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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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어떤 신부님이 오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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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bukhansan] 쪽지 캡슐

2016-12-27 ㅣ No.211927

 


 

 

 

이번엔 어떤 신부님이 오시려나


 

쫓겨 가시는 신부님을 본적이 있으세요? 전 그 분의 이삿짐을 실은 차가 떠나는 것만 보았습니다. 그 분은 신자들에게 고별미사 같은 거 없이 가셨으니까요.

신자들이 들고 일어나서못 견디고 임기 중에 본당을 떠나는 사제가 종종 있다는 사실을 알만한 분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분란 끌탕의 심도가 거기서 거기인 본당들 중에 사제가 축출되는 본당은 백군데 중 하나 쯤 입니다. 나머지 아흔아홉 군데는 친위대파와 반군파가 갈려서 웃통 벗고 대치 중이어서 짐은 꾸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연판장. 교구 총대리 신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연판장 얘기가 나왔습니다. 마침 교구 내 모 본당에서 신자들이 사제를 바꿔달라고 탄원을 한 연판장 다발이 총대리신부 책상위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때 신부님 말씀입니다.

아이구, 이런 게 한 달이면 몇 개씩 올라와요. 일일이 어떻게 할 수도 없어요....”

 

 

신자들은 다수가 본당지역에 상주하는 붙박이들이고 사제는 5년 임기를 마치면 떠나가는과객이니 붙박이 터줏대감이 별나게 텃세를 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지만 대개는 사제에게 별나게 흠이 있어 야기되는 경우입니다.

우리나라 같이 신자가 사제를 끔찍이 공경하는 나라가 없다듯이 교회쇄신이란 말만 들어도 부정 타는 거 같아서 귀를 씻으려 하고 껌벅 죽는 게 우리 평신도들인데 오죽했으면 연판장을 돌렸겠느냐 이 말입니다.

 

 

이번엔 어떤 신부님이 오시려나...

연중 사제 인사이동 계절이 오면 주임신부 임기 5년이 다 찬 본당의 교우들은 막연한 불안심리에 젖어듭니다. 떠나시는 분을 생각하는 석별의 정 때문이 아닙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다음 신부님은 또 어떤 분이 오실지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입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런 일에 기대심리가 아닌 불안심리를 갖게 되었는가. 왜 우리는 이런 노이로제에 시달려야 하는가...  불행하게도 한두 군데 본당 봉사를 해 본 신자라면 그렇게 지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개연성(蓋然性)이 이미 뇌리에 깊이 배어 있음을 어쩌랴.

 

 

아무튼 언제부턴가 그 누구도 훌륭하신 사제가 오시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어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더 못한 분이 오시지나 말았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몇 차례 인사이동을 맞이했지만 '좋으신' 신부님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욕심엔 끝이 없다는 말에 해당되는 사안이 아닙니다.

국가수반이나 각종 단체장도 선거로 뽑지만 사목자는 하늘에서 보내십니다. 그리고 다섯 해 동안 싫든 좋든 한 밥상에 마주앉아야 합니다.

 

 

좋은 신부는 어떤 신부이고 그렇지 못한 신부는 어떤 신부인가?

혹자는 탈속(脫俗)한 듯이 말합니다.

성인(聖人)신부라도 옳으니 그르니, 좋으니 나쁘니 백인백색으로 찧고 까부는 게 세상인심이라네...."

"자네는 하느님 섬기러 성당 다니는 게 아니라 신부 보러 다니느냐?....“

필시 그는 마음이 하해와 같은 자유인이거나 아님 베도는 수수방관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사제의 인격과 영성은 권위주의와 반비례합니다.

파아란 풀밭에 이 몸 뉘어 주시고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이끌어주는 목자, 내 영혼 싱싱하게 생기 돋아나고 주님 영광 위하여 지름길 인도하시는 아쉬울 것 없는 목자가 서 계시는 본당의 양떼는 좋은 풀을 양대로 뜯어먹을 수도 있고 이리떼로부터도 안전할 수 있고 하나가 되어 화목과 평화를 구가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제가 오시면 오시는 그날로부터 본당공동체는 사분오열되어 평지풍파가 일어나고 신심에 갈등이 끼어서 영성이 피폐 해 지고 맙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경우가 남우세스러워 대놓고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두집 건너 한집일 만큼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냥 주일 미사나 드리는 걸로 끝나야지 괜스레 봉사 한답시고 얼쩡대다간 끝내 상처 받고 이렇쿵저렇쿵 궁시렁 대는 좌파가 되고 말지라는 말이 정석처럼 오르내립니다.

그러면서 이 순간에도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지키는 영원한 멜키체덱의 후예인 사제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송대(宋代)에 임제종(臨濟宗)을 창시한 임제(臨濟)선사의 가르침 중에 殺佛殺祖라는 선문답이 있습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라는 뜻입니다.

사제성화를 위한 기도를 바치면서 한편으로는 흠이 좀 있는 사제나 교우로 인하여 나의 신앙이 흔들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다잡고 뛰어넘어 추스르는 일이 급선무이라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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