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자유게시판

내 자신이 죽고 싶을 때..

스크랩 인쇄

황미숙 [shwang] 쪽지 캡슐

2001-08-30 ㅣ No.23928

 

 

기나긴 한여름밤의 꿈에서 방금 보시시 눈을 뜬

사랑의 루미 인사드려요.

 

 푸른빛으로 설익은 들판은 온통, 온통

 

계절이 지나는 하늘을 안고서

 

아직도 여름날의 즈문 단꿈에 젖어 늦잠을 자고 있네요.

저 언덕배기 마다엔 왠지모를...

 

한계절을 보내우는 작은 슬픔들이 배여 있지만

 

벌써부터 성큼이는 한무리 흐드러진 코스모스의

한들거림에 마음이 가빠지네요.

 

허수아비가 드리는 가을 인사 잘 받으셨어요?

 

아주 오랫만에 보는 들판의 허수아비

 

가을이 조금씩 조금씩 수줍게 다가오고 있네요.

귀뚜라미 울음소리, 풀벌레 울음소리를 이고

 

사랑의 루미도 엊저녘엔 가을꿈을 꾸었답니다.

 

제 마음속엔 아주 아주 쬐꼬만

루미가 가꾸는 마음의 뜨락이 있어요.

 

오랜세월 뜨락이 없는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제  마음속엔 작은 뜨락이 있답니다.

 

채송화, 분꽃, 붉은 장미,나팔꽃, 봉선화, 접시꽃, 호박꽃등이

계절마다 송송 피어나죠.

 

제겐 세상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꽃들이 있을까 싶어요.

 

채송화나 분꽃, 나팔꽃, 봉선화꽃들은

 

아주 어린 유년시절 집뜰에서 짖굳게 꽃잎들을 따모아

 

호주머니속에 마구 마구 부벼넣으며

뛰어놀았던 기억의 저편

 

늘 제게 "향기"로 전달해 오는,

어린시절 뜰앞에서 누렸던

 

아주 작은 어떤 평화를 연상시켜주는 꽃들이예요.

 

이보다 많은 아름다운 꽃들도 세상엔 많이 있지만

 

가끔씩 제가 호주머니를 훅~ 털어버리 듯

 

문득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아주 작은 "평화"를 제 마음 가득 실어오는

평화의 꽃들이랍니다.

 

그래서 우연히 채송화꽃들나 봉선화,나팔꽃들이 피어있는

 

뜨락앞에 서면 저도 모르게 한참씩  

 

그 곳에 그렇게.. 서있곤 한답니다.

 

님의 마음속에도 쬐꼬만 작은 뜨락 하나 가꾸어보세요.

늘 보는 세상이 아침마다 조금은 달라보이실거예요.

 

저는 오늘아침에도 거울속의 제 모습을 비추어 보았어요.

 

어제, 그제, 오늘, 내일..

 

물론 조금씩 세월의 흐름속에 깍이고 다듬어지고 있을

 

제 모습의 은밀한 변화들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눈치채진 못하겠지만

 

아무튼, 저는 제 자신이 무척 사랑스럽고

.......어느정도 마음에 들어요.

 

자화자찬 혹은 나르시스트냐구요?

 

제 자신속엔 분명 좋은 장점들과 여러가지 삐죽거리는

 

단점들이 어우러져 지금의 저를 이루고 있지만

 

저는 있는 그대로의 저를 무척 사랑해요.

또 사랑스럽고요.

 

제 자신이 사랑스럽고 있는 그대로의 저를 사랑하니까

 

저 역시 제 곁에 있는 벗이 사랑스럽고

 

있는 그대로의 벗이 지닌 그 모습 그대로 사랑스러워요.

제 자신이 너무 소중하고 제 인생이 너무 너무 소중하니까

 

이웃인 그가 저를 소중하게 대해주고

 

또 제 인생을 무지 존중해주기를 바래요.

 

제 자신이 소중하고  제 인생 역시 소중해서

 

제 자신과 제 삶을 존중받고 싶은만큼

 

제 곁에 있는 그 역시 저와 똑같은 바램을 지니고 있고

그만큼 저에게 바라고 있을거예요.

 

내 곁의 그를 사랑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자기 인생을 먼저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자기 마음속에 자기 자신의 소중함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타인에게 줄 사랑이 없을거에요.

 

내 자신의 소중함을 안다면

 

나와 똑같이 생긴 내곁의 그 역시 소중하지 않을까요?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자기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자기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내 생명이 너무도 소중해 얼마나 나는 죽고 싶지 않은지,

참~~알고프지 않으세요?

 

자기 자신을 많이 사랑하고 있는만큼

 

"그’를 또한 많이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이 용서받은 사람이

 

많이 용서해줄 수 있고,

 

많이 사랑받은 사람이

많이 사랑해줄 수 있는 것처럼요.

 

자기 자신의 소중함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내 곁의 그를 사랑할 수 있고

 

그의 생명과 그의 재산, 그의 인생을 사랑해줄 수 있을까요?

 

자기가 애써 모은 돈이 아깝고 소중한만큼

 

내 이웃이 애써 모은 돈들 또한 소중하지 않을까요?

 

내가 살아 있고 내 목숨이 소중해 죽고 싶지 않은만큼

내 곁의 그 또한 저처럼 죽고 싶지 않을거예요.

 

이웃에 대한 사랑과 그가 살아있음에 대한 존중은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부터

 

시작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다 아는 진리이지만요.....

 

먼저, 흠많고 실수도 많고 왠지 못생긴 것 같고

 

잘난 것도 없어...

 

왠지 내 자신이 죽고 싶을 때가 있는

 

정말이지 별볼일 없는 인생의 주인공 같은

나를 무지무지하게 사랑해주세요.

 

그를 사랑하기에 앞서 나를 먼저 사랑해 주세요.

 

저는 제 자신을 무지 아끼고 제 몸을 잘 돌보아 줄려고 노력해요.

가끔씩 제 자신이 마음에 안들고 미워지기도 하지만요.

 

제가 제 자신을 스스로 돌보지 않는다면

 

제 마음과 몸은 금새 헝클어져 이쁘지 않은 모습일텐데

 

제 자신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제 모습이

 

과연 그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모습으로 비추어질 수 있을까요?

그에게 사랑받고 싶은 열망만큼

 

저는 제 자신을 가꾸고 아끼고 소중히 하고 사랑해 주고 싶어요.

 

제가 만일 죽어버린다면(결국 죽겠지만)

 

이 세상과는 영원한 이별일텐데

 

저는 제 자신이 현재 "있음" 그리고 "살아 있음"이

눈물나도록 고맙고 가슴벅차요.

 

이토록 주님께서는 제게 세상에 둘도 없는 꼭 하나,

 

제 생명을 주셨어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요.

 

 

저는 집에서 맹순이라는 아주 이쁘고 여우같은

토끼 한마리를 키우고 있어요.

 

처음엔 작은 애완용 토끼인줄 알았는데

 

어느날부터 그칠줄 모르는 왕성한 식욕덕분인지

무지 덩치 큰  집토끼가 되어버렸어요.

 

맹순이 토끼가 하는일이란 요리저리 귀를 쫑긋 쫑긋거리며

 

쉴새없이, 하루종일 먹고 노는일이예요.

저는 토끼 먹는 거, 목욕시키는 거, 토끼똥 치워주는 거..

 

또 사랑해 주는 거... 마다하지 않고 하면서

 

이 작은.. 울음소리도 못내는 작은 토끼를 통해

생명의 신비와 존귀함을 순간 순간 느낀답니다.

 

저와 토끼 맹순이는 서로 눈빛으로 통해요.

 

저는 토끼 눈빛만으로 토끼가 배가 고픈지, 사랑받고 싶은지,

 

방안에 들어오고 싶은지, 혼자 쎈치(?)한지 다 알 수 있어요.

 

저희 가족이 식사할 때마다 베란다에서 뛰어들어와

저희집 식탁에 뛰어오르고

 

꼭 몇알의 밥알을 입에 넣어주어야하는 이 훼방꾼은

혼자 덩그마니 베란다에 있고 싶어하지 않아요.

 

사람들과 함께, 특히 자기를 사랑해주는 이들과 함께 있고 싶어

 

베란다문만 열렸다하면 온 몸으로 트위스트 춤을 추어가며

 

낑낑대고 들어와 자기의 사랑하는 애인들(?)곁에 있고자해요.

 

가끔씩 엉덩이를 오리처럼 쭈~욱 빼고 머리를 찰싹 땅에 대고서

머리 쓰다듬어달라..즉 자기를 사랑해 달라고 응석을 떨어요.

 

개처럼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나 눈치 코치는 없지만요.

 

제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눈을 지그시 감고서

 

"나 잡아 잡수시오"하는 표정을 짓곤하는데

참 "사랑" 그 자체의 모습이예요.

 

사랑의 모습은 이렇게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나봐요.

 

토끼가 밤새 안녕이라고 밤새 죽지 않고 살아

 

새벽마다 베란다문을 열면

 

혼자서 깡총이며 아침 체조를 하거나

 

저희 어머니가 가져오신 풀들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어요.

그 맑은 동그란 눈을 까박이며 또 저를 쳐다보아요.

 

자유의지도 없어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전적으로 제게

 

그 모든 걸 의지하며 살아가는 토끼이지만

 

저는 토끼가 살아 움직인다는 그 사실하나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해요.

 

정말 저의 작지만 또 하나 소중한 기쁨이예요.

 

저희집 맹순이는 다른 토끼들 보다도

 

이쁘은 털과 얼굴을 가진 토끼예요.

왜냐구요?

 

제가 무지 무지 사랑해 제가 쓰는 샴푸로 목욕도 시켜주고

 

제가 먹는 모든 것 빵, 과자, 밥, 라면, 아이스크림등을

 

꼭 함께 나누어 먹거든요.

 

맹순이가 훨씬 더 이쁠 수 있는 건 사랑받기 때문이 아닐까요?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그냥 살아있음 그 자체로 존귀하고

 

살아있음 그 자체로 조건없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들을

 

저는 오랜 세월 자주 자주 잊고 살아왔는데

 

이 작은 토끼 맹순이를 키우면서

 

생명 그 자체의 소중함에 대한  

기쁨들을 배웠답니다.

 

내 자신이 살아있고, 내 토끼가 살아있고,

 

일흔 고령의 제 어머니가 살아계시고

 

제가 아끼고 염려하는이들이

 

비록 다른 공간과 시간속에 멀리 떨어져있지만

아직 살아있음에

 

비록, 오늘 하루 제 인생을 바꾸어줄 특별한 사건이나

 

사고 혹은 특별한 감정들이 생긴다하지 않아도

 

어제나 그제나 내일이나 별 변화없는 생활이지만

 

조건없이 행복하고 조건없이 기쁘고

조건없이 감사하답니다.

 

저를 비롯해 너무 자주 자주 잊고 살아가는 거

보세요! 내가 아직 살아있잖아요!

 

아직 살아있어 그를 죽도록 사랑할 수 도 있고,

 

또 마르고 닳도록 미워할 수도 있잖아요.

 

바로 이 순간 내가 살아있음에

그냥 보시시 미소한번 지어보세요.

 

그리고

 

지금 내가 짓고 있는 이 미소를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수 많은 예정된 생명들에게도

 

미소한번 지을 기회를 드리고 싶지 않으세요?

 

그건 그리 어렵진 않답니다.

또 아주 어려울 수도 있구요.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너희 앞에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

너희나 너희 후손이 잘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  

 

신명기 30, 19

 

혹, 나는 지금 알게 모르게 죽음을 택하고 있는지(죽음의 문화)

 

아니면

 

생명(생명의 문화)을 택하고 있는지요?

 

주님께서는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중에서

 

선택하라고 하시네요.

지금 내자신이 처한 환경이 죽음의 문화가 만연해 있고

 

죽음이 당연시 받아들여지고, 죽음들에 무디어져 있어

 

선뜻 생명의 문화를 선택하기는 힘들겠지만

 

주님께서는 너와 네 자식 그리고 후손들이 잘될려면

생명을 택하라고 하시네요.

 

어찌보면 내 현실안에서 참 힘든 것 같은데

 

주님은 실현 불가능하고 인간의 힘에 못미치는 불가능한 일들을

강요하지는 않으신답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내리는 이 법은

 

너희로서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거나 미치지 못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하늘에 올라 가서 그 법을 내려다 주지 않으려나?

 

그러면 우리가 듣고 그대로 할 터인데 하고 말하지도 말라.  

 

바다 건너 저쪽에 있는 것도 아니다.

 

’누가 이 바다를 건너 가서 그 법을 가져다 주지 않으려나?

 

그러면 우리가 듣고 그대로 할터인데’ 하고 말하지도 말라.  

그것은 너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너희 입에 있고 너희 마음에 있어서

 

하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신명기 30, 11-14

하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현실 가능한 선택을 원하고 계신답니다.

 

축복과 저주, 생명과 죽음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유 의지와 주어진 절박한(?) 환경에 의해

 

선택되어지겠지만

 

참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선택임은 분명한 것 같네요.

저에게도요....그리고 모든분들에게도요.

 

 

섹스 산업으로 이득을 챙겨 생명 경시 문화와

 

생명경시 상황들을 창조하고

 

또 생명을 선택하기 힘든 상황들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남을 죄짓게 하는 연좌맷돌을 다신 분들 또한

 

죽고 싶지 않으실테고 오래 오래 사시고 싶으실거예요.

 

그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먼저 자기 자신을 무지 무지 사랑해 주세요.

 

이것은 빈말이 아니다. 너희의 생명이다.

 

이 말씀을 따라야 이제 요르단강을 건너 가서 차지하려는 땅에서

 

너희가 오래 살리라."  

 

신명기 32, 47

 

저 역시 죽음과 생명을 선택해야 되는 상황에 처한다면

 

주님이 주신 저의 올바른 자유의지로

생명을 선택해야하지만

 

생명을 선택하기 힘든 상황들을 인위적으로 조장한다거나

 

선택하기 힘든 상황들에 제 자신이 처하도록 방관되어져

 

궁극적인 책임만 저 자신에게 떠맡겨진다면?

하고 의문을 던져본답니다.

생명 그 자체이신 주님을 선포하는 교회에서 먼저

 

주님이 주신 인간의 자유의지를 올바르게 써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교회의 적극적인 "생명경시문화에 대한 교육"을 바래봅니다.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어요.

 

그 자유를 생명을 선택하는 일에 쓴다면

 

너와 네 자손이 아주 오래 오래 산다고 하시네요.

 

 

주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해

 

죽음의 문화를 창조하시고 또 그에 동조하시는 분들은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럴 수 밖에 없었노라고.. 말하실 수도 있을거에요.

 

그지만,

 

생명과 죽음중에서 네 마음대로 택하되

네가 원하는 것을 받을 것이라고 하시네요.

 

인간의 자유

"내가 죄를 짓는 것은 주님의 탓이다" 라고 말하지 말아라.

 

주님께서 당신이 싫어하시는 것을 하실 리가 없다.  

 

"그분이 나를 빗나가게 만드셨다" 고 말하지 말아라.

 

주님께 죄인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주님께서는 모든 악을 미워하시므로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 처음에 주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을 때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도록 하셨다.  

 

네가 마음만 먹으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며

 

주님께 충실하고 않고는 너에게 달려있다.

 

주님께서는 네 앞에 불과 물을 놓아 주셨으니 손을 뻗쳐

 

네 마음대로 택하여라.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놓여 있다.

 

어느 쪽이든 원하는 대로 받은 것이다.  

 

주님게서는 위대한 지혜와 전능하신 힘을 가지시고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굽어 보시며

 

인간의 모든 소행을 다 알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인간에게 악인이 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고 또,

 

죄를 범하라고 허락하신 적도 없다.  

 

집회서 15, 11-20

 

어떠세요?

 

오래살고 싶지 않으세요?

 

저는 오래 오래 살고 싶어요.

 

진심이예요.

 

바로 내 곁에 있는 이웃이나 멀리 있는 이웃들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가장 가까이 있는  바로 "나자신"과

 

언제부터인가 무심코 놓여져 있는 화분속

작은 풀꽃하나를 사랑해주세요.

 

이웃에 대한 사랑,

 

그리고 생명에 대한 사랑은

 

먼저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되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존귀함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의 존귀함을 알수 있겠어요?

 

내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의 생명을 소중히 할 수 있겠어요?

 

자기 자신, 받은 생명에 대해 실컷 그 생명을 누리고

 

찬양하고, 사랑한 뒤

 

내 곁에 있는 그를 사랑해 주어도 늦진 않을거예요.

 

어쩔 땐...

 

내 자신이 너무 보잘 것 없어... 너무 실수많은 인생이라..

 

죽고 싶을 때가 있으시겠지요..

 

그지만,

""나"를 죽도록 한번  싸~랑해 주세요!

 

손해는 안보실거예요.(루미의 장담)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의 몸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 내십시오.  

 

고린토 전서 6, 19-20

 

 

가능하면 긴 글 쓰지 않을려고 하는데..

 

글이 다소 길어진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늘 주님 사랑안에서 편안한 하루 되소서!



1,193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