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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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31.235.*]

2011-10-05 ㅣ No.9670

 
사랑하는 관계라면 마땅히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가겠다는 책임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부부들이 일시적인 남녀의 감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차선으로 돌린채 결혼하고 실패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남자를 따르는 심리 등으로 심심치 않게 천주교 신자로서 미사를 궐하며 개신교 집안으로 시집가 혼선을 만나기도 하고 남자들 역시 성사혼보다 심한경우 교회에서 주도적 봉사력을 보이던 사람들조차 자녀들의 사회혼만 바라보며 조당(혼인장애)을 방관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이 때에 흔히들 하는 인성적인 말들이 있지요. '종교는 강요가 아니라서'
 
천주교는 보편적으로 평화방송의 신앙상담 등을 보면 칠성사의 입문성사로서 세례받은 사람이 개신교로 갈 경우 파견의 의미를 부여함을 봅니다. 또한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포용과 천주존재의 기쁨을 설명해줍니다. 세상에는 더불어 어김없는 상선벌악, 삼위일체, 강생구속이 함께함을 봅니다. 하느님의 나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간음 등을 하고 숨으려 해도 숨을 수 없는 공간이 또한 하늘 나라일 것입니다.
 
따라서 훗날의 평화를 위해서도 형제님은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자매님과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화해일치점을 강구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신앙인들이 자신 안에 사로잡혀 더 교만할 수 있고 성당 또는 교화안에 잠입한 더 큰 마귀들이 활개칠 수 있는 공간이기에 천주교인이나 개인교인이나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으나 부부가 잠시 출가하고 다시 귀가하는 그 여정들 가운데에서도 한 순간 인연 그 자체로 절대 서로가 멀리할 수 없는 끈(강생구속)이라는 것이 형성되기에 상호 종교에 대한 그것 역시 거듭나는 신앙으로서 화해 일치를 모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수순일 것입니다.
 
우선 형제님은 천주교의 문패명이 대중적 오류 '카톨릭'이 아닌 '가톨릭'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신부님은 가톨릭이라는 문패를 모르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고 걱정하십니다.
결혼은 가톨릭의 매우 커다란 것이기에 첫 기적 혼인잔치도 칠성사의 모든 것도 성모님을 닮으려는 신부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수녀님의 지향점과 함께 봉사의 첫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조당도 그래서 혼인장애라고 하는 이유를 곰곰히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아내 될 사람의 종교도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지혜를 간구할 것을 권고드립니다.
천주교가 왜 글자 그래도 그리스도교라는 뜻인지 그대로 전하고 나누십시오.
 
개신교 사람들이 우리 가톨릭인들보다 일반적으로 더 열정적이기에 가톨릭에 대한 편견도 많은 것이 사실이나 결혼 후에도 아내 말을 더 들어줄 수 있는 수련으로 삼길 권고드립니다. 기십년전 필자의 아내 주문들이 생각나는군요.ㅎㅎ 기획력이라고는 낙제에 가까운 한 청춘 여성의 주문...,ㅎㅎㅎ 우리가 또한 예수님께 자주 그러지요.ㅎ 그런데 예수님은 무조건 우리의 잘못된 기도조차 들어주십니다. 미운자식 떡하나 더 주시고, 왜 그럴까요?
 
그래서 오늘날의 한 가정의 왕비이길 원하는 아내들 또한 왕이 있어야 가능함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때의 황금은 왕의 것임을 기억하시어 신앙인은 더욱 사심없는 은총으로 나아가게 해달라는 기도와 그대로 이뤄주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주사위 숫자를 미리 정해놓고 당신을 종으로 부리려는 잘못된 기도조차 당신의 아픔을 숨기며 그대로 이루어주십니다. 
 
형제님은 아직 미혼이라 어떨지 모르겠으나 많은 기혼 남편들이 우여곡절 등으로 가깝거나 멀어지기도 한 아내를 향하여 다만 기도함을 보십시오. 이것은 두 쌍이 결혼할 때 한 쌍이 이혼하는 이 시대에 있어 나는 최고의 삶을 지향할 것이다라고 아무리 호언장담한들 피해갈 수 없는 숙명같은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엄마는 금지옥엽으로 키우려던 딸에게 임신 예방으로 콘돔을 전해주며 뒤 돌아서 눈물짓는 시대입니다.
 
그렇게 세계 2위의 이혼 왕국인 한국 환경에서 많은 이방인들은 결국 이기적 인간 심리에 속아 재혼에 대한 죄책감을 피하려 하지만 이성적으로 영적으로 전 배우자에 대한 애환, 가책 등에 시달리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님과 필자의 십자가 없는 예수님 형상 가톨릭인으로서 예수님 없는 십자가를 믿는 개신교인과의 화해는 그 생각 자체로도 놀라운 평화를 제공해 주실 것입니다. 가급적 설득보다는 사랑하고자 하는 연인에 대한 그것처럼 들어주고 포용해주십시오. 그러다보면 하느님의 말씀에 힘입는 식별이라는 상으로 이어질 것인데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조건없는 사랑이고 또 장차의 합심일 것입니다. 다툼도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함 속에서 역효과를 이루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러하니 무엇보다도 사랑과 또한 천주교의 장점인 침묵을 잘 전할 수 있도록 의탁과 지혜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천주교 내 관면혼인 전례는 신자들의 배려상 비교적 단순하며 짧은 시간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문제는 서로의 완고함은 더 큰 완고함을 야기할 수 있기에 지금 그 문제로 골몰해야 하는 형제님은 매우 축복받고 있는 상황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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