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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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30110] 러시아에서 온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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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길 [bandimoa] 쪽지 캡슐

2002-02-23 ㅣ No.30126

(이글은 수원교구 현정수신부님의 컴티에 올려져있던글입니다...)

 

무리한 단식을 하던 끝에 40도에 가까운 고열과 함께 자리 보전 하고 있는 마이클 신부에게 미역국과 쌀 밥을 끓여주고, 지금 이 글을 적습니다.

한 일 주일 동안 한 친구 생각으로 가득 했었습니다. 그리고 삼 일전부터 너무 울고 울어서 머리가 아픕니다.어제만 해도 그랬습니다. 이곳 신자들과 함께 동료 신부를 위해서 기도하던 도중이지만, 친구 신부의 선종 소식을 이야기 해야만 했습니다. 나도 울고 할머니들이랑 다른 신자들도 울고… 그나마 떠듬대면서 읽던 미사 경문도 눈물, 콧물 때문에 더 엉망진창이 되었지요.

미사가 끝나고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상에서의 우리의 기도와 천상에서의 제 동료 신부의 기도가 결코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먼 길 떠나는 형제에게

자식! 성질 머리도 급하긴

평소에 너 답지 않게…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내가 그렇게 통사정 했건만…

뭐 그리 급하게 떠날 일이 있었냐?

안다.

삼 일전에 너는 내게 잠시 들렸지.

네가 나를 알고 내가 너를 알듯이

너는 내게 아침 일찍부터 네가 내게 준 오렌지색 잠바를 손 세탁 하라 했지.알잖니 너도 나를…

내가 얼마나 구질 구질 했으면

네게 귓속말로 그렇게 속삭였을까?

그때만 해도 아무것도 몰랐단다.

그날은 공소를 가던 날이었지

그곳에는 비정상적인 오누이 신자가 있는데

그들도 부모 상중이었어.

그들의 모친도 비 정상인 이었음을 너도 알지.

우리 함께 미사 드리면서 또 울면서

돌아가신 그들의 어머니 ‘마리아’를 위해서

기도했지. 난 그들을 이렇게 위로했지.

지금 어머니가 하느님과 함께 계신다고…

그들은 울면서 긍정했지. 어머니 제사도 제사지만

당장 먹을 빵이 없다는 그들에게 얼마의 루불을 건네주고 마가단으로 돌아오는

그 날 밤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꺼야.

이상한 일이지.

전에도 그런 밤 풍경을 본 것도 같은데…

너도 알지않니.

창백한 달이 한 밤중에 바다 위에 떠 있고

별로 키도 크지 않은 나무들이

듬성듬성한 숲 사이로 보이는 별들과

달 빛을 반사하는 흰 눈들…

그런데 거의 한 시간 동안 창 밖을 내다보면서 나는 감전된 상태였어.

내가 나를 잊을 지경이었지.

그러다가 문득 문득 소리없이 너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

10시가 넘어 집에 돌아와 보니 네 선종 소식이 와 있더군.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었단다.

네가 경험한 그 한 시간은 바로 네 영혼의 고결함과 순결함에 대한 어떤 암시였음을 직감했다.

안다.

어제는 우리 회 모든 은인들과 형제들이 비탄의 밤을 보냈을 것이다.

또 멀리서 너를 안타까워 하면서도 길을 떠나지 못하는 형제들이 또 그렇게 힘들어 했을 것이고…

너무 짧다.

겨우 3일 동안만 우리 곁에 머물다니…30년을 함께 일해도 짧은 시간이 건을 겨우 3일 더 머물다가

너 정말 먼 길을 떠나는 것이니?

네 목소리를 기억한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손에 손을 맞잡고…’

너 또 좀 목청이 좋았냐.

그렇게 노래해 놓고는 우리 보다 먼저 먼 길

떠나는 너정말 성질도 급하다.

임마!

아마 나랑 이런 저런 이야기 가장 많이 나누었을 친구…

이제 누구와 더불어 속내 얘기를 할꼬…

너를 차마 아직도 싸늘한 언 땅에 뭍을 수는 없다.

홍배야!

거기에 묻히지 말거라. 거긴 너무 춥고 어둡단다.

내가 내 가슴 한 켠에 너를 위해 공간을 마련해 놓을게.

그곳으로 너를 초대한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의

가슴에 또 그렇게 묻혀주기를…

우리가 오늘 땅에 묻는 너는 너의 껍데기일 뿐

너의 사랑과 너의 따뜻함과 너의 과묵함과 너의 친절함과 너의 온유함은 늘 우리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

네가 나를 기다리지 않았으니

다음에 우리 만날 때 네가 소주 사라.

그 때는 정말 서들지 말고 나를 기다려줄 수 있겠지?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 잊지 말고…

게을러지지 말고…천상에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겠지?우리도 지상에서 너를 위한 기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우리의 기도는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여하튼 친구야. 잘 가거라.

그 먼 길 어떻게 너 혼자 보낼 수 있을까.

친구야 사랑한다.친구야 사랑한다.

친구야 우리 모두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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