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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18.복음말씀 중,"나는 세상에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12,51)"묵상-양남하 시몬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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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남하 [simonyang] 쪽지 캡슐

2019-08-11 ㅣ No.218453

 

2019.8.18.복음말씀 중,"나는 세상에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12,51)"묵상-양남하 시몬 39


 

◆복음말씀전문;<"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12,49-53)">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복음말씀 전문 중 마음에 와 닿는 성구 >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12,51)


■< 묵상과 다짐 >

 <묵상 >

이번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좀 당황스럽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치와 평화를 주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말씀하시니 당황스럽습니다. 물론 신앙생활과 복음을 전하다보면 반대자의 박해도 받고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분열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어떤 뜻이 숨어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 덕분에 인간의 영혼이 본래의 위치를 되찾아 돌아왔다.” 바로 이 점을 들어 암브로시오 주교학자님(339-397년)은 위에서 제기한 질문, 왜 그리스도께서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 합니다.(註1)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분열은 그분이 주시려는 평화의 은혜와 상치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분열은 평화를 위하여 반드시 먼저 수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폭력배가 숨어 살 듯이 쾌락이 기거하면 악과 혼인한 것처럼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붙어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성령 또는 구원의) 불을 가져오셔서 육신의 죄악들을 불살라버리십니다. 그리고 칼을 가지고 오셔서 예리한 칼로 우리의 뼛속 생각까지도 꿰뚫으십니다. 그리하여 영혼과 육신이 새롭게 되고 젊어지게 됩니다. 영혼은 지금까지의 처지를 잊어버리고, 지금까지 못했던 생활을 이제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잘못되었던 인연을 다 끊어버리고 무성한 가지를 쳤던 그릇된 관계를 청산하게 됩니다”(「루카 복음 해설」, 7,145).

 

그러나 정의구현사제단과 그 연관 단체 및 수도자·수녀들은 가난한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님의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12,51)"는 말씀을 해방신학관점에서 오랫동안(註2) 조직적으로 증오의 촛불미사시위를 벌인 결과 일단 성공한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가톨릭성직자간은 물론 신자들간에 분열을 일으키는데 성공했고, 가톨릭과 국민간, 더 나아가 국민들간의 분열을 일르키는데까지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정은이사제단이란 거부반응도 커져가는 상태입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의 인권과 자유 등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서도, 북한의 자유와 인권을 거론하거나 북한 3대세습독재 정권의 퇴진을 주장하는 소리는 한 번도 들은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2016년 3월 16일자) 북한 노동신문 사설 내용과 판박이 촛불시국미사시위(註3) 을 통해 유대한민국 국민 1514만 4632명이 뽑아준 대통령을 퇴출시킨 후 자유민주헌법과 관련법을 수호하기는 커녕 내로남불 분열로 뒤숭숭한 불만들이 만연인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들의 모습이 과연 예수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인것 같습니다. 적어도 한국으로 시야를 좁혀보면 교회가, 성직자가 예수를 치부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뜻있는 분들의 소리가 상식화되는 실정입니다. 개신교는 말할 것도 없고, 가톨릭이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시각입니다. 해방신학서인 <가난한 예수> 저자가(註4) 고발한 가톨릭 교회의 민낯은 참으로 놀라울 지경이랍니다 .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가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이 때, (금년 4월 25일) 노틀담 성당의 화재는 지난 230년 전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교회와 성직자들이 프랑스 국부의 80% 정도를 소유하고 있었던 시기, 프랑스 대혁명은 대주교와 주교, 사제와 수도자들을 몽마르트(절두산)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습니다. 수천 명의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형장에서 사라져갔습니다. 교회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분열과 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짐 >

 

 마음이 맑으면 눈빛부터 맑아지고,  표정도 맑아지며, 말씨도 달라집니다.  뿐만 아니라  분명 사람의 몸에서 풍기는 것인데도 그 몸에서 높고 푸른 하늘의 향내가 납니다. 하지만, 그간 해방신학으로 짜릿함을 누리고 있을 신부와 수녀들에게서는 이런 향내는 고사하고 과거의 존경심마저 더욱 아쉽게 느껴질 뿐인 듯 싶습니다.  

결국 신앙생활 역시 스스로 하는 [것이 더 깊게 구도(求道)할 수 있는] 시대로 서서히 가고 있는 듯싶습니다. 그러기에 영세 후 신앙의 실망을 체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스스로의 수행과 구도의 자세가 절실합니다. 그나마 성당에서는 흔히 만날 수 있는 조직이 레지오 마리애입니다만, 그것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이 구역소공동체모임 등에서 확인됩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하느님의 눈’을 가져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눈이 밝을 때 온 몸이 밝아지고, 눈이 나쁠 때 온 몸이 어두워집니다. 주님의 시선으로 만물을 보아갈 때 자유와 넉넉함이 넘치게 되므로, 본성각(性覺)이 신앙의 뿌리요 근본이기 때문입니다.(註5) 이 글은 이미 가톨릭인터넷굿뉴스와 저의 카페에 발표한 글이므로 참고하시면, 출구가 보일 듯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2019년 6월 2일 퇴고, 忍冬)


1)경향잡지, 20138월호,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

2):해방신학으로의 무장은 최소한 2013년 이전으로 추정됨(함세웅 신부,"예수는 분열 일으키러 온 것"(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시국미사), 이데일리 등록 2013-11-28 기사 참조할 것.

3):북한주장 남한에서 실현, 노동신문 남한언론 내용 판박이(최근, ‘박근혜는 반드시 탄핵될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 1년 전부터 이미 북한의 노동신문에 도배되어 있었던 것이 알려져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며 네티즌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장한 2016316일자 북한 노동신문 사설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Print.html?idxno=39457 )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bUeXU0_9IIg&t=4271s  (이 동영상 1시간 1145초후에 정구사(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 수녀들 나오고, 비공개 시국미사에서 문재앙이 참여하고 사드반대, 국정원해체 구호가 나오는 등 실제 활동내역을 볼 수 있음. 삼성, 박대통령 구속까지 요구하는 내용.
    2016.12.4.(인권주일) 시국에 참여하라는 사회교리 동영상 강론을 듣고서 (http://cafe.daum.net/kfb67/NPRR/14 )

4): "성서는 승자의 책이 아닌, 희생자의 책이다" -[리뷰] 김근수 해방신학자가 쓴 '루가복음' 해설서 <가난한 예수>,-불교닷컴(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38878)

5):본성(本性)을 깨닫는 신앙인과 본능에 더 충실하는 종교인 묵상(副題;부활신앙의 뿌리, 본성각(本性覺)에 대한 고찰)

원본글 주소: http://cafe.daum.net/kfb67/NPRR/406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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