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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판공성사 날의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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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1-12-13 ㅣ No.27528

                    대림절 판공성사 날의 에피소드

 

 

 

 

 어제(12일)는 우리 교회(대전교구 태안 성당)의 동문1구역 판공(辦功)날이었습니다. 동문1구역 신자인 나도 당연히 교회의 이 거룩한 전통적인 예절에 참례를 했지요. 약간 군대식 용어이긴 하지만 우리 본당의 19개 구역 중에서 ’선임’ 구역인 우리 동문1구역에 대해서 나는 깊은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선임 구역 신자로서의 ’모범’을 추구하는 책임감 같은 것도 잘 지니고 있는 터였습니다.

 

 아침부터 성심 성의껏 판공 준비를 했습니다. 우선 아침식사 자리에서 내년도 교무금을 얼마로 신립할 것인가에 대해 가족들과 의논을 했습니다. 우리는 일년 교무금을 2000년에는 75만원을 바쳤고, 2001년에는 80만원을 바쳤습니다. 아내는 언걸 먹은 보증 빚도 거의 갚아가고 하니 2002년 교무금은 20만원을 올려 100만원을 바치자고 했습니다. 독실한 개신교(감리교) 신자였다가 나와 결혼하면서 천주교로 개종한 아내는 개신교 신자 시절의 십일조 헌금이 몸에 배어서인지, 늘 그것을 그리워하며 십일조 헌금을 하지 못하고 사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터였습니다.

 

 나는 10만원만 올려서 90만원을 바치자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와 아내 사이에 약간의 설왕설래가 있었고, 어머니는 중립을 지켰습니다. 나는 아내를 설득하느라고 애를 썼습니다. 아직도 매월 20여 만원씩 보증 빚 갚는 노릇을 앞으로도 2년은 더 해야 하고, 어머니 약값도 있고, 현재 매월 5만원씩 치르고 있는 성전건립기금도 내년 말에 두 번째 200만원 적금이 끝나게 되면 다시 또 같은 규모의 적금을 들어야 할 것이 거의 분명하고…. 그러니 내년에는 90만원만 바치자는 것이 내 주장이었습니다.

 

 일년 교무금은 90만원밖에 안 되지만, 성전건립기금 60만원에 월 5천원씩 내는 사회복지기금과 성소후원회비, 다섯 가족의 주일 헌금과 일년에 열 번 정도 하게 되는 미사 봉헌, 여러 단체 회비와 구역회비, 그리고 우리 교회 밖으로 보내는 것이지만 매월 3만원씩 보내는 해미성지후원금, 월 1만원씩 내는 천주교 인권위원회비, 북한동포돕기성금, 장애인선교회비, 노인복지회비, 전례음악연구소 후원회비, 여기에다가 교회 간행물 (2개 신문, 2개 잡지)구독료와 평화방송 후원회비까지 합하면 십일조가 훨씬 넘는다는 말로 나는 아내를 설득하였습니다. 결국 내 설득이 주효해서, 2003년에는 교무금을 100만원으로 올린다는 조건으로 내년에는 90만원만 바치기로 우리 가족은 합의를 보았습니다.

 

 직장인 판공성사날과 학생 판공일이 따로 있기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은 구역 판공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내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나는 주일과 마찬가지로 판공날도 판공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힘든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미리 써놓았던 글을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들에 올리는 일이나 하고, 주로 ’굿 뉴스’ 게시판의 글들을 읽는 일로 오전을 보냈습니다.  

 

 오후에는 이발을 했습니다. 목욕은 3일 전에 온 가족이 덕산온천을 갖다 왔기 때문에 다시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평소 즐겨하지 않는 정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쯤 어머니와 함께 판공 장소인 구역회장님 댁으로 갔습니다. ’가정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2만원의 적은 금액이지만, 깨끗한 새 돈으로 미사예물도 준비해서 가지고 갔습니다.

 

 판공을 위해 이발을 하고 정장을 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우리 태안 교회 초창기부터의 신자인 나는, 우리 교회가 서산동문 본당의 공소였던 어린 시절, 판공 때마다 어른님들이 목욕재계하고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 있고 교회에 와서 신부님을 오래 기다렸다가 맞이하곤 하시던 그 모습, 그 풍경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련하면서도 참으로 그리운 풍경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풍경에 대한 향수 또한 내가 잘 간직하며 살아야 할 소중한 덕목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판공성사를 보고 나서 사무장님과 따로 만나 내년도 교무금액을 말씀 드리니, 우리집 형편을 잘 알고 있는 사무장님은 대뜸 빚을 다 갚았느냐고 묻더군요. 아내의 세금 정산에 필요한, 1,520,000원의 금액이 적힌 ’지정기부금 납입증명서’를 떼어주면서 사무장님이 여러 번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해서 나는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하느님께 교무금을 바치는 건데, 사무장님이 왜 고맙다고 한담….

 

 판공성사 후에 구역회장님 댁  너른 거실에 낮은 식탁을 이용하여 제대를 차리고, 신부님과 모든 구역신자들이 둘러앉은 채로 미사를 지냈습니다. 나는 이런 형태의 미사에서 각별한 ’맛’을 느끼곤 한답니다. 신부님은 강론 중에 우리 동문1구역에 대한 칭찬의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미사 전에 큰 수녀님으로부터도 들은 말이었습니다. 동문1구역이 선임 구역답게 모든 면에서 가장 모범적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신자들은 구역장 자매님에게 그 공을 돌리고, 구역장 자매님은 구역 신자 모두에게 감사를 하는 아름다운 장면도 연출되었습니다.

 

 미사 후에는 친교의 시간. 여러 개의 큰상에다 음식을 차려놓고 신부님과 수녀님들과 모든 신자들이 함께 떡국으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음식들 중에는 내 아내가 판공을 대비하여 담근 싱건지(물김치)도 있었습니다. 구역장님은 무시루떡을 두 말이나 했다며 판공을 마치고 돌아가는 수녀님들과 모든 신자들에게 골고루 무시루떡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나는 그런 모습에서도 옛날 내 어렸을 적의 판공 풍경을 회억하며 반추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잠시 쉰 다음 7시쯤 성당에 갔습니다. 성가 연습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생활의 마지막 일정이었습니다.

 집에서 성당이 멀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도로의 하수도관 공사도 있고 해서 걸어서 갈까 하다가 간간이 비도 뿌리는 날씨이고, 성가대원들에게 선물할 고종순 님의 수기 책도 싣고 가야 해서 차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수도관 공사를 하지 않는 쪽으로 돌아서 성당엘 갔습니다.

 

 성당에 도착한 시간까지는, 오늘 하루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이 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열심히 성가 연습만 잘하고 돌아가면, 오늘 하루의 생활은 그야말로 만점이 될 터였습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뜻밖의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성당 마당에 도착하니 많은 승용차들이 어지럽게 놓여져 있었습니다. 판공 때문에 낮에 하지 못한 수녀님 반의 예비자 교리가 저녁에 있는 탓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성가대원들이 오는 시간이어서 더욱….

 일단 구석으로 가서 차를 놓았는데, 아무래도 옆 차에게 불편을 줄 것 같아서 마당 뒤쪽 나무 사이 한갓진 자리에다 차를 집어넣으려고 후진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아뿔싸…. 나무에 부딪쳐서 내 승합차의 뒷문 유리가 와장창….

 

 주위가 너무 어두웠던 탓이지만, 실은 내 방심 탓이었습니다. 왜 그리도 조심성이 없었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내 먼저 성당으로 들여보내고 즉시 차를 몰고 차유리 전문점으로 달려갔습니다.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셔터 문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니 부인이 받았습니다. 바깥양반이 술을 마셔서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나는 집밖으로 나와서 하늘 사정을 좀 보고 판단을 하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에 차유리 전문점 주인이 택시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술을 좀 마셔서 택시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차 열쇠를 맡기고, 우선 성가대 남성 단원들에게 줄 책만 꺼내어 가슴에 안고 급히 성당으로 잰걸음을 놓았습니다. 나는 성가 연습에 빠질 수가 없었습니다. 성탄절에 부를 몹시 어려운 노래들을 연습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하루라도 연습에 빠지면 동료 단원들에게 민폐를 끼치기가 십상인 상황이었습니다.

 

 성당에서는 한창 맹렬히 성가 연습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아내를 통해 사정을 알고 있는 단원들이 내게 위로를 해 주었습니다. 나는 스스로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큰소리로 열심히 성가 연습을 했습니다.

 

 성가 연습을 마치고 나와서 나와 아내는 차유리 전문점으로 갔습니다. 걸어가면서 내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판공성사두 잘 보구, 교무금두 10만원을 올려서 90만원을 신립혔구, 가정을 위한 미사두 봉헌했구, 열심히 착허게 잘 살었는디, 막판이 왜 이렇게 구겨져 버렸지?"

 "낸들 아나요."

 아내는 시큰둥한 기색이었습니다.

 "오늘이 12월 12일, 맞지?"

 "맞아요. 왜요?"

 "그래서 그랬구먼. 오늘이 ’시비시비’―바로 시비시비 날이어서 나헌티 그런 사고가 생긴 겨. 워쩐지…. 그게 워치게라두 나헌티 표를 내야니께…."

 "둘러대시기는…."

 그러며 아내는 웃었습니다.

 

 내 승합차의 뒷문 유리는 말끔하게 복구가 된 상태였습니다. 값을 물으니 10만원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지갑에서 5만원을 꺼내 주고 5만원은 내일 주마고 했습니다. 그리고 차유리 전문점 주인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술두 한잔 허셨는디, 저녁에 쉬시지두 뭇허게 헤서 미안휴. 증말 고마유."

 "아니유. 지가 더 고맙지유. 저헌티 밤에두 둔 벌게 헤 주셨으니께유."

 "그렇게 된대유? 허허허."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아내에게 또 말을 걸었습니다.

 "오늘밤에 생돈 10만원이 깨져버렸는디, 워떻게 생각혀?"

  아내는 잠시 후에 대답했습니다.

 "내년 교무금을 100만원 허자니께 90만원으로 허더니, 그 10만원 애낀 것이 한 순간에 날아가버렸네요."

 "그런 말 헐 줄 알었지. 그럼, 하느님께서, ’이놈, 맛 좀 봐라!’ 허신 걸라나?"

 "왜요? 하느님을 심술쟁이로 맨들라구요?"

 "허긴 나두 헐 말이 읎네. 내가 일년 내내 내는 사회복지회비나 성소후원회비보다두 많은 금액을 한 순간에 날려버렸으니…."

 

 내가 침울해 하자 아내가 잠시 후에 다시 말했습니다.

 "술을 마셨거나 나쁜 짓 허느라구 읎앤 돈이 아니니께 너무 상심 마세요."

 그 순간 내게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아까 차유리 전문점 주인이 나헌티 허는 소리, 당신두 들었지?"

 "뭔 소리요?"

 "아니유. 지가 더 고맙지유. 나헌티 밤에두 둔 벌게 헤 주셨으니께유- 헌 소리 말여."

 "들었어요. 근데 왜요?"

 "따지구 보면, 그것두 내가 착헌 일을 헌 게 아니겄남?"

 "척헌 일이라니요?"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헌티 고마운 마음을 갖게 혔으니께 말여. 흐흐흐."

 "에그, 내가 못 말려. 또 뭔 소리가 나올라나 했더니, 고작…."

 "하여간 나는 여러 가지루 착헌 사람여. 여러 가지 형태루다가 넘들을 돕구 사니께…."

 "그러다가는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헸다는 말두 나오겄네요."

 "어쨌든 내가 오늘 또 한가지 좋은 일을 혔어. 오늘 결론 끝!"

 

 스물세 평 연립주택, 내 작은 보금자리 앞에 도착한 상황이라서 "결론 끝!"이라는 말을 분명하게 발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차의 시동을 끄고 성호를 긋고 나서 나는 다시 한번 "결론 끝!"을 입 속으로 외쳤습니다. *  

                    

 

 2001년 12월 13일

 충남 태안 샘골에서 지요하 막시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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