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자유게시판

Re: 비난에 대한 비난, 그러면 무엇이 남는가?

스크랩 인쇄

장홍주 [jhj5063] 쪽지 캡슐

2009-02-20 ㅣ No.131247

 


 

(“역사는 당시의 잣대로 재야지 오늘의 잣대로 과거에 있었던 역사를 잰다는 것은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빨갱이나 공산당들이 자기들이 친일청산을 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쓰는 것이지 그 당시 자원입대는 자의보다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는.....” 내가 계속하여 말을 하려고하자 진행자인 김한길 씨가 그쯤에서 내 말을 끊었다. - 이 못된 독사들아!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있으면 돌을 들어라. 속 빤히 들여다보이는 분열책동을 즉각 중지하고 그 더러운 입부터 다물라고 그들을 향해 큰소리로 꾸짖고 싶을 따름이다. - 권태하씨의 글)

권태하씨!

사람의 행적을 상황 논리로만  판단하려 한다면 옳고 그름은 어디에 자리 잡아야 합니까?

나와 의견이 다르면 불순한 의도를 갖고 옳지 않은 것을 책동하는 자들입니까?

자신의 생각과 엇갈린다고 험구로 내리 찍습니까?

권태하씨!

사람의 행적을 상황 논리로만 판단하려 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왜냐면 "그때 상황이 그랬습니다." 란 널찍하고 편리한 문이 열려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람의 삶이 그렇게 녹녹한 것이 아니잖습니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찌할 수 없다” 하고 그 상황에 순응하는 사람은 저 같은 졸장부가 됩니다.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찌할 수 없다하지 않고 결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사람을 대장부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 결연한 행동에는 필설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참혹한 고통과 희생이 따를 것이며,

때에 따라서는 하늘과 땅에 오직 하나 뿐인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하고.

그래서 역사는 그 가없이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옷깃을 여미고 고개 숙여 받들어, 우리 삶의 길잡이로 세우고 따르지요.

권태하씨!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똑 부러지게 훌륭한 사람이라 해도 흠이 있습니다.

어느 사람을 평함에 있어, 어떤 이는 그 사람의 좋은 점만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그 사람의 좋지 않은 점 흠을 이야기 합니다.

이렇듯 찬양과 비난 속에서 세파에 시달리고 입에서 입으로 저울질 당하고난 뒤에야 비로소 그 사람의 참 됨이 드러나고, 드러난 평가에 따라서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하는 인물로 자리매김 하던지, 망각 속에 묻어가던지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 쪽의 소리는 막아놓고 (찬양이든, 비난이든) 한 쪽 소리만 내라고 하고, 듣겠다고 하는 것은 횡포이며 독선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내 말에 내가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죄인이라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그 죄의 빛이 온 세상을 비추고 이 못난이의 마음 어두움까지 비추어 주고 있습니다.



361 4

추천 반대(1)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