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자유게시판

김강정신부님의 사제관일기(6/16)

스크랩 인쇄

앤젤 [chldudwn] 쪽지 캡슐

2001-06-16 ㅣ No.21266

사제관 일기 70  

 

"신자에게 받은 아픔보다는 사제에게 받는 아픔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주님만이 아시겠지요...

 주님의 길을 가는데 아무런 의심없이 갈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세요

 아무런 의심없이 갈 수 있도록......

 아무런 의심없이......"

.......

방명록에 실려있는 한 사연의 마지막을 옳겨놓습니다.......

얼굴 없는 신자의 넋두리로만 묻어버리기에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몇 번을 곱씹어 읽으며 당신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옷깃 한번을 스치는 것도 인연이라는데,

마음을 스치는 이 인연을 무심히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아,

오늘 당신을 이렇게 붙들고 앉습니다.....

.......

어떠한 연고로 마음을 다치셨는지는 모르지만,

만에 하나, 그 아픔이 한 사제의 부덕에서 오는 아픔이시라면,

동료사제를 대신해 당신께 고개숙여 사죄를 드리고 싶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저와 그 사제를 위해 대신 기도로써 빌어주십시오......

이것이 제가 당신께 드리고자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청원이고 싶습니다.....

 

사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이지만,

그 이름의 값을 하기에는 한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부족하고 미천합니까.....

세속적이면서도 성스러워야 하고, 인간적이면서도 신적이어야 하거늘,

고결하고 신성한 모습 안에 맡아지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냄새......

그래서, 인간적인 약점을 누구보다 더 많이 감추며 살고 있는 위선의 얼굴,

어쩌면 그가 바로 사제일는지도 모릅니다.

자기완성을 이루지 못한 채 남의 완성을 도와야 하고,

내면에서 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불협화음을 바깥에서 다스려야 하는 모순의 삶.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사제의 길임을 저 또한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

그리고, 결국 그로 인해 당신은 다쳐야 하셨습니다.

사제의 이 모순들이 당신을 크게 다치게 만들었습니다.

사제로서 그것이 죄스럽고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당신만이 그 인간적인 덫에 걸려 쓰러졌다고는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당신이 쓰러지는 바로 그 순간, 사제도 함께 쓰러졌습니다.

당신에게 상처를 입혔던 바로 그 순간,

그 사제의 영혼 속도 더 큰 상처로 멍울졌습니다.

사제가 신자에게 상처를 줄 때, 그 사제도 틀림없이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

사제가 상처를 치유해 줄 때 만이 비로소 사제의 상처도 아물게 된다는 것.....

하느님께서 사제 속에다 심어놓으신 이 놀라운 치유법을 꼭 믿어주셔야 합니다.

 

그러니, 당신께 소원합니다.

정녕, 치유를 원하신다면,

사제의 상처를 먼저 생각해주시고, 더 많이 생각해 주십시오.

자기를 부수지 못해 눈물 흘리는 사제의 깊은 밤을 여겨보시고,

그 밤이 당신의 밤보다 더 어둡고 길다는 것만 생각하십시오.

그러할 때, 당신의 마음 속에는 놀라운 치유가 이루어질 것이고,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밤을 더는 어둡게 만들지 않으실 것입니다.

.......

저도 당신을 위해 기도할 겁니다.

마음의 상처를 없애달라기 보다는

그 상처로 인해 더욱 성숙한 모습의 당신이 되시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주신 숙제를 제 삶의 으뜸 과제로 택하겠습니다.

당신이 아무런 의심없이 갈 수 있는 주님의 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 길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도 생각하면서,

사제의 길을 조용히 걸어가겠습니다.

.......

당신께 고백합니다.

비록 멀고 험준한 길이지만, 그래도 당신이 계셔 행복하노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당신에게 드릴 이 사제의 마음이며, 당신 사제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비록 이 말씀을 당신 사제에게 영원히 못 듣는다 손,

이 사제의 입을 통해 대신 전해 들었노라, 그리 여겨주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마음처럼 몸이 따르지를 못했고, 몸처럼 마음을 다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으로 해서 행복하노라고,

그분은 이미금 당신 속에 그 마음을 다 넣어주셨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788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