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흐르는 물처럼, 둥근 돌처럼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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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옥 [songdo] 쪽지 캡슐

2001-07-21 ㅣ No.4162

매일 메일(mail) 서비스에서 

[오늘의 † 복음]

"예수께서 예언을 이루시기 위하여

당신을 남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셨다"

( 마태오 12,14-21)

[흐르는 물처럼, 둥근 돌처럼 살아갑시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 마음 같지 않습니다.

태초부터 창조주께서는 모든 만물을

똑같이 만들어 내지는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자연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산에 올라 숲을 내려다보면 수많은 종류의 나무와

동식물들이 공존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상에 인종은 다르지만 과학과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글로벌 화되어, 이제는

전세계 사람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정에서부터 학교, 직장, 교회 등

사람은 공동체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속에서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개성이 다르다 보니

 서로 부딪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부 관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자녀, 형제들 사이에도

나 하나만이 살아가는 것이 아닌,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타고난 천성이든 생존경쟁에 의한 후천적이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기심을 갖게 됩니다.

직장이나 학교 또는 교회 단체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신에게 견디기 힘들게 만드는 사람이 꼭 한두 사람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는 왕따 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직장에서도 성희롱이나 인권유린이 빈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나 성당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로 인해 냉담을 하는 교우가 많습니다.

같은 교우이면서 괜히 미워하고 질시하고

남을 얕보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자신의 성격이 까다롭거나 개성이 강하다보니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개가 서로 부딪치다 보면 새로운 조화를 이루며 살게 되지만,

이는 어느 한쪽이 양보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의 섭리를 배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흘러가는 물을 보십시오.

물은 흐르다 앞이 막히면 돌아갑니다.

서로 부딪치고 싸우려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물은 사람과는 달리

서로 높은 데로 올라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은 낮은 데로 가려합니다.

여기서 사람은 물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물은 서로 모이면 곧 똑같이 수평을 이룹니다.

누가 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이는 물리적인 현상이겠지만,

여기서도 공동체적인 선을 배워야 합니다.

서로가 같은 목적으로 하나로 향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물은 다툼이 없습니다. 물은 고요합니다.

물은 말없이 자신을 희생하여 자연이나 동식물에게

생명을 유지시켜 줍니다. 이것이 물의 사랑입니다.

우리도 물처럼 이런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물과 같이 흘러서 둥글게 된 돌처럼 살아야 합니다.

돌 도 서로 부딪치다 보니 모난 부분은 버려지고

단단하고 둥근 부분만 남게 됩니다.

사람도 자신의 모난 부분을 버려야 합니다.

서로 부딪치다 보면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알게 됩니다.

사람도 돌처럼 모난 부분을 버리고 살다보면

아름답고 견고하게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종교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종교가 다르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심지어 같은 그리스도를 믿으며 서로 싸우고 헐뜯는다면

오히려 사마리아인이 진실한 형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님은 "남의 밥이 되어 주라" 고 권하십니다.

먼저 양보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둥근 돌이 부딪쳐도 부서지는 것이 없듯이

사람도 모가 나지 않으면 부서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밀밭과 같습니다.

밀밭에는 밀만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잡초인 가라지도 함께 자랍니다.

이삭이 패고 추수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푸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모나 지위만 보고는 저 사람이 밀인지 가라지 인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추수 때가 되면 그때는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 때는 밀은 거두어 곡식 창고로 가겠지만.

가라지는 뽑혀져 불에 태워 질 것입니다.

이 말은 성경 말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만,

교회나 성당 내에서도 분명 가라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모두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교인을 빙자하여 성당이나 교회 내에서 이권에 개입하여

폭리를 취하는 가라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장 정확한 것은 위에 계신 하느님께서만 아십니다.

누구든 자기의 빈 등잔에 일생동안 믿음과 선행을 통하여

기름을 가득 채운자 만이 신랑(하느님) 이 오실 때(죽음을 맞이할 때),

등잔에 불을 밝히고 따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살아 있을 때 등잔(자신의 영혼)에

기름(믿음과 사랑) 을 가득 채워 놓읍시다.

다음컬럼>사랑과 자비의 만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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