 똥은 잘 덮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참 묘하고도 오묘한 것이어서, 그 똥은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았지만, 값비싼 덮개와 상관없이 냄새가 풀풀 새어나기 시작했다. 차라리 그 똥을 덮어두지 않았더라면 좀더 일찍 햇볕에 마르고 비바람에 쓸려버렸을 터인데, 단단히 덮어두는 바람에 그 똥은 질긴 생명력이라도 지닌 듯 오래 보존이 되면서 끈질기게 냄새를 피운 꼴이 되고 말았다.

 

 그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역한 냄새를 참지 못한 사람이 냄새의 근원을 찾기 위해 나섰고, 그게 소문이 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 냄새의 정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냄새를 따라 냄새의 근원지를 찾는 일은 의외로 쉽지가 않았다. 많은 장애물들이 있었고, 유형무형의 이상한 방해들이 줄을 이었다. 마치 저 월남의 정글에서 시체 썩는 냄새를 따라 전우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 길에 무수한 가시덤불과 부비추랩들이 앞을 가로막는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아무튼 그 이상한 장애와 방해들 때문에 똥 냄새의 근원을 찾아내는 일은 더욱 흥미진진한 일이 되고 말았다.

 

 어떤 사람들은 똥 냄새를 그만 잊고 살자고 했다. 이미 해묵은 똥이니 똥을 눈 사람을 이만 용서해 주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냄새가 나더라도 코를 싸쥐고 맡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 똥 냄새를 자꾸 맡아서 이로울 게 뭐 있겠느냐는 요상한 말도 그들은 태연히 했다. 그들은 노상 똥 냄새 속에서 살아서 그런지 아예 똥 냄새를 맡지도 못하는 것 같았고, 신기하게 잘 견디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다른 한 편의 사람들은 코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반드시 똥 냄새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똥 냄새의 근원을 찾아서 그 똥을 없애는 작업을 공개적으로 해야만 또다시 누군가 몰래 똥을 누는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일단은 똥을 찾아서 그게 과연 사람 똥인지 짐승 똥인지 된장인지 규명을 해야, 그리고 사람 똥이면 쌀밥 똥인지 보리밥 똥인지, 또 그 똥을 덮은 덮개가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진 물건인지 두루 철저히 규명을 해야 다시는 아무도 그곳에 똥을 누지 않고, 눈 똥을 덮어두는 짓도 하지 않으리라는 주장이었다.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똥이 없고 불결한 냄새가 없는 명랑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똥 냄새를 추적하는 일이 필수불가결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는 야밤에 몰래 똥을 누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게 하는 가장 명확한 방도란 사실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감각을 지닌 사람으로서, 후각과 시각을 덮어두지 않고 잘만 활용하면 자연히 해결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옷차림이 근사한 귀족풍의, 게다가 덩치도 큰 사람들이 똥 냄새의 근원지를 첩첩이 에워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똥 냄새의 근원지가, 필경은 똥이 있을 그 자리가 무슨 보물단지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그 자리를 사수하려는 결의들이, 붉으락푸르락하는 서슬이 당장 사생 결단이라도 낼 것만 같은 태세였다.

 

 그리고 그들은 똥이 묻어 있는 구두짝들을 애써 감추려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면서도 한껏 결기를 곧추세운 자세로 똥 냄새를 따라 온 사람들을 향해 일갈하는 것이 아닌가.

 

 "왜 똥 냄새를 맡고 지랄이여! 언제 우리가 너희들보고 똥 냄새를 맡으라고 했냐? 똥 냄새가 나더라도 맡지 말고, 맡더라도 참으면 될 것 아녀! 너희들 혹시 어디 가서 일부러 두 손에 똥을 묻혀 온 거 아녀?"

 

 당신은 어떠신가? 이 코미디가 재미있지 않은가?

 이 코미디가 재미있지 않다면 당신은 세상사에 너무도 둔감하고 무신경한 사람일 것이다.

 

 이 코미디를 읽고 기분이 나쁘신 분이 있다면, 이 글을 끝내면서 한마디만 묻겠다.

 만인이 자유롭게, 평등하게, 명랑하게 다녀야 할 길에 똥이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왜 똥을 예단 하느냐고? 우선 그게 과연 똥인가 아닌가부터 확인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렇지.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그 확인 작업을 당신은 의심의 눈으로만 보지 말고, 제발 방해를 하지 마시라. *

 

 

 08/27

 충남 태안의 반딧불 작가 지요하 막시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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