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자유게시판

안녕하십니까?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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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욱 [pm707] 쪽지 캡슐

2008-08-29 ㅣ No.123780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이곳에 글을 씁니다. 형제자매님들 모두 무고하신지요?

5일간의 단식을 그제 저녁에 끝내고 교구청 마당에서 나왔습니다.

이 단식을 끝내고는 제 개인의 촛불 한 장이 마감된 기분이 들어 그 동안 제 시각에서의 촛불 정리를 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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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촛불이 켜지던 지난 5월부터 저의 평일 저녁과 주말의 사생활은 촛불과 함께였습니다.

퇴근 후 발길은 청계광장과 시청 앞 그리고 광화문과 보신각을 향하였으나 현 정권의 YTN 사장 강제선임에 이어 KBS에 대한 노골적 장악시도가 엿보인 어느 날부터 평일의 발길은 KBS로 주말은 시청 앞 등지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

촛불이 거세게 불타던 6월 어느 날 끝내 이명박씨는 대국민 사과를 하였습니다. 촛불시민들은 이제 대통령이 사과도 했으니 정권이 국민의 요구에 부응할 거라는 기대를 갖고 적지 않은 수가 대열에서 빠져 다시 자기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정권의 말이 수상하게 다시 번복되던 지난 6월 하순 어느 날부터 별안간 경찰의 진압 강도가 그 이전과 판이하게 달리 아주 폭력적이고 공세적으로 변하면서 급기야 수많은 시민들이 다치고 연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촛불시민은 당황하고 경악 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내부에 강경론이 득세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무자비한 경찰의 진압에 속수무책 당할 수만은 없다며 이제 손에 뭐든지 들고 나서야 한다는 자구책의 강경 대응 목소리가 넓게 공감을 얻어 갔고 이에 곧 폭발할 것 같은 긴장상태가 촛불시민 전반을 지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일촉즉발의 그 시기에 정의구현사제단이 나섰던 것입니다. 대충돌의 시작 직전에 시청 앞 광장에 미사가 거행되었습니다. 외부로의 발산 직전의 폭력투쟁은 경건한 미사 속에 순식간에 정리되며 다시 예전의 진정된 상황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촛불은 정의구현사제단이 나선 이상 상황의 역전은 시작됐다며 환호와 기대 속에 더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촛불의 기대를 깨트리고 정의구현사제단은 어느 날 촛불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다리던 촛불시민의 대열은 급격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적지 않은 시민들이 좌절하고, 안 나서니만 못했다며 정구사 신부님들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기도 하였고, 끝내 촛불을 내려놓은 이도 적지 않은 급속한 침체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남은 이들은 이를 악물고 촛불을 굳게 잡으며 다시 거리로 나섰지만 돌아오는 것은 경찰의 방망이와 방패찍기 그리고 연행이었습니다.

*

시청 등지의 거리시위 현장에서 무자비한 연행이 수 없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다소 평온하던 KBS 앞에서도 경찰의 압력이 가중되더니 드디어 체포가 시작되고 어느 날엔 여의도 공원에 있는 화장실을 가다 연행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이곳저곳 할 곳 없이 집회, 시위 중인 촛불 전반에 깊은 불안이 덮쳤습니다.

암울하고 답답하던 그 때 일부 촛불은 8.15 행동단을 결성하여 지난 8월 15일, 우리 한국천주교회에서 더욱 기리는 성모몽소승천대축일의 저녁에 한국은행 앞에선 ‘대통령님 대화해요!’라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대통령을 향한 호소의 연좌시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 끝내 파란색소 물대포를 앞세운 무자비한 진압대에 의해 송두리 연행되고 뒤에 같이 연대하던 많은 시민들도 함께 끌려갔으며 놀라 쫒긴 시위대는 명동, 종로에 산개해 있다 종내 명동성당 언덕바지에서 밤을 새우며 현 정권을 성토하다 그곳에서도 또 연행을 당하며 그 날의 시위를 마감했었습니다.

저도 그 일원으로 참가 중 새벽이 되기 전에 KBS 앞으로 돌아와서는 너무도 안타깝고 슬픈, 시민이 가진 것이라고는 촛불과 울분 그리고 조국에 대한 염려와 사랑뿐인바 비폭력으로 맞서 저 무지막지한 정권의 탄압에 대항해 오고 있으나 결과는 그저 수많은 연행과 장기구속 뿐이라는 것에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이 촛불 와중에 대통령의 친인척과 집권여당 고위층의 비리가 불거졌음에도 저들은 유야무야 수사조차 뭉개지는데 반해 인터넷에서조차 네티즌을 향한 시퍼런 검거선풍이 또한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추산컨대 지난주까지 연행자가 무려 1600명 이상이며 그중 장기구속자가 29명이나 됩니다. 화염병도 쇠파이프도 없이 단지 현 정권을 반대하는 촛불을 들었다는 것 하나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 갔던 것입니다.)

*

8월 16일 새벽, KBS 앞에 저와 같이 있던 시민들이 깊은 시름과 무력감 속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을 하다 이런 절박한 상황과 촛불시민들의 심정을 종교계 지도자들에게 호소하자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아울러 종교지도자들이 이 불의와 폭력이 난무하는 작금의 시기에 역할을 해 주실 것을 또한 간절히 호소하여 이 난국의 해결을 기대하자는 의견이 개진되었습니다.

그래 우선 천주교에 기대고자 추기경님께 면담요청서를 작성하여 등기로 드렸고 기다리다 못한 급한 마음에 지난 주 토요일 교구청 앞에서 단식을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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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주일미사나 간신히 드리던 날치기 신자였는데 거기에 머물며 아침 점심 저녁으로 울리는 삼종에 부득이(?) 그에 맞춰 삼종기도를 드리면서 저의 부족한 기도생활을 많이도 깨닫기도 하였습니다.

그 안에서 사실 기도를 열심히 하려 했지만 분심이 너무 들어 잘 되지 않아 이런 부족한 정성으로 과연 추기경님 면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질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그 나마도 어여삐 여기셨는지, 아니 같이 하던 다른 단식자들의 간절함을 높이 사셨는지 기쁘게도 추기경님의 면담이 성사되었습니다. 

면담에서는 인원이 제한되어 저는 빠지고 다른 분 중 세 분들이 대표해 들어갔습니다. 면담시간이 꽤 길어 졌는데 드디어 면담이 완료되어 저희 내부에 발표가 있었습니다.

일반적 내용은 다른 분이 아고라에 올려놓았고 또 그것을 아래 ‘김순자’ 자매님이 이곳에 퍼 놓으셨으니 그것을 참조하시면 되겠고 저는 다른 뒤 얘기를 드립니다.

사실 면담이 성사되기 전까지 기다리면서 추기경님과 교회에 대한 원망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솔직한 표현으로 원망 차원을 넘어 불신의 마음에다 험담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죄송하고 불찰인지를 면담 결과를 듣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추기경님을 만나 뵈고서야 면담요청서가 추기경님께 보고되지 않았으며 추기경님이 그로 인해 저희의 상황을 이해 못하셨고 그저 당신을 만나러 무작정 단식하며 기다리시는 줄 아시고는 마음이 아프셔서 며칠 음식을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계셨답니다. ㅜ.ㅡ

대화 도중 추기경님은 한겨레신문부터 조선일보까지 두루 구독을 하고 계셨는데 그러나 작금의 실상이 어떤지를 그리 심각히 알고 느끼지 못하셨던바 면담자들이 실지 저자거리 아니 명동성당 앞에서조차 자행되고 있는 촛불시민들에 대한 경찰의 야만적 폭력의 실상과 그로인한 피해와 고통에 대해 자세한 말씀을 드렸더니 놀라시다 못해 경련까지 일으키셨답니다.

(사실 추기경님 성향이 알려진바 좀 보수적이시고 더군다나 주변에 보좌하는 신부님들이 연로한 보수적 신부님들이 대부분이라서 이쪽의 정보가 일정 차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경우 집무 당시 함세웅 신부님이 한 때 비서신부였다 합니다)

이런저런 면담자들의 실상 보고에 대해 추기경님은 깊은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하시며 교회가 세상의 불의에 대해 결코 무관심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말씀과 함께 현 시국과 촛불시민 그리고 구속자에 대한 기도를 해주시면서 면담을 마쳤습니다.

(직접적 행동의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할 수도 없지만) 어떤 변화는 분명 있을 것이란 기대입니다)

*

면담자로부터 단식 현장에서 면담 내용을 듣고는 정말로 기뻤습니다. 이어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감격의 눈물이 흘러야 마땅함에도 그렇지 못하더군요. 그것은 제가 교인으로서 교회와 추기경님을 신뢰하지 못한 자책감 때문에 결과에 감사하기에 앞서 저 자신에 대한 책망이 들고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 일어나 추기경님 집무실 건물 쪽에다 큰 절을 올리며 그 부끄러움을 감췄습니다.

*

어제 모처럼 죽을 먹었습니다. 최근 한 달여 동안은 피곤하다 보니 출근하면서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도시락 배달해 먹고 저녁은 집회장으로 바로 가서는 늦은 시각 현장에서 조달되는 컵라면 하나로 때우다 보니 조금씩 데미지를 줬던 모양인지 그깟 며칠 밖에 굶지 않았는데 좀 표시가 나더군요.

단식을 하는 동안 회사를 빼 먹을 수 없어 월요일부터 새벽이면 단식장을 빠져나와 버스타고 집에 가 씻고 옷 갈아입고, 회사에 들러 얼굴 도장을 찍고 대강 업무를 수습하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단식장으로 돌아오는, 출근아닌 출근, 단식장에 부동하지 않는 단식을 하면서 마음과 몸이 무척 불편했습니다.

사실 몇 개월 동안 저녁 늦게까지 촛불을 드느라 피곤하고 또 관심이 거기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회사일을 건성으로 한 적이 적지 않은데 단식까지 하면서 낮 시간까지 빼먹었으니 참 못된지라 이제 좀 일에 충실해야겠습니다.

어제 저녁은 매주 영등포 촛불 드는 날이라 참여하여 역 앞에서 있으면서 이제 저의 촛불행각을 정리한 단계가 왔다는 생각을 정리하였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개인적으로 시간이 많지 않은데다 마냥 촛불만 들고 있기에는 작금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 저부터 전략을 바꾸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더러 촛불을 들겠지만 없는 시간 아껴 그 시간에 같은 전략을 가진 이들과 함께 대 국민 홍보를 위한 다양한 정보전단지를 작성하고 이를 인쇄하여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려 합니다.(배포는 전철 안에서 하는 것이 가장 쉽고 효과가 있더군요)

*

끝으로 저를 개인적으로 염려해 주시고 나아가 단식자들을 성원해 주신 모두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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