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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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31.235.*]

2011-10-01 ㅣ No.9665

10월의 첫 토요일입니다. 가을 바람이 차가워 가디건을 걸치고 아침바람 맞으며 몇가지 생각을 해보고 있었습니다.
신문을 보니 어제 TV토론을 하였다는 야당의 박영선 위원과 박원순 변호사가 부부싸움을 닮은 토론을 나누었더군요. 필자는 이 때에 과연 지상의 상호 이성의 존재는 무엇인가? 과연 남녀의 존재는?이라며 상념에 젖어야 했습니다.
 
잠에서 깨어날 때 지난날 성금요일 태어난 아들 태몽을 기억하며 거대한 구렁이가 집을 삼키는 장면과 작금의 내 영적인 싸움 현장을 생각해 보았는데, 성모님 승천시에도 일곱마리 용이 방해공작을 하는 성서 내용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래전 네 가지 격언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1. 너죽고 나살자: 뺑소니 운전자형
2. 너죽고 나죽자: 부부싸움형
3. 너살고 나살자: 공자형
4. 너살고 나죽자: 예수형
 
필자 역시 miki님처럼 위의 네 가지를 쉽게 떨치지 못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것을 신앙 또는 예술적 감각으로 노래 하고자 예수님형의 삶을 살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miki님의 '성령의 은사와 권리론'에 대한 생각이 확대해석이라 생각한 가운데 필자가 일부 독자들에게 실없는 사람 되더라도 침묵을 지키는 것이 낫겠다 생각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그것을 유지하려고 하였습니다. 나역시 확대해석일 수 있는 그것들이 칼럼이 되고 보다 아름다운 논픽션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지요. 아무튼 이 때에도 사람과 사람이 무언지 섞갈리기만 합니다.
 
그런데 임은 두 번째로 다시 꼬리를 무는 확대 해석을 펴고 있었습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신부님은 해결사 신부님입니다. 물질적 빚이 많은 곳에도 파견되시어 신자들로 하여금 성령의 은사 즉 토머스머튼님의 고백처럼 깊은 너와 나로 현존하시는 주님을 모두가 찬미하는 치유와 힘 그리고 선과 악의 분별로서 자기안에 갇힌 사람들이 회개하여 십시일반으로 그 빚을 탕감할 수 있도록 이끄는 성지의 해결사 신부님이기에 그리 거론한 것입니다.
 
필자가 추측한 신부님과 miki님이 거론한 신부님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을 수도 있겠지요. 
 
여기서의 공과 사 개념이란 글이란 것 역시 보는이의 관점에 따라서 십인십색, 각양각색을 이루기에 적어도 우리 신앙인들은 과연 내 글이 복음적인 것인가, 비복음적인가에 대하여 골몰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miki님의 글은 자칫 한 사제에 대한 확대해석에 따른 잘못 된 판결로 인한 오보로 비추어질 수 있다 보여집니다.
 
교구사제는 수도사제와 달리 가난서원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더 이상 무슨 답이 필요할까요? 신앙상담란은 개인대 개인의 토론장이기보다는 호기심 비슷한 것들을 충족시킴보다는 이런 것들이 쌓이고 억제되어 악이 좋아할 수 있는 음침함 등의 비복음적인 것들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장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임과 나를 한발 더 떠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보다 공정한 관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직언이라 봅니다.
 
하느님과 나에 대한 의견 또는 주장이 때때로 선과 악이라는 양갈래 길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 미사를 모시는 사제에 대한 방해 공작을 일삼는 악의 입김에 내 스스로 속고 또 당할 수 있기에 그것을 경계하고 기도하면 그 뿐일 것입니다.
 
문제의 문맥 가운데 '그 신부님은 치유 달란트도 깊은 분이기에 그럴 권리 또한 있다고 보여집니다.' 단어를 보면 능히 miki님이 그렇게 오인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깊은 분이기에'를 '깊은 분이며'로 고쳤다면 miki님이 덜 오인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miki님, 필자의 글이 그렇게 경솔하게 보여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세례를 통하여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는 분명 피할 수 없는 지상 여정 가운데 기로에서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죽음이냐를 선택할 때에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이끄시는 은총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miki님의 지적들에서도 저마다 의기양양할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렇기에 미사 때에 제대가 전부이듯 세상에서도 그리스도 제대가 전부인 예수님의 삶을 꿈꿉니다.
 
우리가 세속의 사람들처럼 때론 부부처럼 정의감을 가지고 꼬치꼬치 누군가에게 따질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자주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이웃에게는 엄정하거나 과민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바오로 성인께서 결혼관에 대하여 설파하고 계십니다. miki님의 확대해석에 따른 그러한 우려들은 필자의 지금 논조와 마찬가지로 그 내용들 다수가 옳은 지적이라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나비효과로 태풍이 일듯 늘 우리는 내탓이오!를 보다 깊이 이끌어 주시는 예수님께 그것을 의탁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위기의 부부들이 아닌 즉 홀로가 아닌 향후 미키님과 합심 기도로서 우리안의 억측들을 주님께 다가서며 더욱 쇄신함을 제안합니다.
 
끝으로 어떤 수도자의 조언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마음을 모았을 때 내 안으로 들어가는지 그분 안으로 들어가는지 잘 살펴라, 그것은 선과 악의 갈림길이다" 이 말씀도 사실 초심자들이 많이 볼 수 있는 신앙상담란에서는 매우 위험한 이야기로 비추어진다 생각합니다. 그만큼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다수가 처음엔 내 평화를 위해 입문하지만 점점 더 스스로의 나비효과 때문에 주님의 피조물인 바람에 가지 몫이 되어 떨어져 나가고 급기야 스스로 도태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를 miki님과 함께 기도합니다. 또한 유방암 걸렸다는 어떤 사람의 친구를 함께 기억합니다.
 
어떠한 답변을 하시더라도, 반론을 재기하지 않고, 님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겠다 하셨으니 이상 내 의견을 피력함으로 마치겠습니다. 참고로 필자의 닉네임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보이는것 싫어하니 양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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