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curse & miseries, everlasting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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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식 [goodactor] 쪽지 캡슐

2023-11-05 ㅣ No.229614

curse, anathema, execration, malediction

miseries, unhappy, unfortunate, misfortune
everlasting, invariant, constant, changeless, steadfast, fixed
truth

저주와 불행, 변함없는 진리

구약의 선민은 야훼와의 관계성, 그 관계와 관련되고 상관있는 일들을 겪어야 하는 운명을 지게 된다
그것이 행복일지, 불행일지는 전적으로 그 선민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은 공표된, 공언된 토라의 진실이었고 그것이 선민들의 삶과 공동체의 현실에 많은 사실들을 이루고 그 역사가 되었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따지기 이전에 두 당사자 사이에 맺어진 관계성과 그 이해관계는 서로의 실체를 증거하고 증언하는 역사를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것은 약속과 계약이라는 기념비적 합의와 합리의 기초와 토대를 서로의 존재와 삶에 두게 만들었고 그것은 그 모든 새로운 역사의 시발점이었다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이 그렇게 구체화되어 서로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는 모든 삶과 공동체의 실제적인 정체성이 되었고 그 전통과 관습이 되게 만들었다
그것은 인간들의 의식과 감정을 초월하는 관계성에 기반한 일이었고 그 사실성은 서로의 실체를 사이에 두고 충분하게 작용하는 원칙이었으며 합당하게 작동하는 원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들의 행위를 초월하지는 않았다
인간들의 행위로 일어나고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에 어떤 것 혹은 어떤 경우에 정의가 필요할 지, 자비가 적합할 지에 대한 그 원칙과 원리는 모든 것을 알고 그 약속과 계약을 맺은 전능한 하느님에 의해(에게서) 결코 인간들과의, 세상에서의 보편성과 일반성, 상식과 이해를 벗어난 임의를 꾸미지 않았고 인간들 편에서도 납득할 만한 정상적인 범주와 범위를 만들어 두게 하였다

신약에서의 새로운 관계성과 그 역사는 구약과 같은 궤를 유지하지만(회개생활과 하느님나라의 삶) 보다 죄인들에 대한 새로운 약속과 계약은 여러 존재적 관계성과 그 관계성을 이루고 꾸미는 차원에서의 복잡함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지만 하느님의 진실을 깊이 알수록 그 복잡함은 난해함이 되지 않고 단순하고 깊이있는 하느님의 본질과 성격에 이르게 하며 united되게 한다
문제는 그런 차원과 경지에 다다르는 본성의 충분함을 하느님의 은총과 스스로의 생활로 이루어 살아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이미 모든 이에게 생명과 진리와 길이 되겠다고 공표하고 공언한 진리에 의해 더 이상 구약의 한정되고 제한된 인위성과 세계성을 존재와 삶의 실체적 경계선과 진입할 수 없는 그 이데아와 페르조나, 패러다임과 프레임이 깔린 그 이데올로기의 장벽으로 세워 그 아젠다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작동하는 그 테두리를 모두 없애고 허물어 하느님에게 다가갈 수 있는 순순한 선의와 덕행을 가로막는 인본주의적 이데올로기가 하느님과의 관계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약속과 계약에는 더 이상 없음을 분명히 하고 그런 헛되고 쓸데없는 짓들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명백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새로운 약속과 계약은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진실은 회개생활과 하느님나라의 삶이 드러내는 그 증거와 증언이다
하느님과의 관계성과 그와 관련되어 일어나고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담과 하와에게서부터 뚜렷이 드러나며 아담과 하와로부터 겪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라는 첫 인간들에게 인간생명과 인간지성, 인간존재에 죽음과 저주가, 불행이 굴레와 속박이 되었고 운명처럼 되게 만들었다
그 후 아담과 하와의 모든 후손들은 그 굴레와 속박이, 그 운명이 존재의 유전자와 DNA에 깊이 아로새겨지게 되었고 그 누구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단지 그 운명을 온갖 보상과 댓가로 덧대고 범벅이 되게 만든다고 그 굴레와 속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히 하느님과의 관계성에서 비롯되고 벌어진 일이기에 그 관련성에서 해결되고 풀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카톨릭 교회는 신앙생활 속에 경신례와 성사를 제도적 행위로 같이 두어 보다 확실한 구원을 위한 회개생활을 뚜렷이 표징화하는 것이다
구원이라는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잘못되고 악화된 모든 것을 바로 잡는 것이며 그 악으로부터 평화롭게 되는 것이다
자유라는 말은 인간들에게서 매우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의식과 감정을 가지고 그 임의대로 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생명과 지성과 존재의 자유는, 그 자유로부터의 모든 행위는 아담과 하와처럼 죽음과 저주를 부르고 그 모든 불행의 씨앗과 뿌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카톨릭 교회는 하느님께 대한 순명을 통한 하느님의 모든 것에 살아있고 머무르는 것을 완덕으로 여긴다
그것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삶의 마땅한 도리로 여기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 하느님을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본분인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역사는 서로의 실체를 드러내며 그 삶의 증거와 증언을 아울러 동시에 역사로 꾸미고 만드는 것이다
그 역사에는 그러한 삶과 행위가 포괄적으로 담기며 모든 것을 합하여 하느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그 진실을 밝히 나타내는 것이다

인간들의 본성은 짐승들의 본능에 한한 생존의 역사, 생태의 역사보다 하느님의 모상, 이마고 데이로서의 신원과 정체를 가진 그 의미와 가치가 깊고 넓고 높은 차원에서의 스펙트럼으로 그 역사가 꾸며지고 만들어지게 하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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