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자유게시판

주님. 노무현(유스토)와 임현숙(테레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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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park05] 쪽지 캡슐

2009-06-05 ㅣ No.135777

 

1. 데레사 자매를 떠나보내며 

  데레사. 그 자매는 파킨슨병으로 10여년을 고생했다. 1998년에 남편과 사별하고부터 얻은 병이다. 파킨슨병이란 사지와 몸이 떨리고 경직되는 중추 신경계의 퇴행성 질환이며 움직임이 느려지고 균형유지와 보행에 장애가 오는 병을 말한다. 대뇌의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이 줄어들어 일어나며 연령이 높을수록 발생 빈도가 높다고 하는 병이다.

  2차적 증상으로는 우울증, 수면장애, 치매, 눈이 감기는 안검연축, 언어장애, 침 흘림, 삼키기 어려운 연하장애, 체중감소, 어지럼증(기립성저혈압), 꾸부정한 자세 등의 증상이 발병된다고 한다. 그 자매는 그동안 고생을 한 흔적을 지우기라도 하듯 모든 것을 정리하고 5월 30일 오전에 주님 품에 안기었다.

  남편의 고향은 경기도 안성이며 11년 전 남편이 하느님 품에 안겼을 때 나는 그의 선영까지 따라가서 모든 장례절차를 도와준 적이 있다. 남편이 지금 생존해 있다면 62세이고 부부는 동갑이다. 이제 그 자매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천국에서 남편을 만났을 터이니 잠시 묵상하며 기도를 드린다.

  1남 2녀를 둔 그 자매의 가정은 여유로운 가정이었으며 주님의 은총을 많이 받은 성가정이었다. 부부는 자모회와 레지오 활동을 열심히 하였고 딸들은 성장하여 대학생이 되었을 때 청소년분과에서 초등부와 중고등부의 교리교사를 하기도 했다. 안타깝지만 딸 둘은 아직 미혼이다.

  그 자매는 내 짝 루시아와 자모회 활동을 같이 해왔으며 옛정을 잊지 못하여 당시 자모회를 했던 자매들 10여명이 모여 지금도 우정을 나누고 있다. 아이들 하기캠프 때마다 따라 나서서 간식 공급에다 과일을 챙겨주고 적극적으로 뒷바라지를 하며 열성적으로 활동을 한 자매였다.

  그래서인지 연도를 바치기 위해 많은 자매들이 다녀갔고 시신을 염습하고 입관예절을 올릴 때 자매들이 모두가 제 일처럼 슬퍼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 이라던 노무현대통령의 말이 생각났다.

  월요일 새벽 데레사 자매의 장례미사 후 고별식 때 주임신부님은 성수를 치시고 향을 사르고 분향을 한 후 형제자매들은 이종철 신부님께서 작곡하신 ‘이 영혼을 받으소서.’를 노래하였다.

  “천주의 성인들이여 오소-서 주의 천사들이여 마주 오소-서

   이 영혼을 부르신 그리스도여 이 영혼을 받아들여 주-소서” (후략)

  이제 이 자매는 수원의 연화장에서 화장되어진 후 선영 납골당으로 모셔진다.


2. 수원 연화장 승화원에서

  장의버스가 조그만 저수지를 끼고 돌아 연화장으로 진입할 때 차창으로 밖을 바라보니 아직까지도 그때의 사건을 보여주는 것인 양 도로가에는 노란풍선과 리본이 많이 걸려있었다. 연화장 승화원에 도착하여 화장 순서를 기다리는데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기에 주변을 둘러봤다. 현수막과 노란풍선, 노란 리본을 줄에 꽂아서 연화장 전체를 장식해 놓았다.

  유시민 전 장관은 '서울역 분향소에서, 넥타이를 고르며'라는 글에서 서울역광장을 노란색 물결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유시민 전 장관의 팬클럽 '시민광장' 회원들은 노란색 풍선과 리본 등을 준비해와 유 전 장관의 제안을 현실화했다. 그리고 노란색은 노란 종이비행기에 실려 애도의 바람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연화장의 주변 분위기가 나를 3일 전으로 데려다 놓았다. 당시 TV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며, 한명숙 전 총리가 조사(弔辭)를 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북받치는 가슴을 쓸어안으며 흐느꼈다. 그 울음은 전염이 되어 옆으로 주변으로 널리 퍼져나갔으며 방송카메라를 통하여 전국으로 온 세계로확산 되었다. 한명숙 전 총리의 조사(弔辭) 전문을 올려본다.


조사(弔辭)


1.


노 무 현 대통령님.

얼마나 긴 고뇌의 밤을 보내셨습니까?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


대통령님.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떠안은 시대의 고역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새벽빛 선연한 그 외로운 길 홀로 가셨습니까?


유난히 푸르던 오월의 그날, '원칙과 상식' '개혁과 통합'의 한길을 달려온 님이 가시던 날, 우리들의 갈망도 갈 곳을 잃었습니다. 서러운 통곡과 목 메인 절규만이 남았습니다.


2.


어린 시절 대통령님은 봉화산에서 꿈을 키우셨습니다. 떨쳐내지 않으면 숨이 막힐 듯한 가난을 딛고 남다른 집념과 총명한 지혜로 불가능할 것 같던 꿈을 이루었습니다.


님은 꿈을 이루기 위해 좌절과 시련을 온몸으로 사랑했습니다. 어려울수록 더욱 힘차게 세상에 도전했고, 꿈을 이룰 때마다 더욱 큰 겸손으로 세상을 만났습니다.


한없이 여린 마음씨와 차돌 같은 양심이 혹독한 강압의 시대에 인권변호사로 이끌었습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와 정의를 향한 열정은 6월 항쟁의 민주투사로 만들었습니다.


3.


그렇게 삶을 살아온 님에게 '청문회 스타'라는 명예는 어쩌면 시대의 운명이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3당 합당을 홀로 반대했던 이 한마디! 거기에 '원칙과 상식'의 정치가 있었고 '개혁과 통합'의 정치는 시작되었습니다.


'원칙과 상식'을 지킨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거듭된 낙선으로 풍찬노숙의 야인 신세였지만, 님은 한 순간도 편한 길, 쉬운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노사모' 그리고 '희망돼지저금통' 그것은 분명 '바보 노무현'이 만들어낸 정치혁명이었습니다.


4.


노 무 현 대통령님.

님은 언제나 시대를 한 발이 아닌 두세 발을 앞서 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영악할 뿐이었습니다.


수많은 왜곡과 음해들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어렵다고 돌아가지 않았고 급하다고 건너뛰지 않았습니다. 항상 멀리 보며 묵묵하게 역사의 길을 가셨습니다.


반칙과 특권에 젖은 이 땅의 권력문화를 바꾸기 위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습니다. 화해와 통합의 미래를 위해 국가공권력으로 희생된 국민들의 한을 풀고 역사 앞에 사과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님이 대통령으로 계시는 동안, 대한민국에선 분명 국민이 대통령이었습니다.


동반성장, 지방분권, 균형발전 정책으로 더불어 잘사는 따뜻한 사회라는 큰 꿈의 씨앗들을 뿌려놓았습니다. 흔들림 없는 경제정책으로 주가 2천, 외환보유고 2,500억 달러, 무역 6천억 달러,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어 한반도 평화를 한 차원 높였고 균형외교로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해 냈습니다.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쓰는 세계 첫 대통령으로 이 나라를 인터넷 강국, 지식정보화시대의 세계 속 리더국가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이 땅에 창의와 표현, 상상력의 지평이 새롭게 열리고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까지 한류가 넘치는 문화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습니다.


대통령님이 떠난 지금에 와서야 님이 재임했던 5년을 돌아보는 것이 왜 이리도 새삼 행복한 것일까요.


5.


열다섯 달 전,

청와대를 떠난 님은 작지만 새로운 꿈을 꾸셨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잘사는 농촌사회를 만드는 한 사람의 농민, '진보의 미래'를 개척하는 깨어있는 한 사람의 시민이 되겠다는 소중한 소망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봉하마을을 찾는 아이들의 초롱한 눈을 보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뇌하고 또 고뇌했습니다.


그러나 모진 세월과 험한 시절은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룰 기회마저 허용치 않았습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한없이 엄격하고 강인했지만 주변의 아픔에 대해선 속절없이 약했던 님.


'여러분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는 글을 접하고서도 님을 지키지 못한

저희들의 무력함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그래도,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의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지막 꿈만큼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인 일입니까? 세상에 이런 일이 있습니까? 세상은 '인간 노무현'으로 살아갈 마지막 기회조차도 빼앗고 말았습니다.


6.


님은 남기신 마지막 글에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최근 써놓으신 글에서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이 실패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남아 있는 저희들을 더욱 슬프고 부끄럽게 만듭니다.


대통령님.

님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님의 말씀처럼 실패라 하더라도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저희들이 님의 자취를 따라,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습니다. 그래서 님은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대통령님.

생전에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분열로 반목하고 있는 우리를 화해와 통합으로 이끄시고 대결로 치닫고 있는 민족 간의 갈등을 평화로 이끌어주십시오.


이제 우리는 대통령님을 떠나보냅니다.

대통령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 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더는 혼자 힘들어 하시는 일이 없기를, 더는 혼자 그 무거운 짐 안고 가시는 길이 없기를 빌고 또 빕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님을 놓아드리는 것으로 저희들의 속죄를 대신하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가시는 길, 이승에서의 모든 것을 잊으시고, 저 높은 하늘로 훨훨 날아가십시오.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대통령님 편안히 가십시오.


2009년 5월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위원장 한명숙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화장되어지는 연화장에 인파가 3만 명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저수지 도로변과 입구, 연화장 장내를 모두 채우는 인파다. 이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대통령의 시신이 모셔진 운구차가 도착되어지고 3군의장대 병사들에 의해 승화원으로 들어갈 때 또 한 번 통곡을 했다. 

  

바보대통령 


  정말 구구절절 가슴이 저려온다. 그분은 권력을 내려놓았다. 한명숙 전 총리의 조사에서와 같이 “님이 대통령으로 계시는 동안, 대한민국에선 분명 국민이 대통령이었습니다.”를 되 내이며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②를 생각해본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통령의 권력이 그렇게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인지 요즘 뼈저리게  느낀다. 그런 권력을 노무현대통령은 국민이 주인이고 국민이 대통령이라 하시면서 내려 놓으셨다. 정말 대단한 분이다. “이 나라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다.” 를 느끼게 해주신, 국민을 진정 사랑하는 대통령이셨다.

 

3. 수원 연화장 승화원 8호실

  우연의 일치일까? 데레사 자매도 8호실을 배정받았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屍身)도 3일 전 오후6시에 이곳 8호실에서 승화되었다. 8호 화구 앞에 놓여 진 노무현대통령의 관(棺)이 전파를 타고 세계로 널리 퍼졌다.

  송기인 신부님에 의해 화장 전 예식이 거행되었다. 성수를 치고 향을 사른 다음 우리 주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형제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정화와 구원의 불길로 이 육신을 사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교우 노무현 유스토가 새 육신으로 부활하여 주님 앞에 나아갈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한없이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타오르는 이 불꽃으로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이 교우의 죄를 모두 씻어주시도록 간절히 청합시다.  


  ♱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에게 새 생명을 약속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셨으니 이 교우를 깨끗이 하여주시고 생명의 은총을 내리시어 주님의 낙원으로 이끌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사도 바오로의 고린토 1서 말씀이 봉독되어지고 이어서 연도가락에 맞춰 화답송으로 시편 55편을 노래한다. 화장 전 예절이 끝나자 관(棺)이 화구로 들어갈 수 있도록 놓여졌다. 8호 빈소에서 투명유리실 건너로 보이는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관(棺)!... 관(棺) 안에 이 세상 모든 것을 안고 가는 노무현대통령의 주검이 들어있다.   

  “엄마. 아빠 들어가는 거 봐봐.”

  딸이 통곡하며 엄마 권양숙 여사에게 말을 하자, 권양숙 여사는 그동안 참았던 슬픔과 응어리 진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삭이며 한(恨)을 쏟아냈는데 이제는 대성통곡을 한다. 그렇다. 울 때는 한없이 크게 울어야한다. 권양숙 여사는 울어야 되리라! 관이 화구로 들어가면서 동시에 투명유리창에 커튼이 닫쳐졌다.   

  이제 그 분은 한 줌의 재가 되셨는데...... 아직 무언가 많은 것이 마무리가 안 된 느낌이고, 명치끝이 계속 답답해 옴을 느낀다. 무엇이 이렇게까지 그분을 몰고 갔는가? 국민이 주인인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는데...... 

  데레사 자매의 시신도 화구 앞에 놓여졌다. 화장 전 예절을 연도가락에 맞춰 기도를 드리는데, 3일 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 어른거리는데 분심이 들어 기도가 집중이 안 된다. 분심을 지울 수가 없다. 더구나 내가 기도를 드렸던 곳은 권양숙 여사가 앉아있던 곳이었다. 딸과 아들이 엄마를 부축하고 있는 모습과 통곡하는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1시간 40분 정도 지나니 모든 것이 재가 되어있다. 습골(拾骨)과 쇄골(碎骨)을 하면 뼈가 부서지고 가루가 된다. 뼈가 부서지듯 구약에 나오는 욥의 기도를 연도가락으로 기도를 드린다.

  ‘아 - ! 누가 있어-나의 말을 기록-해 두랴 누가 - 있어 구리판에 새겨-두-랴 쇠나 놋정으로 바위에 새겨-길이길이 보존-해 주랴 나는-믿는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 있음을 나의 후견인이 마침내 땅 위에-나타나리라 나의 살갗이 뭉그러져-이 살이 질크러진-후에라도 나는-하느님을 뵙고야-말리라’

  데레사 자매의 영정을 모시고 가는 친척과 납골함을 든  아들, 그 뒤로 아직 미혼인 딸들이 따라간다. 경기도 안성 선영의 납골당에 이르러 유골봉안소에 모시면서 모든 예절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제 부모 없이 1남 2녀가 살아가야 한다. 故 노무현대통령도 49재가 끝나면 봉안이 된다고 한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의 서로 만남이 있어 남다른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며 살겠다.


 ♱ 주님. 노무현(유스토)와 임현숙(데레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사람과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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