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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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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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5-07-12 ㅣ No.84994

 

 얼마전에 그간 타고 다니던 차를 처분했다.

 

비록 삐까뻔쩍 좋은 차는 아니었지만 그간 유용하게 잘 써왔는데 처분하고 나니, 당장 곳곳에 아쉬운 일이 생긴다.

 

가끔 주말이면 본가에 맡긴 아들녀석을 데리고 오고 또 다시 데려다 주곤 했는데 막상 차를 처분하고나니, 이 아들녀석 데리고 오는데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한번은 혼자 아들 녀석을 다시 본가에 데려줄때다.

 

아내가 보강을 한다며 휴일에도 수업을해서 할 수 없이 혼자 아이를 둘러안고 가는데 달랑 녀석만 안고 가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깨엔 휴대용 유모차를 접어 걸치고 한 손엔 녀석의 기저귀며 분유통등이 든 가방을 들고 또 품엔 아이를 안고 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가는데 한마디로 장난이 아니었다.

 

옛날 어머니들은 머리에 보따리 이고 등 뒤엔 막내녀석 들쳐업고 한 손엔 조금 큰 녀석 붙잡고 맏이쯤 되어 보이는 녀석은 어머니 치마자락 붙잡고 졸졸 따라 다녔던 풍경이 언뜻 생각나는데...아! 그때 엄마들 정말 대단했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그러고도 어디든 잘 다녔다.

 

기차타고 시골도 다녀왔고 그 상태로 시장에 나가 장도 봐왔다.

 

아마 지금 엄마들 그렇게하고 다니라하면 안색부터 하얗게 질리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옛날 어머니들 즉 여성들 정말 정말 대단했다!

 

또 한가지는 요근래는 버스도 자주타고 다니고 지하철도 자주 타고 다닌다.

 

차가 있었을땐 소위 교통카드란 것이 나는 없었다.

 

별로 대중교통 탈 일이 많지 않았기에 굳이 장만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이 교통카드를 구매해서 소지하고 다닌다.

 

만원어치 채우고 버스 몇번만 타면 금새 바닥이 나곤 하는데 정말 요즘 돈 만원짜리 가치 없어도 너무 없구나함을 느낀다.

 

체감으로 느끼는 승차회수는 불과 서,너번 밖에 안탄것 같은데 어느 새 단말기에 갖다대면 다음 승차시에 보충을 해달라는 보이지 않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내가 아무리 여성을 좋아한다해도 이 여자 목소리는 정말로 듣기 싫다.

 

그리고 서울시 버스교통체계가 완전히 뒤바뀌고 난 후에는 도대체 어떤 버스가 어디를 가는지 또, 어디를 갈땐 몇번을 타서 어떻게 가야하는지 졸지에 길눈이 까막눈이 되어 버렸다.

 

두자리 버스 번호 숫자도 겨우 외는놈이 요즘은 4자리나 되는 버스 번호 외는 것도 일이 되어 버렸다.

 

내릴때도 단말기에 찍어야하는데 이놈이 가끔 말썽부려 카드를 다시 대주라는 아까 그 듣기싫은 목소리의 여성이 자꾸 나무란다.

 

그럼 환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 800원 아끼느라 다시 대는데도 또다시 자꾸 다시 대란다.

 

나 하나 때문에 버스는 출발도 못하고 버스 안에 있는 다른 승객들은 자꾸 나한테 눈총을 주는 것 같고 점점 민망해져서 얼굴이 벌개지는데도 이 주책맞은 여자는 자꾸 카드를 다시 대라고만 하니, 내가 내 풀에 못이겨 "에이"그냥 내리고 만다.

 

그럼 다음 버스탈때 공짜로 탈 수도 있는데 그렇지 못하곤 한다.

 

이제 대중교통 요금도 사람대 기계가 서로 지불하고 수납받는 시대가 되어버렸는데 기계야 원래 감정이 없는지라 사람대 기계가 이런식으로 대립하면 결국 사람이 지고만다.

 

그래서 문득 이젠 한참 과거가 되어버린 버스 안내양누나들이 그립기도 하다.

 

학창시절 이 누나들과 우린 서로 적대적이 되어 눈치보고 감시하는 원수 아닌 원수지간이 종종 되곤 했었다.

 

회수권 반 찢어 잘 접어 내릴때 스윽 내밀고는 안내양누나가 그거 펴보기전에 냅따 가방을 들고 뛰기 시작한다.

 

그래도 회수권 반 내는 놈은 조금 양심이 있는 놈들이고 친구들 몇명이 타고 가면 내릴때 뒤요! 뒤요! 하며 하나씩 내리다가 맨 뒷놈이 냅따 버스에서 후다닥 뛰어내리며 "야 튀어!!!"하면 가방 옆구리에 끼고 모자 벗어 한 손에 들고는 후다다닥~도망들을 친다.

 

이것이 당시 소위 말하는 삥차타는 방법의 하나였다.

 

간혹 그러면 뒤에서 안내양 누나의 발악하는 소리도 들리곤 했다.

 

"야 이 개X끼들아!"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그렇게해서 빵값을 벌기도 했었다.

 

안내양 누나들과 우린 그렇게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였지만 그래도 멱살잡이를 할만큼 원수지간은 아니었다.

 

학교에 다니며 늘 같은 버스를 타다보면 면식이 있는 안내양 누나도 만난다.

 

어저께 삥차를 탔어도 어저께 차비 내놓으라는 누나는 한명도 없었다.

 

하지만 요주의 인물로 찍혀 늘 감시의 대상이 되곤 했었다.

 

또 안내양 누나들은 "다음은 어디 내리실 분 내리실 분 없어요?" 방송 멘트도 대신했다.

 

손바닥으로 차 벽을 탕! 탕! 두번 치면 그냥 통과하란 신호고 한번 탕! 치면 내릴 손님 있으니 이번 정거장에서 차를 세우라는 신호이다.

 

한번 탕! 치면 장난끼로 뒤에 앉아서 탕! 하고 리듬을 맞춰주면 두번 치는 꼴이 되어 그냥 통과할뻔도 하기도 한다.

 

그러면 "까불래?"하고 짜리기도 하고 우린 그것이 재미있어 친구들끼리 큭큭 되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 시내버스 종점이 있었는데 그 종점 바로 옆에 독서실이 있었다.

 

이 독서실은 일년내내 학생들이 만원이었다.

 

면학 분위기가 좋아서 만원이 아니다.

 

그 독서실 담장과 건물 사이에 LP가스통 겨우 하나 들어갈만한 좁은 공간이 있었는데 야밤에 이 좁은 공간사이에 까까머리 학생녀석들이 수도 없이 쪼그려 앉아 담장 밖을 숨죽여 가며 빼꼼 내다본다.

 

그 담장 바로 앞에 버스 안내양들 기숙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속옷 차림으로 왔다갔다하는 모습 본다고 그 호기심 많은 녀석들이 집에다는 밤새 공부하겠노라 독서실비 타와서 한다는 짓이 좁은 공간에서 쭈그려 앉아 담장 밖 내다보는 거사(?)를 치루느라 그 독서실은 늘 만원이었는데 그나마 3학년들이나 그 짓거리하지 감히 1,2학년들이 그랬다가 3학년들한테 걸리는 날엔 바로 그날이 제삿날이었다.

 

아마도 독서실 주인도 이 사실을 알았지만 장사속셈으로 단속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좀 짓궂긴 했었어도 학생들과 안내양누나들은 이렇게 뗄래야 뗄 수 없는 원수이자 친구들이었던 추억을 요즘 버스에서 기계와 씨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떠올리곤 한다.

 

아! 그때 그 시절 그 녀석들 지금은 다 뭐하고 지내나? 또 그 당시 우리에게 삥차 많이 당했던, "오라이~!"외쳐댔던 안내양 누나들 요즘은 어디서 뭐하세요?

 

한번 뵙고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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