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본향을 향하여♬ ~ 34처 (수원교구 수리산성지 1,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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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agnes536] 쪽지 캡슐

2023-04-25 ㅣ No.102480

 

2021.07.08......그냥 떠난 첫번째 순례길

성모신심 미사가 있는 토요일은 성지순례 일정이 없는 날이라

참으로 오랜만에 느지막히 일어나 성당을 다녀나오다

"오늘은 어디로 순례길 떠나는가?" 물어오는 리노할배의 말에

"오늘은 시간이 어중간하고 날씨도 꾸물꾸물 하니 그냥 집 정리나 하고

쉴려고 하는데요"

"그래도 가던 길은 가야지..."라는 할배의 말에

"그랍시더~ 그냥 짧은 코스로 돌아 오지뭐~!" 하며 돌발적으로

길 떠나게 된 안양에 자리한 수리산 성지순례길이다.


점심도시락도, 시원한 얼음커피도,

기운을 북돋아주는 야채과일도 없이 . 게다가 강렬한 햇빛이 쏘아내리는

낮엔 절대적으로 필요한 선글라스도 놓아둔채 냅다 달려간

수리산 성지는....


최양업신부님의 부모님이신 최경환.프란치스코성인, 이성례.마리아 복자

두 분이 그옛날 숨어서 교우촌을 이루어 살다 잡혀간 그 터에 이제는

두분의 묘가 후손들의 모범이 되어 말없이 누워있다.




 

 

집터가 있던 땅엔 고택성당이 커다란 바위동굴을 끼고 고즈녘히 숨죽여 있다.

산기슭을 타고 오르는 십자가의 길엔 두사람의 일생을 함께 묵상하며

걸을수 있는 십사처의 묵상의 글이 함께 어우러져 예수님의 고통속에

찬란한 순교와 순명의 힘이 산길을 오르는 우리네 가슴까지 뭉클하게 해준다.


당신들을 잡으러 온 포졸들에게 먼길 가려면 배고프다고 밥까지 먹여서

함께 걷던 수난의 죽음길도~~

어린것의 숨넘어감을 못견뎌 잠시 돌아선 배교의 후회스런 고통도~~


어머니의 죽음앞에 단칼에 베어 아픔을 줄여달라고 종일 동냥한

엽전 몇푼을 휘광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던 아들들의 마음씀씀들도~~


"똘똘 뭉쳐 절대로 헤어지지말고 사제가 되어 돌아올 형을 기다려야 한다고

다짐케하던 어머니 성례마리아!의 이별의 순간이 떠올라 기막힌 울림이

지금을 살아가고있는 리노할매 '엄마'의 마음을 때려댄다.

세상에~ 어찌할꼬! 어찌할꼬! ㅎㅎㄱ


산길을 내려오는 길엔 이제 폭우라도 퍼부을 듯한 먹장구름이 스산한

바람과 함께 심상찮은 기운으로 몰려온다.

어차피 나왔으니 서울 가까운 하남시에 자리한 구산성지까지 순례하기로

정하고 비 쏟아지기전에 서둘러 또 달려간다.



2023.01.08........두번째 순례길에 찾아온 낭패한 사연들


금요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전 양치질을 하다 헛 칫솔질을 했는지 혓바닥을

찌르고, 입술을 찔러대는 아픔이 있어 살펴보니... 몇달전 흔들리는 앞니에다

철사로 교정해 묶어놓은 철사 틀이 떨어져 덜렁덜렁 양쪽 두칸은 떨어져있고

중간 한개만 겨우 붙어있는 꼴이다.


내일은 토요일 오전근무라도 하는지 안하는지... 모르는 병원 이라면...

천상.. 토욜. 주일.. 이틀을 견뎌내야 하는데... 이 상태로는 씹을 수도 없고..

우선은 찔러대는 방훼꾼때문에... 어쩐다. 어쩐다... ???

별수를 다 써보다... 멸균가아제로 이빨 세개를 둘러싼채 겨우 잠을 청해본다.


낮동안의 쉼없는 움직임 때문에 그래도 곯아떨어진 잠을 자고 일어난 새벽..

아침기도를 마치자마자. 할배를 깨워 새벽 방송미사를 드리고 ..

서둘러 무턱대고 오리무중의 병원을 향해 달려간다.


토요일 10시 성모신심미사엔 할배만 참례하고, 나는 너무너무 아쉽지만

새벽6시 방송미사라도 한걸로 위안으로 라도 삼을 수 밖에 없다.

"오늘도 저희를 이끌어 데불고 가시는 성령님! 진퇴양난의 사건들을 어떻게

쫌 잘 찾아갈수 있도록 도와주이소~ 제발예!"


진료 시간 되기도 전에 도착한 칫과 병동에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접수를 하려는데

토욜엔 교정과는 아무도 출근을 안한다면서 혹시 다른과 선생이라도 할수있는지

확인해준다고 기다리란다.


9시에 진료를 받는다 해도 성당까지 거리는 40분의 거리인 관계로 할배한테 9시 10분까지

기다리다 내가 안나오면 곧장 출발해가서 올해 첫달 봉헌한 가족들 미사를 꼭 참례해야

된다고 챙겨놓고.... 진료실로 들어간다.


다행히 한번 보고 결정하자는 인턴?선생의 말에 감지덕지 안으로 들어가 살펴본 결과

자기는 못할것 같은데 다시 와야 될것같다더라...

"선생니임... 기냥 철사를 붙이만 주믄 되는데예. 덜렁거리지만 않으믄 된다아입니꺼.

꼭 좀 해주이소."


극구 사정을 하자 "붙이지는 못하고 그러면 한개 붙어있는 것까지 그냥 떼버릴수는 있다"는

선처에?... "아이구,,, 그렇게라도 해주이소"

그 와중에서도 시간을 보니... 9시 17분...

"꺄악~ 반석아부지 오덴기요?"

"병원인데...."

"빨리 출발해 가야 미사를 할수있는데... 어서 출발하이소... 빨리"


집게로 ... 호스로 .... 드르륵 드르륵 갈아대는 기구로... 긴장하며 서투른 손으로

집중하며 움직이는 선생의 몸짓으로 족히 30분은 더 걸리리라... 미사는 포기하자..


"다 끝났는데요. 월요일 다시 연락하면 오셔서 제대로 붙이셔야 해요."

(????..... 아니 이리 빨리? 뭐가 우찌 된거고?...)

"아이구~ 고맙습니더. 선생님"

물러나오는 데 또 부르는 의사님.."오늘 진료비는 무료로 하겠습니다"


시간을 보니 9시 22분! 택시를 타려고 승강장을 향해 질주를 해가다가 혹시나싶어

걸어본 할배의 대답 "응. 여기 주차장 출구 바로앞을 통과하고 있어"

주차관리아저씨의 손짓 신호도 무시한채 날아서 할배의 차에 올라타 휴~ 숨을 고른다.


"반석 아부지. 우째 이런 일이 있는기요? 다 포기했던 일을.... 아무일도 없은듯

본래대로 찾아주시다니... 우리 하느님은 진짜로 못말리시는 기라요 ..."


아침 9시 50분에 도착한 우리부부는 2023년 1월의 첫 미사봉헌을 아슬아슬한

곡예와 함께 가족들의/ 이웃들의 /연령들의 한달동안의 삶의 시간들을 맡겨드리고 나서야

깊은 깨달음 속에 안도와 감사의 미사를 올려드리며...

성모신심 미사의 촛불들의 꽃밭에 서계신 우리 어머니의 도움이심을 깨달으며.

오늘도 기적의 하느님을 만난 하루의 시작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다음날 ....

일요일 아침 08시를 출발로 안양 수리산성지를 찾아간다.

어제 그제는 아무일도 없었던 마냥... 평안한 일상의 주일아침이다.

성지를 향해 올라가는 길들이 생전 처음오는 길 같아 둘이는 너도 나도 처음보는 길 같다며

맞장구를 쳐대면서.... 우리 나이엔 다 그런거니까 불안해 하지 말지어다. 웃고 위로한다.



수리산성지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마을을 이루며 살던 곳이다.

이 성지의 대표적인 인물은 성 최경환(프란치스코)이다.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은 본래 청양 다락골 사람이다.


고발을 빙자한 수많은 협잡배들을 피해 최후에 정착한 곳이 바로 수리산 깊은 골짜기였다.

가족과 함께 1838년경에 이주하여 2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았다. 성인은 공소 회장으로 임명되어

교우촌 공동체를 이끄시어 신앙의 터전을 이루었다.

성인은 기해박해로 인해 옥사 순교를 하셨고 이곳에 묻히시어 성인의 순교정신을 고스란히 후대에

물려주시어 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옥중에서 모진 박해에도 굴복하지 않으시고 순교로 신앙을 증거하신 성인의 믿음을 본받을 수 있는

성지로 후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부인인 이성례(마리아) 순교자도 한양 당고개에서 참수 치명하시었고 장남인 최양업(토마스)을

우리나라의 두 번째 사제로 바쳤으며, 한국 천주교회사에 감동과 감사의 울림을 전해주는

하느님 사랑과 믿음의 가족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에는 최경환 성인의 묘역이 있으며 순례자성당과 당시 공소 모습을 재현한 고택성당,

피정을 위한 성례마리아의 집이 있다.



주일 아침 08시에 출발한 성지는 9시30분에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의 순례지이다.

머리위를 지나는 높다란 고가도로 아래 주차장을 보고서야 여기는 알겠네...반색한다.

오늘도 11시 미사시간에 맞추어 내려올 냥으로 최경환. 이성례 부부 순교 가족들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올라 가파른 산길 오른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한처 한처 올라가며 쓰여진 묵상의 글귀들이 성지의 숙연함을 더 떨리는

가슴을 안고 산을 오르게 한다.

아직도 지난번 내린 눈길의 산길은 미끄러운 위험을 안고있지만 십자가의 길을

올라간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청양 다락골 고향땅을 떠나와 강원도 산길 높은곳을 칠흑의 어둠속을

넘어가며 칭얼대며 울어대는 어린것들에게 예수님의 어린시절... 십자가길..

들려주며 참아내어 걸어왔던 피난살이의 힘겨움을 마지막 수리산기슭에 와서야

정리하고 살던 중 마침내 포졸들의 손에 끌려 마을 사람 모두가 잡혀가 순교의

칼날아래 스러져 갔다는 이야기들을 최양업신부 따라살기~ 를 공부하며

들었던가?...


 

십자가길 끝 자락 높은곳에 두분 부모님의 묘가 나란히 누워있고. 묘비명에

두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남편이 함께 있는 곳이라면 어떤 고통과 고난이 와도 참아낼 수 있다던

아내의 마음이 가닿아 이제는 두분의 영혼이 지존하신 우리 하느님 대전에서

안식을 누리고 계시리라 믿는다.



정상 꼭대기의 성모님또한 발아래 온갖 어려움과 고초를 걸어오는 세상속

사람들의 삶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해 주시고 있더라.


미끄러운 산길을 조심조심 내려와 곧 시작될 미사 시간에 맞춰 고택성당을 향한다.

그옛날 최양업신부님의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이 살아던 커다란 바위옆에 지어진

고택성당은 행복하고 가슴아픈 사연을 안고 있는 곳이었기에 더욱 소중하고 정감스런

성전.... 옛날 초가삼간 조상님들이 살던 안방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낮으막한 지붕으로 지어진 곳이라 모두들 앉아서 드려야하는 특이한 성전에선

사제도 ... 주송자도... 복사도 모두 앉아서 미사를 이어간다.

거룩한 독서대의 하얀 보가 절대로 빠짐이없는 경건한 미사의 예절에 소임을

다한듯 친근의 안방 미사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오늘의 강론은 동방박사 들의 이야기이다.

유향과 몰약과 황금의 세박사는 우리가 익히들어 알고있는데

이름이 '알타반'이라는 네 번째 동방박사는 다른 박사들과 함께

아주 큼지막한 청옥과 루비와 진주를 예물로 가지고 길을 떠났다.

그 들은 밝고 큰 별을 따라

도시와 마을을 지나고 황야를 넘고 뜨거운 열기의 사막을 부지런히 건너갔다.

그러던 어느 날 황야의 구덩이 속에서 피흘리며 누워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하였는데,

네 번째 박사는 그 아이를 낙타에 태우고 지나온 마을로 되 돌아갔다.

박사는 마음씨 좋은 부인을 찾아 아이를 잘 키워 달라고 부탁하면서

첫 번째 예물이었던 청옥을 내어 주었다.

그리고 앞서간 박사들을 쫒아가던 중 한 도시에서 장례행렬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구슬피 우는 미망인 여인과 아이들은 돌아가신 분의 빚 때문에

장례가 끝나면 가족 모두 노예로 팔려 나가게 됐다는 사연을 알게 되었다.

이에 박사는 구세주의 예물인 루비를 여인에게 내주며 빚을 갚고 살도록 해 주었다.

네번째 동방박사는 태어날 구세주를 경배할 예물을 써버린 불경을 괴로워하며

앞서간 박사들과 별을 찾아 헤메였다.

그러던 중 전쟁이 일어 난 한 지역에서 군인들이 마을 사람 모두를 처형하려는 장면을 보게되자

박사는 마지막 예물이었던 진주를 군인들에게 주면서 마을 사람들이 생명을 구해주었다.

이제는 예물도 없고 별빛도 잃어 앞서간 동방박사들을 찾아 빈털털이로 헤메이면서도

여러 저기 힘들고 어려운 많은 이들을 만나면 서로 함께 하면서 도와 주었다.

결국 가난한 가장을 위하여 대신 노예선에 들어가 노를 저으면서도 위로를 주었으며

마음 속에 커다란 별을 찾아 올바른 길을 간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세월이 어느덧 30여년이 흘렀다.

네번째 동방박사는 어느 도시 언덕에서 다시 커다란 별빛을 보게되었다.

그렇게 찾아 헤메이던 별이 가운데 십자가 위에 매달려 있는 분에게서 빛나고 있었다.

순간 네 번째 박사는 감격에 젖어 십자가 아래서 무릎을 꿇었다.

이 분을 위해 가져온 것이 없다. 빈손이다. 빈손을 주님 앞에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십자가에서 떨어지는 고귀한 붉은 피가 세 방울 떨어졌다.

그 핏방울은 어느 보석보다도 더 빛났다.그리고 이런 소리가 들렸다.

착하고 복 있는 자여, 그대는 나를 너무 오랫동안 찾아 헤매었구나.

그대는 내가 배고팠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라했을 때 마시게 하였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주었다.

진정으로 그대에게 말하는데 가장 작은 이에게 한 일이바로 내게 한 일이다.

이렇게 구약시대부터 기다리던 구세주 그리스도의 탄생을 맞이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이민족인 동방의 박사들과 가난한 목동들이었다.

그리고 동방박사 세 분의 영광 뒤에는 구원을 받은 네 번째 동방박사가 있었듯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 보다는 내실있는 자신의 삶이 더 소중한 것 같기도 하다.는

사제의 강론은 지난 40여년의 나의 삶을 조명해 보는 좋은 묵상거리였다.



철딱서니없고, 욕심많고 이기적이었던 젊은날의 시간들을 끌어주시고 또 때로는

회초리로 사정없이 때려주시고, 쓰다듬어 주시며 넘어오게하신 기나긴 광야의 시간들속에서

이제 나는 다섯번째. 여섯번째의 동방박사로 살아내어 부활의 주님을 찾아 가야겠다.


따끈한 아랫목 기운때문에 여늬깨 같으면 비몽사몽 마구 졸아댔을 강론시간에

동방의 네박사들 손에 놓인 최고의 보물 생각에 마음도 눈도 빤짝 빤짝~~!!

기똥찬 리. 노. 할. 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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