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자유게시판

충고 고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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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화 [glsm] 쪽지 캡슐

2001-10-09 ㅣ No.25011

김성국님의 저에 대한 충고 고맙긴 하지만 저는 태어나서 일주일만에 유아세례를 받은 이제 갓마흔이 된 평신도 입니다. 굳이 감투가 있다면 30여명 정도 되는 단원들로 이루어진 우리 라우다떼성가대의 부단장직입니다. 따라서 저는 님께서 말씀하신 "전임 사목회의 대표를 지낸 사람"도 아니요 더욱이 "권력 지향적인" 혹은 "그렇게도 감투가 그리운 사람"도 아닙니다. "다시 정권?을 잡고 싶은 몸부림"치는 사람은 더더욱이 아닙니다. 그런 것에 대한 욕심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충고 고맙게 받아들이겠지만 선입견이나 편견 없기를 당부드립니다. 님의 글에 대한 저의 생각은 접겠습니다. 끝없는 꼬리잡기식의 논쟁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각기 쓴 글에 대한 판단은 읽는 분들께 맡기는 것이 감정의 낭비를 막는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우리 "성당에는 사람도 없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만 있읍니까?"라는 말씀에 대해 우리 본당의 인터넷게시판 실상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사례를 들겠습니다.

아래의 두 글은 실명으로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삭제 당한 저의 글들 중 일부입니다. 본당의 실정을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기에...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의 삭제 기준은 저희 본당 게시판으로 직접 들어가셔서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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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김병화(glsm) 사랑하는 신부님

게시일: 2001-09-17 00:23:17

본문크기: 8 K bytes 번호: 2287 조회/추천: 34/5

주제어:  

 

 

 

언제 들어보아도 가슴 설레고

아무리 들어도 싫지 않은 말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이 세상 끝까지 영원히 남을 주님의 계명

그 또한 사랑입니다.

 

세상 모든 갈등의 시작도 돌려 생각하면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요

그 깊은 상처 말끔히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약 또한 사랑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신부님

그리고 누구보다 우리 공동체와 신자들을 사랑하시는

우리들의 신부님

한 하늘 한 지붕아래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와 함께 열렬히 흠모하시는 신부님

 

그러하기에

우리 공동체의 갈라짐을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셨을 신부님

당신의 양들이 잠긴 문 앞에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서로 조금씩 달랐고

조금씩 서툴렀던 이유로

서로가 모르는 사이에 너무나 굳게 잠겨버린

우리들 마음의 문

사랑의 문

 

그 잠긴 문 앞에

서성이고 있습니다.

당신도 함께 아파하시며 서성이고 계십니다.

몇몇은 맞지 않는 열쇠로 열어보려고 애써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문은 자꾸만 더욱 굳게 잠겨질 뿐입니다.

 

당신에 대한 사랑의 오해로 잠겨진 문

신부님!

그 잠겨진 문

신부님이 열어주세요

가장 깊은 당신 사랑의 열쇠

그것은 바로 신부님의 열쇠가 아니겠는지요

 

사랑하는 신부님

우리가 언제까지나 사랑해야할

우리들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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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김병화(glsm) 차라리 떠나겠습니다.

게시일: 2001-10-05 01:16:30

본문크기: 13 K bytes 번호: 2334 조회/추천: 0/0

주제어:  

 

 

작금의 본당 문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 라우다떼 성가대 단원들은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하나의 마음을 하나의 소리로 모아  우리와 우리 본당 공동체의 맑은 영혼을 가지런히 가꾸는 일에 전념해왔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의 유임 결정 이후 단장의 사표 권유로 시작된 우리 성가대에 대한 신부님의 불편한 심기는 지난 9월 23일 주일 미사 집전 시간 성가대의 창미사 제제로 노골화되기 시작했으며 영성체 후 묵상을 위한 특송을 중간에 가로막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 후인 9월 30일 주일 미사 시간. 단장은 사표를 제출하고 지휘자도 당분간 쉬기로 하고 나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또 한사람 신부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단원 한 형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명절 전이라 신자들도 그리 많지 않았고 단원들도 성가대에 대한 신부님의 불편한 심기 표현으로 많이 빠진 상태였습니다. 저 역시 신부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장본인이었지만 단장도 없는 상황 속에서 부단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성가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창미사를 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 신부님은 창미사를 강요하셨습니다. 지휘자도 없고 연습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으며 단원도 제대로 다 모이지 않은 상태. 더욱이 신자들 역시 명절 준비로 마음이 바쁜 상황. 이런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창미사를 드릴 여건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부님은 이를 강요하셨습니다. 미사를 올리면서 몇번이나 중도에 그만둘까 생각했지만 미사는 사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한 제사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마치긴 했지만 저를 비롯한 단원들은 몹시 당황했고 의아했습니다. 마음의 상처 또한 깊게 받았습니다.

 

추석 명절이 지난 후 돌아오는 10월 7일. <본당의 날>이자 주임신부님의 <영명축일> 이었습니다.

우리 성가대에 대한 신부님의 불편한 심기 표현으로 단원들이 방황하고 갈등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경사스런 날에 본당공동체 전례의 한 부분을 맡은 성가대가 무언가 해야할 것 같아 본당 모든 단체를 책임지고 있는 사목회 부회장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성가대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를 묻기 위해. 대답의 요점은 신부님의 의지에 반대했던 몇몇 사람의 사과 요구였으며 그들의 사과가 없는 성가대는 곤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가대에 대한 신부님 불만의 원인은 전사목위원과 깊이 관련된 지휘자, 인터넷에 글을 올린 몇몇 단원, 그리고 신부님 구명을 위한 서명에서 보여준 단원들의 소극적 자세 등등입니다. 그러나 성전 건축과 관련하여 보여준 우리 단원들의 자세는 신자로서 사제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한 개별적 인격체로서 하나의 안건에 대한 개인적 의사를 가지고 있었을 뿐인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성가대는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느님을 향한 일치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하나된 소리를 주님과 신부님 그리고 신자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우리는 사제를 모욕하는 노래를 부른적도 없습니다. 더욱이 신자들을 선동하는 노래를 부른적은 더더욱이 없습니다.  

 

성당은 정당이 아닙니다.

 

정당은 다음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당리당략에 따라 당 총재의 의견인 당론에 맹목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경쟁자인 상대 당을 제압할 수 있고 자신의 현실적인 목적도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당은 다음 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곳도 아니요 현실적인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성당이라는 공동체는 사제의 왕국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왕국입니다. 따라서 모든 판단과 행동의 기준은 사제의 한 의견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일치는 단성부의 제창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닙니다. 다양한 소리가 조화를 이루는 합창이나 오케스트라의 화음이 더 깊고 웅장한 일치의 현명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문제의 당사자(신부님께 사과해야할 대상)의 한 사람으로서 먼저 우리 라우다떼 단원들께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신부님께는 절대 사과할 수 없습니다. 명분 없는 사과는 비굴한 자의 가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또한 사과 받는 당사자에 대한 또다른 멸시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이 저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인터넷에 올린 제 글 때문입니다. 인터넷에 올린 저의 글 어느 한 단어에도 제가 신부님게 사과를 드려할 표현이 있거나 우리 성가대가 그런 모멸감을 받을 만한 의미를 담은 곳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따르는 소박한 신자로서

아이들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야하는 교사의 양심으로

세상 사람들의 진실을 대변한다는 소박한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 점 부끄럼 없이 당신에게 나의 소신을 담아 글로 올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글이든 저에게는 분신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글이 삭제 권유를 받고 또한 강제로 삭제되면서도 성가대만큼은 하느님에 대한 찬양이기에 더욱 열심히 참여하고 부단장으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해왔습니다. 이런 저에게 사과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저의 양심과 자존심 그 밖의 모든 것을 다 내놓고 성가대에 참여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 신부님은 합창이나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화음을 거부하시며 우리에게 오직 단성부의 일치만을 강요하며 고집하십니다. 당신 목소리와 비교해서 음색이나 높이 길이가 다른 소리는 당신의 소리를 방해하는 소음으로 취급하시면서 차단하려 합니다. 저는 이런 신부님의 강요에 맹목적으로 순종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신이 내치신다면 성가대를 기꺼이 나가겠습니다. 그러나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옳지 않은 것은 분명히 옳지 않은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본당의 사태와 관련하여 저는 저 나름대로의 소신이 있습니다. 그 소신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습니다. 신부님의 유임이 진리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신부님의 유임 결정 이후 우리 성가대를 비롯한 소위 반대파에 대한 일련의 조치와 반응 또한 주님의 뜻은 물론 유임 결정을 내린 교구의 뜻과도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단성부의 제창(unitsong)은 쉽습니다.

반주와 옆사람의 소리를 들으며 따라 부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지휘자가 없어도 다 함께 쉽게 부를 수 있습니다.

단성부의 제창만을 요구하는 지휘자에게 저는 저의 테너 목소리를 빼앗길 수 없기에 이제 라우다떼 성가대를 떠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래의 시를 올립니다. 이 시는 1년 전 쯤 우리 라우다떼 성가대의 기본 정신과 자세를 생각하며 제가 쓴 것입니다. 우리 단원들은 이런 마음으로 늘 성가대 단상에서 성가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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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노래, 우리의 노래는

 

마음의 깃 바르게 세우고

영혼의 안쪽에서

맑은 샘물 길어 올리는 일이다

나의 노래는

 

그 맑은 물 모여

단지 또 하나의 물 되듯

나의 노래는 다만 노래가, 우리들의

노래가 되는 것이다.

 

맑고 높게 날아가는 소프라노의 고운 선율 안에

우아하고 부드럽게 감싸는 알토의 따뜻한 마음씨

그 마음 받아 화려한 율동으로 손잡는 테너의 울림

낮은 곳에 임하여 깊고 웅장하게 떠받치는 베이스의 든든함

 

그렇게 우리들의 소리는 어우러져

다만 하나의 노래가 되고 기도가 될 뿐이다.

 

떨어진 두 손 모여

하나이신 당신 지향하는 기도의 손 되듯

흔들리는 마음 하나의 소리로 모아

맑은 영혼 가지런히 가꾸는 일이다

 

나의 노래

우리들의 노래는

 

땅에서 올라가

하늘의 심금(心琴) 울려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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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동 성당 12시 라우다떼 성가대 부단장 김병화(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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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해야할 시간이 되어서 상세한 설명은 다시 시간나는대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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