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자유게시판

연탄 배달원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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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숙 [shwang] 쪽지 캡슐

2003-03-17 ㅣ No.49855

             

            " 엄마 나도 장갑 하나 사 줘, 응? "

            나는 단칸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벌써 한 시간이 넘도록 엄마를 조르고 있었고...

            그런 나에게 엄마는 눈길 한 번 안준 채

            부지런히 구슬들을 실에 꿰고 있었다.

            급기야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내 목적을 달성해 보려고

            울먹울먹하는 목소리로 마구 지껄였다.

            " 씨... 딴 애들은 토끼털 장갑도 있고

            눈 올 때 신는 장화도 있는데...

            난 장갑이 없어서 눈싸움도 못 한단 말이야.

            애들이 나보고 집에 가서...

            씨... 엄마랑 같이 구슬이나 꿰래. "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나왔다.

            엄마의 재빠르던 손놀림이 갑자기 멈춰졌다.

            " 오섭아 누가 그랬어? 누가 너더러 구술이나 꿰랬어? "

            침착하면서도 노여움이 배어 있는 엄마의 목소리에

            주눅이 든 나는 그만 생각에도 없는 말을 계속 내뱉었다.

            " 애들이 그러는데 엄마가 연탄 배달을 하도 많이 해서

            내 얼굴이 까만 거래."

            나는 미닫이문을 꽝 닫고 나와 눈 쌓인 골목길을

            외투도 없이 걸으며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사실 그런 놀림을 받은 적도 없었고...

            힘들게 밤낮 일하시는 엄마를 슬프게 할 생각도 없었다.

            단지 오늘 점심 시간에 눈싸움을 하다가

            장갑이 없어서 손이 조금 시려웠을 뿐이었다.

            나 말고도 장갑 없이 눈싸움 한 아이들은 몇 더 있었다.

            손을 호호 불어 가면서 하면 까짓 별거 아닌데...

            그런데 괜히 엄마를 속상하게 만든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온 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그날 저녁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고 나 역시 그랬다.

            중학교 다니는 형만 겨울방학에 들떠 혼자 떠들어댔다.

            나는 낮에 엄마를 속상하게 한 일을 용서받고 싶었지만

            저녁상 물리고 자꾸만 졸음이 몰려와

            아랫목에서 그만 잠이 들어 버렸다.

            그날 밤 엄마는 내 머리맡에서 밤새 구슬을 꿰는 것 같았다.

            " 오섭아 이거 끼고 학교 가거라. "

            다음 날 아침,

            미적미적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나에게 엄마는

            빨간색 벙어리 장갑 한 켤레를 건네주었다.

            " 엄마... "

            장갑의 손등엔 하얀 털실로 작은 꽃모양까지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장갑을 받아들고

            학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학교를 다 마친 뒤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언덕을 오르는데

            저만치서 연탄을 나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반가워 엄마에게 달려가

            빨간 벙어리 장갑을 낀 손으로 엄마의 목에 매달렸다.

            " 집에 가서 아랫목에 있는 밥 꺼내 먹거라. "

            그러면서 내 얼굴을 만져 주는 엄마의 차가운 손.

            다시 손에 끼우시던....

            엄마의 장갑을 보는 순간 나는 흠칫 놀랐다.

            그 추운 겨울 날씨에 차디찬 연탄을 나르시면서

            엄마는 낡아빠져 여기저기 구멍이 난

            얇은 고무장갑 하나를 끼고 계셨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철이 들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겨울이면 연탄 공장에서 성탄절 선물로

            고무장갑 안에 끼라고 배급해 주는 붉은 털장갑을 풀어

            밤새 내 벙어리 장갑을 짜 주셨다는 것을...

            실이 얇아 이중으로 짜야 했기에

            하룻밤 꼬박 새워야만 했다는 것을....

            그후 내가 지어낸 악의에 찬 말들에 대해

            어머니께 용서를 구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손이 커져 손가락이 장갑 안에서 펴지지 않을 때까지

            겨울마다 그 장갑을 끼고 또 끼었다.

            그리고 결혼할 때

            나는 내 처에게 뜨개질을 잘 하느냐고 물어 보고

            그 이야기를 해 주었었다.

            쌀쌀한 아침 저녁의 기온이

            또다시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려 주던 어느날,

            어디서 사 왔는지 뭉실뭉실한 털실 세 뭉치를

            바구니에 담으며 아내가 넌지시 내게 말했다.

            " 올 겨울에는 어머님께 따뜻한

            털스웨터 한 벌 짜드리려구요. "

            ...................!

             

            + 봄에 읽는 겨울 이야기네요.

            봄비처럼 촉촉한 주님 은혜 받으시는 한 주간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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