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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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옳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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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경 [ppebble] 쪽지 캡슐

2002-08-27 ㅣ No.7100

 

 

"어서 오세요”

출근 길 버스. 희끗희끗한 머리의 운전기사 아저씨가, 시원시원한 인사로 아침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상쾌함은 잠시…. 월요일도 아닌데 버스는 거북이 행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다른 버스들은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어 가며 잘도 빠져 나가는데 내가 탄 버스의 기사 아저씨는 버스전용차선을 절대 벗어나지 않은 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거다.

평소보다 약간 일찍 나온 나도 슬슬 불안했다. 여기저기서 불평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갑자기 출입문 앞에 있던 승객 한 명이 운전사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여보쇼, 다른 버스들 안 보여요! 다들 빨리빨리 잘들 가잖아!”

가슴이 철렁했다. 기사 아저씨보다 젊어보이는 승객의 무례함에 기사 아저씨가 언짢아할까봐 …. 아니, 괜한 싸움으로 출근길이 더 늦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 때 기사 아저씨의 표정이 운전석의 백미러로 보였다. 무슨 말인가 하시려다 애써 입술을 꼭 무시는 …. 그리고 잠시 두 눈도 꼭 감으셨다.

사실, 버스가 버스전용도로로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 성격 급한 우리나라 승객들은 그 당연함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다. 갑자기 버스 안은 싸늘한 적막이 감돌았다.

기사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어 주셨다.  그 무례한 승객은 끝까지 삿대질을 하며 앞문으로 내렸다.

그때였다. 여중생 정도로 보이는 교복차림의 학생 한 명이 내리려다 말고 운전석으로 다가섰다. 운전석 뒤에 서 있던 나는 ‘그냥 물을 게 있어서겠지’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때, 운전기사 아저씨 앞에서 당당하게 속삭이는 여중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아저씨가 옳아요. 힘내세요.”

“예? 아, 예.”

아저씨는 못 알아들으신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얼굴이 환해지셨다.

“고마워요. 학생도 좋은 하루 되세요” 하시며 어찌나 고개 숙여 여중생에게 인사 하시던지 …. 그 여학생도 조금은 부끄러웠는지 얼른 앞문으로 뛰어 내렸다.

소녀의 부끄러움과는 다른 부끄러움으로 내 얼굴은 빨개졌다. 버스 안은 조금 전 한 승객으로 인한 적막과는 또 다른 ‘고요함’이 감돌았다.

나를 포함한 승객들 모두 창밖으로 뛰어 가는 여중생을 지켜 보았고, 버스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낮은울타리 정민희(경남 진주시 가좌동)님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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