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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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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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07-11 ㅣ No.4067

           어느 사형수의 편지

 

찬미 예수님!

사형수의 닉네임, 최고수!

미상불 사형수들은 생과 사에 관한 한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최고수가 분명합니다.    

96년 9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후 처음 붉은 명찰  -사형수를 나타내는-  을 받아든 제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상고심이라는 한 가닥 희망이 있었으나 상고심에서 원심대로 사형이 확정되면서 실낱 같은 나의 희망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것입니다.  그리곤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고, 죽음이라는 시커먼 그림자가 나의 가슴을 짓눌러 압박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드러난 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모든 존재의 의미를 말살당한 헛껍데기였고 절망 그 자체였으며 내 앞엔 커다란 죽음의 십자가가 버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죽음의 형벌은 어떤 형태이든지 그 당사자의 마음을 애절하게 합니다.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적 생의 집착의 끝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돕니다.  참 간사하게도 저는 죽음의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 생의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꿈틀거렸습니다.  

그 무렵 저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 생과 사의 기로에서 뭔가를 찾지 않으면 그대로 미쳐버릴 것같던 제가 잡은 지푸라기(?)는 신앙이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삶의 걸림돌처럼 여겨졌던 신앙에 대한 불신의 벽을 내 스스로 허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에 관한 한 철저히 부정적이었던 제가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분명 성령의 이끄심이었습니다.  

 

저는 1996년 12월 18일 은총 속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착한 하느님의 아들이 되겠다는 뚜렸한 의식도 없으면서 당시 나를 고통스럽게 하던 미움 -사회와 형제와 친구들에 대한- 을 극복하려는 일념에서 무작정 그분을 찾아나선 것입니다.   

자유롭고 전능하시다는 예수님이라면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다스려지지 않는 미움과 삶의 애착에서 오는 고통을 단박에 걷어내 주시고 그 자리에 평화를 채워주시리라는 마음에서 내린 결단이었습니다.

 

물론 그분께 대한 큰 신뢰는 없었지만 예수님은 자비롭고 전지전능하시다는 극히 상식적인 통념만을 근거로 내디딘 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놀랍게도 단시일 내로 제 마음에서 미움을 걷어내 주셨고, 미움의 대상이던 사람들이 사실은 나를 하느님께로 이끌기 위해 쓰여진 도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느님 섭리의 심오하심과 깊고 넓은 그분의 사랑을 조금씩 깨닫게 되면서부터 나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뼈저리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마음의 평화를 얻겠다는 극히 이기적인 생각에서 아무런 준비와 각오도 없이 예수님이 걸으셨던 험난한 가시밭길을 따라나섰다는 것이 송구스러울 뿐이었습니다.

 

 또한 세례받은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온갖 죄의 요소들이 머리를 들 때마다 내 복음적 삶의 여정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장애가 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맙게도 어려운 삶의 고비마다 내 인생 밑바닥까지 쫓아 내려와 저를 돌봐주시니 말입니다.  

참 좋으신 하느님은 멍과 상처뿐인 내 마음에 사랑의 마음을 새로 심어주셨습니다.

아니, 그 사랑의 마음은 하느님께서 태초에 우리 인간에게 넣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안은 나의 마음에 오만과 위선과 허영이라는 먼지가 가득 쌓여 빛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분명해졌습니다.

하느님은 저에게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누구라도 생명의 은인에겐 뭐든지 주고 싶어합니다.

지금 제 마음도 그렇긴 합니다만 과연 제가 그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내가 사는 것은 예전의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대신 사는 것"(갈라 2,20)인 만큼 그저 하루하루 기쁘게 살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뭇사람들에게 하늘나라를 알릴 수 있는 신세대(?) 세례자 요한이 되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분 앞에서 나의 의지는 참으로 보잘것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당신의 방식대로 우리의 앞날을 마련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가만히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하면 될 것입니다. ♥

 

                                              경향잡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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