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자유게시판

"규빈 히야친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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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남 [koserapina] 쪽지 캡슐

2006-05-01 ㅣ No.98909

 

 

너를 처음 봤을 때 난 너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 했단다.

또래 친구들도 없는 곳에 따라와서 재미 하나도 없다고.. 네가 잔뜩 심통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지.

잠시 후, 신부님을 뵙고 나오는데, 네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더구나.

네가 의자 위에 올라 서 있었기 때문에 마침 작은 꼬맹이와 꺽다리 아줌마의 눈높이가 맞아떨어져서 우린 서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지.

“몇 학년이니?”

“3학년이요.”

그 순간이었지 아마.

우리가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었던 것이...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을 잡았지.

복도를 걸을 때도..

아무도 없는 2층 시설들을 구경할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그리고 미사를 봉헌할 때도 너는 내 곁에 있어 주었어.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죠?”

그곳 시설에 상주하시는 노인 분들을 배려하여 국악미사곡으로 진행하는 미사가 마냥 좋기만 해서 얼쑤~ 좋아라 신이 난 내게 네가 낙직한 목소리로 물었지.

“응, 맞아, 규빈이가 아주 잘 알고 있구나.”

그렇게 넌 내게 갑작스런 신앙 고백을 해서 생각지 못한 감동을 주었지.


미사가 끝난 후, 우린 기분 좋은 오해를 받았지 뭐니?

“따님인가 보네요..” 처음 만난 난서 글라라님이랑 한상진 교수님이 그렇게 물어보시지 않겠어? 질문을 받는 순간, 팔자에 없는 딸이 생긴 것 같아서 난 너무 기분이 좋았는데, 그 땐 솔직히 너의 눈치를 살짝 보았었단다.


아~ 정말 맛있는 점심식사였지..?

넌 참 예쁜 구석이 많은 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더구나.

삶은 고기를 상추에 싸서 소담스럽게 잘도 먹었고 된장국에 복스럽게 밥을 말아먹어서 옆에서 자잘한 시중을 드는 난 즐겁기만 했었단다.

함께 식사하시던 할머니께 넌 공손하게 대답도 잘하고 식사가 끝난 후 식탁 의자를 제자리에 밀어 넣는 예의바른 숙녀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기도 했었지.

그래서 난 할머니들 앞에서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져서 짐짓 그분들께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어 주기도 했단다.


식사 후, 미리내 성지 가는 길을 난 잊을 수 없을 것 같구나.

갖가지 꽃에 관심을 보이는 너의 예쁘고 맑은 심성을 훔쳐보고 있는데...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넌 수줍게 말을 꺼내더구나.

“저...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그 말을 하면서 넌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어.

손에 들고 있는 꽃잎을 보고 있는 건지, 땅을 보고 있는 건지 너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난 놀라서, 떼어 놓고 있던 발걸음을 순간 멈추었던가...

아니, 가슴에 뭔가 울컥해서 잠시 숨을 골라야 했던가... 암튼 그랬어.

너를 내 가슴 쪽으로 돌려 세우고 나서, 난 너를 힘껏 안아 주었지.

“그래. 그렇게 하려무나. 난 괜찮아, 좋아!”


그 때 마침 아침부터 뿌옇던 하늘이 봄 햇살의 끈질긴 구애에 한숨을 토해내듯 얼굴을 붉히고 있었지..이미 노란 민들레들의 영토가 되어버린 잔디 운동장으로 네가 내 손을 잡아 이끌어 우린 두 팔을 벌리고 소리 지르며 한참을 뛰었지.

“민들레꽃을 피해! 거기야, 그쪽이야, 밟지 않도록 조심해!”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보고 잔디 운동장에 덩달아 들어와서 70년대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 했지.

그렇게 내게 마음을 열어버린 넌 서슴없이 네 속마음을 보여주더구나.

비오 오빠가 참 잘생겼다고... 같이 사진 찍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경망스럽게도 들은 즉시 다 발설해버려도

“말하면 안 되는데..”

어른스럽게 한숨을 내쉬고는 더 이상 날 책망하지 않아서 고마웠단다.


미리내 성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너의 고백을 또 하나 들었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전 지금 엄마가 안 계셔요.”

너는 내가 너에 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줄 알고 하는 소리였지.

엄마 영정 앞에서 이모의 품에 안겨있던 애처로운 너의 모습이 내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였지... 규빈아!


“규빈이 일일 엄마 하시느라고 고생 많었시유.. 고마웠구만유..”

헤어질 때 규빈이 할머니랑 큰아빠 큰엄마가 인사를 하시더구나.

“아닙니다. 제가 규빈이에게 엄마 대접 받아서 너무 기뻤답니다.”


혹시 나와 거리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넌 나를 찾아 가던 길을 되돌아오곤 했었지.

그렇게 넌 날 챙겨 주었어.

규빈 히야친따야!

아무 거리낌 없이 내게 사랑을 주어서 고마웠단다.

히야친따, 우리 예쁜 꼬마 아가씨!

사랑해!

언제 우리 다시 만나자....


히야친따 규빈이 어머니, 요안나님!

유무상통 마을과 미리내 성지에서 우리와 함께 하셨지요?

혹여 사랑하는 딸 규빈이가 넘어져 다칠세라 발치에서 눈을 떼지 못하신 거 다 알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규빈이는 아주 잘 자라고 있더군요.

할머님과 큰아빠, 큰엄마와 아버지의 사랑 속에 착하고 예쁘게 구김살 없이 크는 모습 보고 계시지요?

전 규빈이에게 여러 번의 감동펀치를 맞아서 정신이 좀 없었지만 참 행복했었답니다.

요안나님!

늘 규빈 히야친따 지켜주시고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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