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Just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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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식 [goodactor] 쪽지 캡슐

2023-11-09 ㅣ No.229656

respondence duty

correspondence duty 

 

정당한 권위(권한)

대응 의무, 일치(조화) 의무

 

하느님,

하느님은 진리의 근원이시며 그르침이 없으시므로,

카톨릭교회는 신앙의 덕을 그렇게 정의하며 지성을 가진 생명체로서 사람이 그 덕이 없이는 스스로의 삶에 잘 살아있을 수 없음을 기도로 고백한다
그르침이 없다는 것은 틀림이 없고 잘못이 있을 수도 없는 포괄적으로 모든 것이 정당하고 합당하고 타당하다고 그 성격을, 정체를 100%, 완전히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 가운데 누가 그럴 수 있을까
사람들의 악은 대부분 그르침이 많은 본성에서부터 시작된다
때론 판단도, 선택도, 의도도, 계획도, 이해도, 만족도, 실천도, 행위도 그르침이 많을 때가 많다
그런 그르침은 악화를 조장한다
자멸과 자폭을 일으킬 만큼 스스로를 옥죄고 속박할 수도 있으며, 이웃이나 다른 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와 상처를 줄 수도 있으며, 사회에 불의와 부정과 악덕을 만연하게 할 수도 있고 세상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폭력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그 모든 악화는 바로 그르침이 많은 인간들의 본성과 성격에서부터 발화되고 생성되며 확대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특히나 인간들의 삶을 둘러싼 인본주의적인 모든 것은 인간들의 모습과 현주소를 뚜렷이 반영하고 있는 것들이다

카톨릭 신자들이 성경을 보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이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하느님 자신을 알도록 역사 속에서 계시해 왔다
그러한 계시로서의 진리가 구전되고 기록되어 씌어진 책이 바로 성경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스스로나 무엇을 위해 별 다른 특별함을 찾는다는 건 무지이고 오만이다
성경에서는 오로지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
하느님을 알려고 해야 한다
그래야 성경이 씌여진 의의를 삶에서 이룰 수 있다
그렇게 하느님을 알아야 모든 것을 진정으로 다 알 수 있고 모든 것을 제대로 다 이해할 수가 있다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왔고, 하느님은 모든 것을 만들고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런 진리를 가르친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많은 행동을 하시는 분으로, 그런 신으로 묘사된다
그 많은 행동에는 하느님의 의지가 담겨 있고, 하느님이 의도하시기도 하며, 하느님의 본질과 성격으로부터 그런 의지와 의도 또한 우러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알아야 할 것의 첫 번째는 바로 하느님의 본질과 성격이다
쉬운 말로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냐는 것이며 같은 말로 어떤 신이며, 어떤 존재자이냐 라는 것이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하느님을 마치 탐구의 대상이나, 의문의 타겟이나, 모든 현실태의 실마리와 단서로 여기고 찾으려는 가운데 그렇게 파고들고 파악하려고 해서는 영원히 알 수 없는 모든 문제시의 근본으로 남게 만든다
하느님은 오로지 하느님 스스로가 내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신이다 하고 스스로를 계시한 모든 것으로부터만 알 수가 있다
하느님의 본질과 성격이 거룩하고 선하고 의로우며, 선하신 분은 하느님 아버지 한 분 뿐이라는 것은 어째서 하느님은 그르침이 없는지, 그 모든 것을 알라고 하는 신성한 인식과 이해이다
그 뿌리의식이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신관과 신학에 없다면 성경에서 일어나고 벌어지는 모든 역사적 사건들 속에 하느님의 행동과 역사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성경에는 세상의 많은 악화와 인간들의 많은 악들도 나와 있으며 그런 것들은 하느님과 실체적으로도, 실제로도 대립되고 충돌하는 그 이해가 상충되는 모든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하느님이 단지 그런 것들만을 다루고 교통정리하려는 존재자라면 한낱 사법부와 사법기관의 헤드로서 하느님을 그런 경찰 역할이나 하는 존재로만 여긴다면 참으로 조악하고 남루하며 비천한 하느님상을 만들고 그렇게 한정된 관점으로 모든 것을 잘못 바라보는 그 바탕에서 모든 것을 그르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그런 이해도를 가지고서는 하느님의 정의와 세상에서도 역사되는 그 모든 것의 정의에 대해서도 오만 편견과 오해가 점철된 그 확장판을 만들고 그 도가니와 구렁텅이에 빠져 버리게 된다
진정으로 하느님다운, 거룩하고 선하며 의롭다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그 본질과 성격을 알아 볼 수 있도록 하는 하느님의 실체와 정체를 드러내는 하느님의 의지와 의도가 담긴 행동과 역사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 눈과 귀는, 지성은 그래서 참으로 복된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만든 창조주이시다
하느님을 알아야 하는 첫번째 신성한 인식은 모든 것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이시다
그 진리는 곧 모든 것은 하느님이 만든 피조물이라는 진실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 첫번째 진실은 하느님의 행동과 역사를 통해 하느님을 알아 볼 수 있는 이해의 뿌리이다
어떻게 보면 그런 관계가 있는, 바로 관계성이라는 성격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있게 되는, 하느님과의 관계성은 하느님의 행동과 역사가 모든 피조물들에게 미치는 첫째 원리가 되고 윈천이 되는 바탕이 된다
나와 관계되어 있는 것들에 대한 행동과 역사는 그런 관계성이 맺어지고 실현되는 모든 것들에게는 그 입장이 형성되고 그 입장에서 대하고 응하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삶의 성격이 조성되고 조장된다
대체로 사람들의 의식과 감정이 미치는 범주는 그런 영역과 차원에 두어진 상태와 현상을 기반으로 한다
하느님은 자신의 모든 피조물들에 대해 그렇게 하는데, 그 전부를 책임이나 의무라는 말만으로는 하느님다운 모든 것을 이해하도록 하기에는 부족하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많은데, 하느님처럼 스스로의 본질과 성격에서 우러나와 모든 것을 다하는 차원의 존재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그렇게 삶의 많은 부분들이 그 책임과 의무로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하느님은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사랑하는데, 사람들은 항상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실천해야할 강령과 의무조항처럼, 계약시의 전제와 조건들처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에게는 사랑한다는 것이 딜레마와 모순이 죌 때도 많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두고 많은 것들이 대립되고 충돌하는 것은 사람들의 악과 악화를 항상 드러내어 보여주며 모든 것 속에서 나타내 준다
하느님은 전능하시기에 노아 때처럼 온 인류를 수장해 몰살시키실 수도 있다
왜 그래야 되는데, 왜 그렇게 했어라는 말을 감히 하느님께 할 수는 없다
하느님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다
노아 때의 하느님의 행동과 역사는 그 이후로 그렇게도 하실 수 있는 분인데라는 하느님관을 지니게 하며 지금은 그렇게 하시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인식하도록 한다
세상의 권력자나 지배자들도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얼마든지 할 수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나찌나 캄보디아의 폴포트, 공산당의 만행을 역사책에서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정규 교육과정이 있는 곳에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 그들이 정의롭지 않으며 폭력과 억압을 일삼고 사람들을 기만하고 조종하며 대중들을 선동하고 획책해 자신들의 야망(욕망)과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는 사실도 뚜렷하다
그렇지만 언제나 정도의 차이만 있고 보다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 하는 경우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들이 사는 어디에서나, 이 지구상의 어디에도 그런 악과 악화가 없는 곳은 없다
하느님은 그런 사람들처럼 굴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그런 하느님이 계시되어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상반된 입장이나 대립구도 속에서 하느님이 행동하고 역사하는 하느님 개입의 국면에서도, 아니면 하느님과 거의 반대될 만큼의 인간상이나 세상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부류와 무리들에 대해서는 하느님이 노아 때처럼, 이집트의 군대에게 하신 것처럼 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들이 하는 마냥 자신들의 욕망과 욕구에 기인하는 이해관계 속에서 추구하고 책동하는 일이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 행해지고 역사되는 것이다
예수는 모든 일의 의미와 역사는 하느님에게 있다고 분명히 가르친다
사함들 눈에는 그저 슬프고 비통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보이고 그 슬픔과 고통을 유발한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로 여겨질 지라도, 탑에 깔려 죽은 우발적 사고와 누군가들의 칼에 의해 떼죽음을 당하고 비명횡사한 인간들조차 단 한 마디로 그 모든 진실을 알도록 가르쳐 준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처럼 멸망할 것이다"
정말 인간들에게 있어, 그리고, 이 세상에 죽음과 멸망이 있다는 것은 인간들이 꾸밀 수 없는 일이고 그런 차원의, 그런 성격의 일도 아니다
인간들 입장에서는 그저 자신들의 의지와 의도, 욕망과 욕구, 서로 간의 이해관계 속에서 누군가들을 죽이고, 누군가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누군가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누군가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들이 서로 간에 벌어지는 것이지만 이 모두에 대한 정의는 언제나, 살아서나 죽어서나 명백하다
그 정의를 알아 보도록 성경은 또한 가르치는데 그런 정의가 바로 하느님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역사 속에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야 할 모든 것들의 삶의 대명제가 있다
그렇게 이집트의 군대도 홍해바다 속에 수장되고 몰살되었던 것이다
전사자들에 대한 슬픔과 고통이 이집트인들이라고 해서 없을까
선민들이 아니라서 그런 인간적 의식과 감정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일까
선민 우선주의이고, 하느님의 역사 관철주의일까
아니다, 구약을 보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정의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완전한 공정이 있고, 그 저울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하는 진실이 있다
하느님에 의해서도, 누군가에 의해서도,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나 감정에 의해서도 그런 진실은 흐트러지지 않고 망각되지 않으며 잘못 투사되지 않는다
하느님은 자신의 모든 피조물들과 그 피조물들의 모든 일에 있어서, 그 피조물들과 관련된 모든 것에 있어서도 언제나 어디에서나 정의로우시며 정의만을 행하고 정의만을 이룬다
그렇게 하느님은 자신의 모든 것과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들과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정당한 권위(권한)와 그 정당의무를 자신의 정의와 공의 속에서 지니고 변함없이 행동하고 역사하며 책임진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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