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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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삼위일체는 성서에 있음[Re: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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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08 ㅣ No.1508

+ 찬미 예수님 !!!

 

   물론 "삼위일체"라는 용어(라틴어로 "Trinitas", 그리스어로 "뜨리아스")나, 니체아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정리된 것과 같은 이론적 혹은 교리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구절은 성서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구약성서를 비롯한 신약성서에는 분명히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들이 비록 명백하게 정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삼위일체를 성서에는 없고 후대에 등장한 교리라고 착각하기 쉬운 까닭은 성서에는 정리되어 있지 않음과 더불어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고 있으며, 성서의 삼위일체 신비를 부정하는 이단들의 출현으로, 이들에 대한 호교론적 차원에서 후대에서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기 때문이지, 성서에 전혀 없는 내용을 후대의 사람들이 느닷없이 만들어 내놓은 것은 아닙니다.   굳이 성전을 내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성령을 "협조자"(빠라끌레토스)로 부르면서, 성령의 역할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성령에게도 위격을 부여하였고, 마침내 성령에게도 위격이 부여됨으로써 삼위일체의 신비가 완성되었다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여기 <가톨릭 대사전>의 "삼위일체"에 대한 기술 중에서 부분 발췌하여 옮겨 놓겠습니다.  그래야 님께서 더 신뢰를 가지실 것 같아서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삼위일체는 성서에 분명히 언급된 하느님에 관한 신비입니다.

 

 

<성서상의 삼위일체>

 

    1. 구약성서가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그늘이라고 신약에서 진술되고 있으나 (1고린 10:11, 갈라 3:24, 히브 10:1), 종교사적으로 구약은 엄격한 유일신(唯一神) 사상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러 교부들이 일부 구약성서의 본문들이 삼위일체 신비를 암시한다고 간주한 바 있다.

   창세기에서의 단수형의 ’나’가 아닌 복수형의 ’우리’ 라는 표현 형식(창세 1:26, 3:22, 11:7, 이사 68), 아브라함에게 나타나는 세 남자들의 방문(창세 18:1-16), 민수기에서의 야훼의 삼중축복(민수 6:24-26), 이사야에서의 세라핌의 ’거룩하시다’ 의 3회찬미(이사 6:3) 등을 말하는 본문들이 삼위일체의 사전계시라고 보는 견해가 있으나, 이러한 해석은 신빙성이 약하다고 오늘날 간주된다.

   이러한 견해보다는 구약이 엄격한 유일신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의 내적 생명의 충만함이나 외부지향의 계시를 지니고 있는 지가 주목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야훼 하느님이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 한가운데에서 현존함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특정 중개형식(仲介形式)의 명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약에서는 ’야훼의 천사’(malkh Jahwe), ’지혜’(Chokma), ’하느님의 말씀’(dabar Jahwe), ’성령’(ruah) 등의 실재에 대해서 기술이 이루어지는데 이들은 바로 하느님의 직접적 작용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개념들이 ’위격’을 그대로 지칭한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신약에서 증언되는 삼위일체 신비를 지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신약성서가 체계적으로 정립된 ’내재적 삼위일체’ 교리를 명시적으로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바로 하느님의 내밀한 본성의 계시이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신비는 신약성서에서 현시된다고 보아야 한다.  

   신약성서에서 거론되는 ’하느님’은 구약에서 역사하는 하느님으로서 한 아들을 가지고 있으며, 성령을 부여하는 하느님을 뜻하고 있다.  여기서 하느님을 ’아빠’라고 불렀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이 아울러 증언되고 있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현존이며(마태 12:28, 루가 11:20) 구약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반포된 율법을 능가하는 전권(全權)의 소유자이고(마르 2:23-28, 3:1-8 병행구), 더 이상 앞지를 수 없는 하느님의 임재(臨齋)이며(마태 11:25 이하, 요한 10:30), 성령의 충만이다(루가 4:18).  그의 신적 선재성(先在性)이 명백히 증언되고 있다(요한 1:1-18, 필립 2:5-11).  

   그리고 신약성서에서는 성령이 하느님과 조물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우주적이거나 종교적 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성령으로서 하느님 구원의 충만이다(루가 4:18, 디도 3:5 이하, 1고린 12:4).  예수 자신은 성령에 대해서는 드물게 언급하고 있고(마르 3:28-30), 그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한 분이라고 지칭된다(마태 12:31, 루가 12:10).  부활이후에 성령의 출현이 보도되고, 성령이 전 교회공동체 안에서 체험된다는 증언이 이루어진다(사도 2:1-41, 4:31, 8:15-17, 10:44, 19:6).  이 성령은 그리스도 계시와의 일치 안에서 역사한다(로마 8:11, 필립 1:19, 2고린 3:17, 갈라 4:66, 1요한 4:1-3).

   예수 그리스도(성자)와 성령이 하느님의 현존이라고 증언되기는 하지만, 신약성서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성부가 성자와 성령을 파견하고(요한 14:16·20, 15:26, 16:7, 17:3, 갈라 4:6), 성자와 성령은 성부와 각기 고유한 관계를 맺고 있다(마태 11:27, 요한 1:1, 8:38, 10:38, 15:26, 1고린 2:10).  이를테면 구체적 나자렛 예수가 우리를 위한 하느님(성부)의 현존이면서도 성부 자신은 아니다.  성령도 하느님(성부)의 자기 전달이지만, 하느님의 파악 불가능성을 체험케 하며 따라서 성부와의 구별을 체험케 한다.  

   신약성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서의 하느님의 단일성과 구별성을 모호하게 알고 있다.  여기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구원작용이 구별되어 증언되고 있으며, 성자와 성령이 단순히 하느님과 조물 사이의 중간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과 같이 배열되고 있다.   예수 세례 때의 삼위일체 묘사(마르 1:9-11), 부활한 예수의 세례명령 속에 나타난 성삼형식(마태 28:13)과 다른 많은 삼위일체 정식(定式)들(로마 1:3-5, 8:9-11, 2고린 13:13, 요한 14:26, 15:26)은 이러한 초기 교회의 신앙을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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