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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병이 이종설 청동기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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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4-03-20 ㅣ No.63730

 

                        홍위병이 이종설 청동기사에게

 

 

 

이종설 청동기사 양반.

 

옛날에 지천명의 세월을 넘고 어느덧 이순을 향해 가고 있는 이 홍위병이 청동 갑옷을 두르고 사는 이종설 청동기사 양반께 한마디하리다.

 

내가 나를 일러 홍위병이라고 한 것을 보고 본색을 자인했다고 덮어놓고 좋아하지는 마시오. 그건 내가 홍위병임을 자인해서가 아니라, 당신네들이 나를 홍위병이라고 부르는 것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서외다.

 

홍위병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나는 당신네들이 홍위병이라고 부르니 홍위병이요. 나는 당신네들에게서 홍위병이라고 불리게 된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오. 내가 당신네들에게서 홍위병이라고 불리는 것에는 아주 깊은 상징성이 있소. 당신네들의 억지 왜곡과 가치전도, 치사하고 후안무치한 행투들이 거기에서 그대로 투영될 수 있기 때문이요.

 

참된 세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일러 당신네들이 홍위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대로 참된 세상을 추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절하게 상징해주는 것이오. 참된 세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그 마음과 노력이 얼마나 오래, 또 얼마나 어렵게 가시밭길을 헤치며 나아가는 것인가를 당신네들의 그 언어가 그대로 적시해주는 것이오.

 

그래서 나는 홍위병이요. 당신네들이 제법 괜찮은 말인 줄로 알고 무기처럼 써먹는 그 홍위병이라는 말이 나로서는 오히려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오. 홍위병이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소설가 이문열씨가 도리어 고마워지는 이치를 당신네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오. 아마 이해하지 못할 거요.

 

차라리 내가 그 이유를 당신에게 알려 주겠소.

 

일찍이 이 땅의 기득권 언론들은 일제에 저항해서 일어난 의병들을 일러 비적(匪賊)이라고 불렀소. 조선일보는 저 만주의 독립군을 향해서도 비적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소.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본 관동군 중위였던 박정희는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한 다음부터 이 땅의 백성들을 향해 걸핏하면 ’몰지각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남발했소.

 

박정희의 후계자인 전두환은 정권을 거머쥐기 위해 온 광주 땅을 피로 물들이면서 광주시민을 가리켜 ’폭도’라는 말을 썼고, 그 야만적인 용어는 특히 조선일보의 지면을 가장 크게 장식했소.

 

나는 그때 이미 5공 정권은 폭도정권이고, 조선일보는 폭도언론, 폭도들의 찌라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소.

 

당신네들이 참된 세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일러 홍위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민족 배반의 무리, 민주주의를 유린한 무리, 거짓과 불의와 부패 속에서 현실 권력을 키워온 무리, 민족 통일을 훼방하는 무리들이 의병과 독립군을 일러 비적이라고 부르고, 민주시민들을 몰지각한 사람으로 매도하고, 광주시민들을 폭도라고 부른 것과 같은 맥락인 것이오.

 

그러니 내가 이 홍위병이라는 명칭을 어찌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가 있겠소.

 

이종설 청동기사 당신은 또 하나의 쓰레기 글에서 우리를 일러 "이게 바로 입력된 대로 움직이는 ’코드교’의 로봇트 홍위병인기라..."라는 말을 적었는데, 당신네들이야말로 저 옛날 의병들과 독립군을 일러 비적이라고 부른 내력으로부터 연유되어 내려온 관성, 그 오랜 입력 체계로만 움직이고 말하는 대단히 성능 좋은 로봇트들인 것이오.       

 

내가 왜 당신을 일러 청동기사라고 부르는지 알겠소?

당신네들이 우리를 일러 홍위병이라고 부르니, 나도 적당한 답례를 해야 하지 않겠소?

 

당신은 저 아득한 옛날 청동기시대에 입었던 청동 갑옷을 지금도 입고 있는 사람이오. 당신은 그 청동갑옷의 두께와 무게 때문에 목도 제대로 돌릴 수가 없소. 그리고 전혀 사계절의 변화도 느끼지 못하고 있소. 그 청동 갑옷을 너무도 믿는 나머지 사람의 외투를 벗겨 주는 것은 부드러운 봄기운이라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바람의 존재와 시간의 이치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소.

 

당신은 이 나라가 다시 청동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바라고 믿고, 또 그게 가능할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더욱 청동 갑옷을 제멋대로 두드려 소름끼치는 쇳소리를 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오산일 뿐이오. 한심스러운 발악일 뿐이오.

 

맞춤법을 마구 무시하는 당신의 문투로 보아 나잇살이나 자신 양반 같은데, 같이 나이 먹어 가는 처지에서 참으로 연민을 금할 수 없소. 젊은이들 앞에서 나까지 괜히 나이 먹은 것이 부끄러워질 지경이오.

 

당신은 말꼬리에 경상도 말투를 달기도 하는데, 그것은 의도적인 것인가요? 그러지 마시오. 참된 세상을 추구하는 경상도 사람들이 보면 더욱 어처구니없을 망동이오.

 

당신에게 (또 한 명의 청동기사 정영일씨에게도)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소.

 

나이를 먹어 가면 세상을 보는 눈도 좀 달라지고, 옳은 길이 뭔지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도 좀 해야 하지 않겠소?

 

수많은 굴곡을 안고서도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물 속에서 헛구역질이나 하며 비루하게 살지 맙시다. 헛살지 맙시다. 저 장대한 촛불의 물결을 보시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는 법이라오. *

 

 

(040320)

충남 태안읍 샘골에서 지요하 막시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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