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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첫화면에 실린 일산성당 화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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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헤레나 [heanna] 쪽지 캡슐

2004-05-07 ㅣ No.66792

www.ohmynews.com

으로 가시면 사진과 함께 원문 기사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소방대원, 그 이름에 찬사를 보내며

일산성당 화재 진압한 고양소방서 소방대원들의 헌신과 노력

 

 강효정(rain1717) 기자     

 

 

한 밤의 갑작스런 불길

 

언제나 그렇듯이 재난은 예고없이 찾아왔다. 지난 5월 1일 새벽 1시 천주교 일산성당(고양시 일산동 소재)내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는 재활용품매장 ’평화바람’(구 나눔꽃)에서 소리없이 불길이 치솟았다.

 

다행히 성당 관리인 이병산(64)씨가 일찍 발견했고 신고 후 10여 분만에 고양소방서 소방대원들이 출동했다. 그러나 손때 묻은 옷가지며 책이 가득한 재활용품매장에서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화재소식을 듣고 달려온 ’민들레’(평화바람 자원봉사자 모임) 식구들은 "자식처럼 돌보고 키운 곳인데"라며 눈물을 쏟고 발을 동동 굴렀다. "많은 사람들이 아끼던 소중한 물건들을 가져와 주었는데 이렇게 다 타버리면 어떡해"라고 안타까움에 가슴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연과 나눔의 이야기가 가득한 평화바람은 30분 만에 잿더미로 변했고 불길은 급기야 바로 옆의 성당과 유기농매장 ’하늘 땅 물 벗’으로 옮겨 붙었다.

 

 

목숨을 건 5시간의 아름다운 전투

 

평화바람과 잇대어 있는 수녀원으로 불길이 번지지 않을까 모두 노심초사하고 있는 사이 다행히 수녀원 쪽 불길은 잡혔지만 어느새 유기농매장과 성당 2층도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성당으로 옮겨 붙은 불길은 맞은편 가로등 커버를 녹일 만큼 열기를 내뿜으며 치솟아 급기야 성당 천장으로까지 옮겨붙었다.

 

고가사다리차를 동원해 물을 뿜어 불길을 잡으려 했지만 조각 조각 이어댄 동판 지붕과 천장 사이에는 조금의 틈새도 없었고 소방대원들은 무거운 장비를 들고 로프에 몸을 의지해 지붕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경사가 급한 10미터 높이의 동판 지붕 위를 기어오르는 소방대원들 바로 아래에는 뜨거운 화마가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이 장면은 보는 이들을 모두 그 자리에서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일산성당 신자 김병언(52)씨는 " 아슬아슬해서 도저히 못보겠어요. 저 지붕이 다 동판이라는데 밑에서는 불이 나고 있으니 얼마나 뜨겁겠어요"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무리 걱정이 돼도 이렇게 바라만 보는 거지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으니 더 안타까워요"라는 유기농매장 ’하늘 땅 물 벗’ 신현주(42)씨의 이야기는 안타까움에 손을 모으고 지붕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의 심정이었다.

 

소방대원들은 동료가 잡고 있는 로프 하나에 매달려 손도끼로 불길이 치솟는 지붕을 하나 하나 깨고 뜯어내기 시작했다. 손도끼로 지붕을 뜯어내고 소방호스로 물 뿌리기를 수십 번. 어느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고 불길은 잡혔다.

 

목숨을 건 5시간 헌신적인 전투 덕분에 천장 전체로 불길이 옮겨 붙었지만 일산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일산성당은 본래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지킬 수 있었다.

 

 

 

또 화마와 치열하게 싸운 전투에는 여성 소방대원도 함께 하고 있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남자들도 선뜻 나서기 힘든 화재 현장에서 무거운 방화복을 입고 용감하게 싸우는 여성 소방대원의 모습을 보고 주부 이경민(36)씨는 "우리 딸아이가 여자라서 소방대원이 될 수 없다고 하기에 여자도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진짜 여자 소방대원을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라고 말하며 불이 꺼진 후 잠시 쉬고 있는 여자 소방대원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긴장의 하룻밤을 보낸 사람들은 불이 꺼진 것에 안도하며 전기가 모두 끊긴 어두운 성당 로비로 들어갔다. 어둡고 어수선한 로비 한 편에서 불길이 잡히고서야 겨우 한숨을 돌린 소방대원들은 거뭇거뭇한 얼굴을 숙이고 겨우 사발면 하나로 힘겨운 간밤 전투 끝의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휴식도 잠시 아직도 뜨거운 화재 현장을 돌아보며 화재의 원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고양소방서 소방대원들은 날이 밝아올 무렵에야 또 다른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조용히 지친 발걸음을 돌렸다.

 

 

 

 

일산성당 신자들은 고양소방서 소방대원들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으로 약간의 정성을 모아 전달하려고 했다. 하지만 소방대장(고양소방서 김진용 대장)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극구 사양한 채 환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은 채 마땅하지 않은 욕심을 채우느라 서로 헐뜯고 싸우고 있는데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며 묵묵히 수행하는 소방대원들의 모습은 누가 우리 사회의 진정한 희망의 씨앗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모습이었다.

 

맹제영 신부(일산성당 주임신부)는 "언제나 그렇듯이 정말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게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사회에 대한 헌신과 이웃을 위한 사명감으로 싸우는 소방대원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소중한 버팀목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하며 소방대원들의 소중한 노고를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함을 거듭 강조했다.

 

몇 년 전 한 사람의 방화로 일어난 화재를 진압하다가 소방대원이 사망하는 비극적 사고가 있었다. 그 때뿐만 아니라 철모르는 물놀이객을 구하다가, 불길 속에서 아이를 구하다가, 무책임한 지도층으로 인한 대형참사의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떠들썩하게 소방대원들의 희생을 이야기하고, 언론은 그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과연 그런 목소리 만큼 소방대원들을 합당하게 대우하기 위한 어떤 개선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아무도 하려하지 않는 일을, 그러나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일을 오로지 소방대원 개인의 희생과 사명감에만 맡겨둔 것은 아닌지 다함께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고양소방서 소방대원들께 드리는 편지  

 

 

주님의 평화가 모든 소방대원 분들께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먼저 지난번 화재로 많은 수고를 하신 고양 소방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깊은 밤 누구도 예기치 못한 사이에 일어난 이번 화재는 일산에서 가장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일산 성당이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될 뻔한 사건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소방차가 늦게 왔더라면, 성전으로 옮겨 붙은 불이 진화되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릅니다.

 

모두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를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때 소방대원들께서는 온몸으로 우리의 소중한 성당을 지켜주셨습니다. 목숨을 걸고 높은 지붕 꼭대기로 올라가 뜨거운 화마와 맞서 싸우며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의 값진 희생과 봉사로 우리 성당은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보여주신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일산 성당의 모든 가족들은 빠른 시일 내에 아름다운 성당이 복구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며 더욱 하나로 일치하는 모습으로 여러분의 작은 보람이 되겠습니다.

 

몇 해 전 화재 진압 도중 사망한 어느 소방대원의 희생으로 사회가 떠들썩했던 사건이 떠오릅니다. 그 때는 다들 소방대원들의 희생과 노고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어느새 많이들 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정말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게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소중한 재산과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내어놓는 여러분의 삶은 우리 사회를 소리 없이 지켜가는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입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소방대원 모든 분들께 주님의 축복을 기원하며 항상 안전하시기를, 여러분의 힘든 소방 업무가 보람찬 열매를 맺기를 기원합니다.

 

일산성당 공동체 우리 모두는 소방대원 모든 분의 댁내에 주님의 평화와 기쁨이 늘 함께 하시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5월 희생과 봉사의 삶에 감사드리며

천주교 일산 성당 주임신부 맹제영 로마노 드림   

 

 

 

 

 

 고양소방서 소방대원들의 답장  

 

 

로마노 신부님께 드립니다.

 

신부님과 우리 일산성당에 주님의 사랑이 언제나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먼저 지난번 화재로 얼마나 많이 놀라셨습니까? 화재는 너무나도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가는지라 화재 발생 당시 성당측의 침착한 초기대응과 신속한 119신고가 불행중 다행으로 화재의 피해를 최소화할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신부님과 여러 형제 자매님들의 혼연일체로 하루빨리 피해가 복구되어 오랜 전통과 역사의 우리 일산성당이 제모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신부님께서 저희 소방서에 보내주신 감사 및 격려의 글을 읽고 당연히 저희들이 해야할 임무를 수행한 것 뿐인데 그리도 격려를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앞으로도 고양소방서는 각종 재난 재해로부터 우리 고양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끝으로 신부님과 여러 형제 자매님들의 앞날에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고양소방서 직원일동   

 

 

 

 

 

2004/05/07 오후 4:52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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